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1개소법 ‘합헌’ 의료공공성 최우선 가치 입증

2019.09.09 13:51:33 제839호

“형사처벌까지 감내하며 이중개설 시도할 의료인 없을 것”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29일 ‘의료인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는 의료법 제33조 8항에 대한 위헌제청심판에서 청구인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이로써 의료영리화 저지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1인1개소법 사수는 약 5년 만에 합헌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치과계가 헌법재판소 앞에서 1인시위를 진행한 지 1,428일만이다.

 

헌재 “헌법적 가치 반하지 않는다” 청구인 주장 조목조목 반박

헌법소원을 제기한 측의 주장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 번째는 명확성의 원칙. 2012년 해당 법률이 개정되기 전에는 ‘개설’만을 문제 삼았다. 즉 한 명의 의료인이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개설은 아니지만 한 명의 의료인이 실질적으로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개설과 운영 등 그 어떠한 명목으로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지금의 모습으로 개정됐다.

 

범죄와 형벌을 미리 법률로써 규정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즉 해당법률에서 금지하고 있는 이중개설 및 운영이라는 범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게 청구인 측의 주장이었으나 헌법재판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운영’의 사전적 의미와 이에 대한 법원의 해석, 의료법 개정의 취지 등을 종합해 볼 때 위 조항들에서 금지하는 의료기관 중복운영이 무엇인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며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는 의료인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서는 의료인의 권리와 의료의 공공성이라는 두 가지 개념이 맞붙었다. 이와 관련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의 취약한 공공의료의 실태, 의료인이 여러 개의 의료기관을 운영할 때 의료계 및 국민건강보험 재정 등 국민보건 전반에 미치는 영향,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적정한 의료급여를 보장해야 하는 사회국가적 의무 등을 종합해 볼 때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즉 의료의 공공성을 생각했을 때 의료인의 권리가 다소 침해되더라도 과도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실질적으로 여러 개의 의료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의료법인과 달리 의료인 개인만 의료기관의 이중개설 및 운영을 금지한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서도 헌법재판소는 “의료법인은 설립에서부터 국가의 관리를 받고, 이사회나 정관에 의해 통제가 가능해 명시적으로 영리추구가 금지된다”며 “이처럼 의료법인 중복운영을 금지할 필요성에서 차이가 있으므로 의료인과 의료법인을 달리 취급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가 보장된다”며 평등원칙에도 위배되지 않음을 명확히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는 의료 공공성…의료영리화 원천차단

이상의 결정을 관통하는 핵심개념은 바로 의료의 공공성이다. 의료의 90% 이상을 민간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의료인의 권리 등 그 어떠한 개념보다 의료의 공공성이 우선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이다. 특히 의료영리화와 같이 의료서비스를 바탕으로 영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이번 판결은 최근 대법원에서 내려진 일련의 판결을 대신해 이중개설 난립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1인1개소법을 위반했다 하더라도 의료인에 의해 정상적으로 개설되고 치료가 이뤄졌다면 관련 요양급여를 환수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즉 1인1개소법을 사수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제재수단이 사라진 셈인데,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관련 처벌조항까지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이와 관련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준래 선임전문연구위원은 “얼마 전 대법원에서 1인1개소법 위반 의료기관이라 하더라도 개설 및 치료과정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면 요양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났지만,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형사처벌 규정은 그대로 유지된다”며 “형사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의료기관을 복수로 운영할 의료인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인1개소법 위반 시의 처벌조항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합헌으로 엇갈린 치협과 유디의 운명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1인1개소법에 깊이 관여해온 대한치과의사협회(회장 김철수·이하 치협)와 유디치과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전국에 130여개의 의료기관을 두고 있는 국내 최대 네트워크 의료기관인 유디치과는 해당사건에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하며 1인1개소법의 위헌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합헌 결정이 내려진 당일 유디치과는 “헌법재판소 합헌 결정 유감”이라는 공식입장이 담긴 보도자료를 현장에서 배포했다. 보도자료에서 유디치과는 “이미 합법적으로 운영 중”임을 강조하며 “경쟁력을 갖춘 선진화된 의료기관들이 출현할 가능성이 가로막혀 국민들이 보다 나은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됐다”고 유감의 뜻을 밝혔다. 계속해서 “(이번 결정이) 1인1개소법을 합리적으로 재개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다양한 형태의 의료기관이 출현해 서로 경쟁하는 것만이 국민의 의료비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치협은 즉각 환영의 입장을 표명했다. 치협 김철수 회장은 “일각에서 ‘복수의 의료기관을 개설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 의료인의 직업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했다’거나 ‘병원 운영을 전문으로 하는 사무장이 있으면 병원 경영이익이 향상된다’는 등의 사유로 반대하고 흔들어온 게 사실”이라며 “만일 1인1개소법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타 의료인 등에게 고용된 의료인은 불분명한 지위와 책임으로 실적만을 추구하며 과잉진료를 양산하거나, 환자들과의 의료분쟁에 휘말리는 경우가 빈번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 치과의사들이 무려 1,428일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성실히 헌법재판소 앞을 지키며 1인시위를 했던 이유는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고 우리 보건의료계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보루이자 장치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철수 회장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불법 네트워크병원의 실효적인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의료법 및 건강보험법 등의 보완입법 추진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것”이라며 “1,400여일 동안 헌법재판소 앞 1인시위에 참여해 준 많은 동료 치과의사들과 뜻을 함께 해준 모든 이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ys@sda.or.kr

전영선 기자 ys@sd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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