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상가상(雪上加霜)

2013.08.29 15:16:41 제557호

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이야기 (156)

서울시에서 6급, 연봉 5,000만원에 한의사를 모집하였는데 36:1의 경쟁률을 보였다는 기사와 더불어 변호사 초봉이 200만원이 안되며 취직이 어렵다는 글도 보인다. 더불어 1만5,000명 정도의 공인회계사 중에 5,000명 정도가 휴직상태란 글도 보인다. 은행 조사에서 신용불량자가 가장 많은 직업이 의료인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를 대다수 사람은 ‘전문직종의 몰락’이라고들 표현한다. 하지만 필자는 ‘자연적이고 당연한 현상’이라 말한다. 간단하게 경제학의 가장 기초 논리인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른 자연현상일 뿐이다. 전문직 종사자의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물론 정책적으로 졸업생 수를 조절하기는 하였으나 고령화 현상으로 은퇴가 늦어지는 것에 대한 고려는 배제돼 급격하게 공급과잉 현상이 벌어졌다. 더불어 경기 침체로 고용은 증가하지 않으며 인구 또한 증가하지 않았다. 즉 공급과잉에 따른 가치하락이라는 당연한 사회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심리학에는 인구과잉에 따른 사회현상뿐 아니라 심리적 영향에 대한 연구가 많다. 실험에서 쥐 다섯 마리가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에 한 마리가 있으면 활동력이 떨어졌다. 반면 다섯 마리가 있을 때 가장 활발한 활동력을 보였다. 그런데 다섯 마리를 추가하여 열 마리로 인구과잉이 되니 활동력 감소뿐 아니라 서로 공격적으로 변하였다. 이렇듯이 공간에 따른 인구의 수는 개인이나 사회에 심리적인 영향이 크다. 결국, 지금 치과계의 가장 큰 우환인 불법네트워크의 출현도 치과의사의 과잉공급에 필연적 현상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물론 돌연변이라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 또한 개체 수가 증가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모 대학이 세종시에 치전원을 건립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지역논리와 자기이기주의에 따른 행동일 뿐 전체적인 문제를 파악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일이 불가하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사항이지만 듣기만 해도 마음이 불편하다.

 

치과의사 과잉공급에 따른 문제점은 일본에서 일찍 시작됐다. 그것을 모든 일본의 치과의사가 인식하고 1997년도에 치과의사 수를 감소하기로 협의했다. 그리고 수많은 논의 끝에 대학을 없애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나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였다. 최종적으로 내린 결정은 재정적으로 어려운 사립대학들은 정원을 유지하고 국립대학들은 최소인원만 모집하고 기존 시설과 인원은 대학원으로 전환하는 방법, 즉 ‘국립대 대학원 중심화’를 택했다. 이로 인해 치과의사 정원을 30% 감소할 수 있었다. 치과의사들의 단합된 모습의 결과물이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치과의사뿐 아니라 모든 전문직에서 공급과잉에 따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공급과잉 해결을 위해 치과대학들이 모집정원을 줄였지만 이미 과잉공급된 상태이기에 현실적인 결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금은 기존이나 신규 치과의사를 위해서도 최소의 인원만을 충원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정도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런 상황에서 치전원을 더 만들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가뜩이나 힘든 치과의사들에게 허망한 말이다. 원래 설상가상이란 말은 불가의 말이었다. 눈이 내린 곳에 서리가 내리는 것은 아무 소용없는 무의미한 행동이란 뜻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 우리가 아는 ‘힘든데 더 힘든 일이 생긴다’로 의미가 바뀐 것이다. 이번 사건은 무용지물의 의미든지 더 힘든 일의 의미든지 두 가지 의미에 모두 해당하는 그런 ‘설상가상’이다.

 

지금의 치과계는 각자의 이익에 따른 소모적인 내홍을 접고 가장 중요한 원천적 과잉공급 해결을 생각해야 할 때다. 과잉공급을 줄이기 위해 16년 전 일본 치과의사들이 내린 결단을 이제 우리도 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 더 이상 간과하면 실험실 속의 쥐들이 보여준 것과 같이 더 큰 문제를 불러올 것이다. 더 이상 치과의사라는 직업적 자존심에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간절하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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