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2025.06.15 08:21:29 제1117호

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이야기(714)

지난 일요일 마포에 위치한 사찰을 다녀오면서 마포에 가면 항상 들르는 가든호텔 뒤편에 위치한 족발집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방문해 위치를 못 찾는 것이라 생각하고 인근 철물점에 물어보았다. 식당은 예전에 운영하시던 부모님이 노환으로 일을 못하게 됐고, 자식들이 식당을 원하지 않아서 없어진 지 몇 년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전 주인의 손맛을 더이상 맛볼 수 없는 것과 필자의 추억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고 되돌아왔다.

 

서울서 60여년을 살다 보니 가끔 한 번씩 들르는, 지역마다 찾아가보는 필자만의 맛집이 있다. 공덕동 시장통에 선지해장국집, 위생병원 앞 막국수집, 을지로 2가 냉면집, 신사동에 아구찜, 건대 앞 칼국수집과 순대국집, 송파구청에 곱창집, 용두동 삼합집, 마장동에 닭곰탕 기사식당 등 허름해도 장인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곳들이다. 그중 한 곳이 사라졌다. 이런 오래된 식당(노포)이 사라지는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미 일본에서 시작된 일이다. 일본에서 3대에 걸쳐 100년 된 소바가게가 문을 닫으면서 일본의 장인 정신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은 지 오래다. 코로나 시절에는 8대에 걸쳐 대를 이어 운영하던 231년 된 노포가 폐업하기도 했다. 일본엔 100년 이상 된 노포가 2018년에 약 2만8,000여 곳 정도였다. 1000년 이상 된 곳도 8곳이나 있었다. 이런 일본에서 노포들이 지속적으로 사라지고 있다.

 

130년 된 노포 료칸 ‘하케이테이(八景亭)’는 생선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요리 료칸으로 유명했으나 7년 전 폐업했다. 후계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3대째인 대표가 운영하다 병으로 쓰러진 후 후계자를 구했지만 음식 맛을 잇겠다는 사람이 나서지 않았다. 두 명의 자녀가 있었지만 아버지의 뒤를 이을 생각은 없었다. 부인은 주위에 피해를 주기 싫다면서 폐업을 결정했다. 시에서는 그 건물을 보존 수리해 유적지로 보존했다. 결국 마포 족발집과 같은 이유였다. 작게는 가족들의 문제로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적으로 저출산·고령화가 근본 원인이다.

 

이미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40여 년 전 저출산과 고령화에 진입했다. 일본에서 수십 년 전에 시작된 문제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된 것이다. 저출산에 의한 소수의 자녀들은 아무리 전통과 장인의 가게라고 해도 이어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장 안타깝고 슬픈 이유로 부모가 그동안 모은 돈으로 잘 먹고 잘살 수 있으니 굳이 고생하면서 일하기 싫은 것이다. 다음은 식당과 같이 노동을 요하는 직업을 회피해서다. 마지막은 그나마 바람직한 것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다. 이런 이유로 흑자에도 불구하고 노포들이 문을 닫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물론 소비자의 기호나 시대의 변화에 밀려 사라진 경우도 많았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2·30대 중 50만명이 전혀 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건설 노동 현장에는 대다수가 외국인 노동자들이 된 지 오래다. 3D업종에 종사하려는 젊은이들은 이제 없다. 최근 요리사가 각광받고 있지만 오래된 족발집을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폼나는 셰프가 되고자 한다. 이런 풍토가 부모 직업이 폼나지 않으면 물려받지 않는 것은 이제 당연하다. 물려받아도 자신이 직접 만들지 않고 전문 요리사를 고용하면 아쉽게도 옛 맛이 사라진다. 이렇게 자식들이 운영하면서 필자의 맛집이 사라진 곳도 몇 군데가 있다.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의 향수가 사라지듯이 그렇게 향수의 맛집 또한 사라지고 있다. 요즘은 사찰을 가도 예전의 고즈넉함의 정취가 사라진 곳이 많다. 중국풍의 어수선함으로 장식된 곳이 증가하면서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많았다. 결국 이 또한 시대의 흐름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마포 족발집처럼 필자의 아날로그적 향수가 하나둘씩 사라지는 것이 그립고도 아쉽다. 사실 필자는 족발을 좋아하지 않았다. 장충동 족발은 너무 부드럽고 아니면 너무 퍽퍽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맛본 것이 마포 족발이었고 유일하게 먹는 족발이었다. 이제 필자가 족발을 먹을 일 또한 없을 것이 아쉽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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