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탐방지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경주인데요, 저는 이번이 4번째 경주 방문입니다.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레지던트 때는 학회 때문에, 개업 직전에는(개업하면 왠지 바빠질 것 같아서…기우였습니다 ㅠ.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방문했었고, 이번에는 즐거운 치과생활 탐방을 위해 편집위원들과 함께 방문하게 되었습니다(10대에, 20대에, 30대에 그리고 40대에 각각 1번씩 방문했으니까, 대략 10년에 1번꼴로 방문한 셈이 되네요).
자주 다녀왔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경주는 매번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고풍스러운 건 물론이고, 변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세련되게 변해가는 것 또한 경주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이번 탐방도 비가 부슬부슬 오고 바람도 제법 부는 궂은 날씨였지만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돌아왔습니다.
토요일 진료를 마치고 서둘러 서울역에 모여서 KTX를 타고 경주로 향했습니다.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으로 왁자지껄 떠들다가 열차 안에서 혼나기도 하고, 이런저런 주전부리를 맛있게 먹으면서 부푼 마음으로 경주로 향했습니다. 벚꽃이 예쁘기로 유명한 경주이기에 벚꽃이 늦게까지 남아서 우리를 기다려 주길 바랐지만, 야속하게 내리는 비 때문에 며칠 전까지 예쁘게 피어 있던 벚꽃이 다 떨어진 건 너무 아쉬웠습니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동궁과 월지였습니다. 지난번 방문 때는 안압지였는데, 이번에 방문해 보니 이름이 바뀌었더라구요. 평소에는 왕자들이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하다가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귀한 손님이 올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하는데, 신라시대 때 월지(달이 비치는 연못)라고 불린 장소로 확인되어 2011년부터 ‘동궁과 월지’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경주에서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야경이 예쁘기로 유명한 곳이기에 저녁이 되면 야경을 감상하러 오는 사람들로 항상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입니다. 저도 10여년 전 야경을 보기 위해 유모차를 끌고 왔다가 사람들에 치이고, 아이들이 졸려서 울고 하는 바람에 제대로 야경을 즐기지 못하고 서둘러 나왔던 아픔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다행히(?)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덕에 사람이 그렇게까지 많지도 않았고, 경주를 자주 찾는 일행 덕분에 동궁과 월지의 야경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복원된 2호 건물의 연못 건너편)에서 야경을 감상했는데요, 왜 이곳의 야경이 그렇게 유명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조명이 켜진 건물들도 예쁘지만, 이 건물들과 풍경이 연못(월지)에 비친 모습은 정말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예쁜 야경도 감상했으니, 이제 출출한 배를 채우러 요석궁 1779를 찾았습니다. 첨성대가 있는 월성지구 옆 최부자집으로 유명한 교촌마을 내에 위치한 식당입니다. 최부자집 내림음식을 기반으로 한식 파인다이닝을 제공한다고 해서 큰 기대를 가지고 방문했는데, 기대만큼 맛있고 멋스러운 곳이었습니다. 잘 가꾸어진 예쁜 정원을 지나 멋스러운 한옥 안채에서 식사를 했는데, 음식들도 맛있었지만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맥주와 청주도 일품이었습니다(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막걸리도 있었는데 품절이라 못 마셔본게…ㅠ.ㅠ).
배도 채웠으니 이제 다시 일할 시간, 동궁과 월지만큼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월정교로 출발~~!! 식당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 저녁식사 후에 산책 겸 들려 야경도 감상하면 너무 좋을 것 같은 곳입니다. 이때도 다행히(?) 비가 내리고 있어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경주통인 편집위원 한 분 덕분에 사진 찍기 좋은 장소에서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월정교 건너편에 위치한, 그러니까 월정교와 교천교 사이의 자그마한 돌다리를 기억하세요 ^^).

월정교를 지나면 바로 첨성대가 있는 월성지구입니다. 첨성대와 내물왕릉 등의 고분이 있는 곳인데, 이곳을 지나 좀 더 들어가면 천마총 등이 있는 대릉원지구로 연결됩니다. 월성지구도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인데, 특히 첨성대는 경주의 8색(적,홍,황,녹,청,자,금,흑색) 조명이 비춰져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야경이 아릅답기도 하지만, 계속 걷다 보면 무덤들 때문인지 왠지 으스스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제가 겁이 좀 많은 편입니다….ㅠ.ㅠ).

다음날 아침에 처음으로 들른 곳은 너무나도 유명한 불국사입니다. 불국사를 찬찬히 둘러보며 다보탑과 석가탑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벚꽃 명소인 불국사 진입로도 산책했습니다.
공영주차장에서 계단을 올라가 불국사로 향하는 곳이 벚꽃으로 유명한 곳인데, 이번 방문 때는 어제 내린 비로 벚꽃이 모두 떨어져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못 본 것이 이번 탐방의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이곳은 일반적인 벚꽃이 진 뒤 2주정도 후에 만개한다는 겹벚꽃(왕벛꽃)으로도 유명한 곳인데요, 이번 탐방 때 만개한 겹벚꽃은 못 봤지만 다행히 막 피기 시작하는 겹벚꽃들은 볼 수 있었습니다. 여느 벚꽃과는 조금 다른, 좀 더 풍성한 느낌의 벚꽃으로 저는 처음 보는 모습이어서 꽤나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대릉원지구에 들러 대릉원 구경도 하며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전날 저녁때 월성지구의 야경과는 사뭇 다른 낮의 능의 모습이었습니다(낮에는 다행히 무섭지 않네요 ^^).


과거의 경주만 만나왔으니 이제 현대의 경주와 만날 시간, 바로 대릉원지구와 붙어있는 황리단길입니다. 전날과는 다르게 비가 오지 않기도 했지만, 역시 경주 최고 번화가답게 사람이 많습니다. 황리단길을 걷다 보니 출출해져서 식당을 찾았는데요, 사람이 워낙 많아 가보고 싶던 식당은 자리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너무 배가 고프기도 해 근처의 괜찮아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맛있는 한 끼를 먹었습니다.
밥도 먹었으니 이제 달다구리를 먹어야겠죠? 월성지구, 대릉원지구 인근을 벗어나 조금 작은 황남동고분군 맞은편에 위치한 카페에 들어가니 짙은 커피향과 달달한 디저트 냄새가 반겨주네요(행복합니다 ^^). 황남동고분군이 잘 보이는 2층에 올라 능을 바라보며 커피와 빵을 먹는 시간도 가져보았습니다.
어느덧 서울로 돌아갈 기차시간이 다 되어서, 제가 너무 좋아하는 경주의 명물 찰보리빵과 황남빵으로 소심하게 플렉스 한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경주를 다녀온 지 두달이 조금 넘었지만, 탐방기를 쓰며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납니다. 비도 오고 바람도 세게 불어 생각보다 추운 날씨였지만, 궂은 날씨를 잊게할만큼 아름답고 멋진 야경, 맛있는 음식들 그리고 편집위원들과 웃고 떠들었던 즐거운 추억들…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가을에는 벚꽃만큼 유명한 가을 단풍을 즐기러 경주에 한번 가보는 게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