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단] 반 고흐가 치의에게 던지는 화두

2017.01.26 11:11:11 제716호

권 훈 논설위원

반 고흐(1853-1890)를 만나러 가는 것으로 필자의 2017년 새해 첫날은 시작되었다.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영화 제목처럼 광주 기아 챔피언스 필드에는 ‘야구장 안 전시관’이 있다. 작년 이곳에서 우연히 들른 클로드 모네 전시회가 유익해서 이번에는 작정하고 반 고흐의 인생을 알아보기 위해 갔다. 공교롭게도 모네와 고흐는 유명한 인상파 화가였지만 서로 정반대의 인생을 살았다. 돈, 명성, 건강, 사랑 등이 모네에게는 모두 있었지만 고흐에게는 하나도 없었다. 화가와 치의는 별개가 아니기에 치과의사의 인생은 어떠할까 새해 벽두부터 곰곰이 생각해본다.


고흐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는 무엇인가를 이미 완벽하게 발견했다고 말하지 않고, 언제나 그것을 탐구하는 사람이다.” 그는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끝없이, 치열하게, 철저히 탐구했다. 어떤 치과의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종종 듣곤 한다. “나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에 자신이 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는 영화 킹스맨의 대사를 이렇게 바꾸어 속으로 되뇌어 본다. Manners makes man but mannerism spoils the dentist. 고흐는 예술만이 아니라 인생도 탐구했다. 그렇다면 치의는 무엇을 탐구해야 할까? 필자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치과에서는 어떤 질환이냐 보다 어떤 사람이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운의 천재 화가로만 알고 있었던 반 고흐는 글 솜씨 또한 작가에 버금갈 정도로 예사롭지 않다. 고흐는 유일한 후원자인 친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인생과 예술에 대해서 진솔하게 말했다. 그래서 고흐 편지 선집은 그의 작품을 감상하기 전에 필독할만한 도서이다. 편지에는 그의 일상생활도 서술되어 있는데 특히 고흐가 얼마나 치아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구구절절 지금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제인 오스틴의 편지에서 19세기 초 치과 임상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면, 고흐는 19세기 말 치과 환자의 처지와 심경을 현실적으로 서술하였다. 치과의사는 임상 실력 못지않게 환자와 공감하는 것도 중요하다. 치과 치료 때문에 야기된 고흐의 애환은 치과의사 직업의 의미와 우리들의 자화상을 돌아보게 한다.


1872년부터 쓰기 시작한 고흐의 편지는 현재 909통이 남아있다. 고흐는 1882년 12월의 편지에서 치통을 처음으로 언급하였다. 고흐는 치통이 심해 오른쪽 눈과 귀까지 아팠고 때로는 우울해지기도 하였고 급기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4년이 흐른 후에는 자그마치 10개 치아가 상실되어 실제 나이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들어 보인다고 투덜거렸다. 치료비로 100프랑이 들지만 치료를 받기로 결심하였다. 치료 전에 50프랑을 지불하였고 치료를 받은 후에는 훨씬 편안해져 그림에 전념할 수 있었다. 고흐의 명작 탄생에는 테오의 경제적 지원에 의한 치과의사의 치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음 편지는 더욱 구체적이고 노골적이다. 많은 치과 치료를 받았지만 아직도 상악에서 상태가 가장 안 좋은 치아 두 개를 치료받는데 비용은 10프랑이 필요하고 하악 치아를 치료받기 위해서는 추가로 40프랑을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흐는 “지난 10년 동안 치통 때문에 감옥에 있는 것 같았는데 치과 치료를 받고나니 감옥에서 해방된 기분”이라고 하였다. 이제는 음식을 제대로 씹을 수 있어 소화도 더 잘돼 위장병도 낫는 것 같다고도 하였다. 동생에게서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던 고흐는 “이제 치과 치료를 마무리 하고 싶은데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며 더욱 처량한 어투로 편지를 썼다. 10일 동안의 식사비용으로 5프랑을 미리 내서 지금 나에겐 1프랑 50센트만 남아있어. 오호통재라! 빈-센트 아저씨!


고흐는 이처럼 경제적,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 절망 속에서도 그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불후의 걸작들을 유산으로 남겼다. 고흐는 말한다. “나의 꿈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고, 나는 나의 꿈을 그리는 것이다(I dream of painting and then I paint my dream).” 따지고 보면 화가도 치과의사도 노동자이다. 그래서 화가와 치과의사는 일심동체라 할 수 있다. 이번에는 고흐가 치의에게 묻는다. 여러분의 꿈은 무엇인가요? 지금 어떤 꿈을 그리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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