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인데요!”

2011.01.17 01:09:17 제429호

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이야기 (29)

초진 환자 상담을 위해  상담실에 들어설 때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환자와 뭔가에 쫓기는 듯 한 엄마가 보이면 이젠 필자도 긴장이 된다.

 

입시 지옥인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서 쿨하게 고등학생에게 1~2년의 시간을 빼앗겨야 하는 교정치료를 해주겠다고 할 수 있는 부모님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병원에 내원했다면 나름대로 많은 사연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고를 다닌다거나 연예인 지망생 같은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대부분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예전에 비해서 요즘은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만 아직도 고등학생들의 교정치료는 그리 쉽지 않다. 상담실에서 엄마의 입에서 “고3인데요…”란 말이 떨어지면 필자는 머릿속으로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한다.


자칫 말 한마디 삐끗 잘못 나가서 고3학생은 물론 고3엄마의 심기를 건드리는 순간에는 뜨거운 기름에 물 튀는 듯 한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심지어는 외래가 떠들썩하게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에서 고3학생과 고3엄마는 특별한 대접을 받는 위치가 되었다. 아마도 입시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사람들이기에 이에 대한 배려 차원이었을 것이다.   


특히 고3들이 심리적인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심리적인 방어현상의 하나로, 회피가 나타나는데, 입시에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핑계를 만들기 위한 ‘고3병’이 그 예이다. 

 

고3병은 본인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실제로 본인이 고통을 받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눈, 코, 귀, 소리, 두통 등 전신에서 나타난다. 그 중 치과 외래에서 접할 수 있는 ‘고3병’을 생각해보면 가장 흔한 것이 턱관절증이다. 턱관절 주위 통증과 소리에 집착하는 경우이다. 소리가 나고 통증이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교합이 문제이다. 어느 날부터 물리는 것이 이상하고 그래서 거울을 보니 얼굴이 점점 틀어진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알 수 없는 치아 통증이다. 자고 일어났더니 치아가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아주 큰 통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이상과 같은 증상으로 치과외래에서도 고3병을 만날 수 있다. 그 다음은 가장 곤란한 경우인데 무조건 환자가 우기는 경우이다.

 

고3 가을이 지날 때쯤 내원해서는 다짜고짜 발치하고 교정해야하니 이 빼 달라는 경우이다.

 

물론 이 상황을 좋아하는 엄마는 한 명도 없다. 대부분은 아이의 심기를 건들지 않으려고 치과의사에게 석 달 후 쯤 시험 끝나고 치료하자고 대신 이야기할 것을 기대하는 경우이다. 이때 엄마 편을 들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한을 남기게 될 것이다.


고3이 아니어도 엄마와 아이의 생각과 의견이 다른 경우는 많다.

 

아이는 교정치료를 하고 싶은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엄마는 원하지 않는 경우, 상담 내내 엄마는 안티적인 발언을 일삼는다. 결국 엄마는 필자의 입에서 엄마가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집요하게 삐딱선을 타게 된다. 젊은 시절엔 답답함에 한숨도 쉬었지만 세월 탓인지 요즘은 바로 엄마가 원하는 답을 이야기 해주고 만다.


삼한사온이 없어지며 지속되는 한파 속에서 전세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나하고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서민을 주 고객으로 하는 일반치과는 마냥 자유롭지만은 않다.

 

서민들의 주머니가 점점 얇아지기 때문이다. 전세 값이 1억 오를 때마다 이자가 60만원씩 더 나가야하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하루 빨리 경기가 좋아지고 전세 값도 내려 서민들의 주머니가 두툼해지길 기대한다.


창 밖에는 또 눈이 날린다. 모든 치과의사의 마음에도 하얀 눈이 예쁘게 내려 어두운 근심을 모두 덮어 주길 바란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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