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연휴’라 기대했는데 연휴 첫날인 개천절부터 한글날인 9일까지 가을 하늘은 우중충했다. 장마철처럼 비가 왔는데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는 구름에 가려 보름달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귀경길 도로는 비에 젖어 미끄러웠다. 그나마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보여준 하루 남짓을 제외하면 연휴 내내 비가 내리거나 흐려 황금연휴를 맞은 이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10월 중순임에도 비가 이어지면서 ‘가을장마’라는 말이 절로 나오고 있다. 원래 이 시기엔 고기압이 확장하며 맑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올해는 이례적인 기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10월 들어 중부 지방은 7~8일, 남부 지방은 10일 이상 비가 내렸다. 서울의 경우 10월 초순 강수 일수가 평년의 두 배를 넘어섰다. 이런 이례적인 현상은 북쪽의 찬 공기와 남쪽의 따뜻한 공기가 한반도 상공에서 오랜 기간 충돌하면서 ‘정체전선’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여름 장마처럼 북상과 남하를 반복하는 비구름대가 머물면서 계절에 맞지 않게 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구름대를 뒤섞어 대기 불균형을 일으키는 태풍이 올해 한 번도 우리나라에 근접하지 않아 유독 많은 비가 내린다는 분석도 있다. 올해 들어 전 세계에서 23개의 태풍이 발생했지만,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우리나라가 태풍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2009년 이후 16년 만이다.
태풍이 단 한 번도 근접하지 않은 것은 여름 내내 혹독한 무더위를 만들었던 북태평양 고기압과 티베트 고기압이 이중으로 겹치며 태풍의 경로마저 막았기 때문이다. 폭염을 일으킨 두 고기압이 우리나라 대기 중상층부를 틀어막고 있어 열대 지역에서 발생한 태풍이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이상기온이 아니라 ‘기후 변화의 새로운 양상’으로 보고 있다. 한 기후학자는 “온난화로 계절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며 “이제는 장마가 여름뿐 아니라 가을에도 나타나는 시대”라고 지적한다. 가을비가 그치면 북서쪽의 찬 공기가 유입되며 기온이 뚝 떨어져 그나마 짧은 가을이 성큼 가버릴 수 있다고 한다.
치과에서 많이 쓰는 말에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있다. “비가 오면 환자가 없다”는 의미인데 개원가 입장에서는 10월 황금연휴로 진료 날짜가 많이 줄어든 것도 속상한데 계속되는 가을비에 내원 환자 수마저 줄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가을 장마는 여름 장마처럼 매년 규칙적으로 발생하지도 않고 강수량 변동 역시 크다. 문제는 수확을 앞둔 농작물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옛말에 ‘가을 장마가 오면 곡식이 썩는다’고 했다. 이처럼 큰 피해를 남기는 가을 장마는 과거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이 남아있다. 세종실록에는 황해도에 장마로 흉년이 들자 부역에 참여하지 말라고 지시한 기록이 남아있고, 세조실록에도 장맛비가 그치지 않으니 날이 개도록 제사를 지내야 한다거나, 왕이 몸소 검소한 생활을 하고 풍류를 삼갔다는 내용이 남아있다.
이제는 장마라는 말 대신 가을 장마가 지속되거나 올해처럼 8, 9월에 때아닌 국지성 호우가 늘어난 시기를 ‘우기’라고 표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기후 위기로 장마의 변동성이 커진 것도 위협적이다. 올해는 여름장마 대신에 국지성 호우가 많았고 이어 강력한 가을장마가 찾아왔다, 내년에는 또 장마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결국 우리도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대비’밖에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