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한치과의사협회 기원(起源)으로 결정된 조선치과의사회, 과연 우리의 뿌리인가? <7>

2020.10.29 14:04:46 제893호

[객원기고] 제중원 뿌리 논쟁과 창립일 전쟁 / 김호영 원장(다음플러스치과의원)

지난호 연재 말미에 안내한 바와 같이 이번호 연재는 제주도에서 개원하고 있는 김호영 원장의 소중한 글을 싣게 됐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당부드린다.  [연재필자 (권훈 원장) 주]


제중원 뿌리 논쟁과 창립일 전쟁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와의 투쟁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이다.


우리 치과의사들은 학부 시절 면역에 관해 배웠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단순히 역사를 정의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진화의 역사를 들이밀면 내가 아닌 다른 존재와의 싸움의 역사가 생명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내가 아닌 남’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조금 더 확장해서 보자면 ‘우리’와 ‘남’을 구분하는 것으로, 가장 극단적인 예는 전쟁을 들 수 있겠다.

 

우리는 가끔 어떤 사람이 배움의 깊이나 평소 알려진 인품과는 전혀 다른, 주변 사람들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는 언행을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그 사람의 공정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킬 수 있는 원인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마도 혈연, 지연, 학연, 금전 문제 등이나 그 사람의 현재 처한 급박한 상황이나 평소 가치관에 따른 우선적인 판단기준으로 나타난 실망스러운 언행일 것이다.

 

위에 열거한 것들 중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억지로 한 가지를 더 추가하자면 ‘나’와 ‘남’을 구별하는 기준이 일반적인 기준과 다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고 ‘남의 기대’에 맞는 언행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이런 이유로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이끌고 있다는 이 세상이 불공정과 이해 안 되는 모순된 문제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 집단으로 볼 수 있는 의사들 사이에서,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선 굴지의 두 병원이 역사 문제로 맞붙은 적이 있다. 이른바 ‘제중원 뿌리 논쟁’이다.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한두 번 들어보았을지도 모른다. S대병원과 Y대병원이 제중원을 서로 자신들의 기원이라며 주장했고 논쟁이 벌어져 3차 대전을 치르게 되었다. 그 결과로, 제중원 뿌리 논쟁에 있어서 세간의 시선이 S대병원 측에 좋지 않은 것이다.

 

이런 세인들의 평가가 나온 이유는 최고(最古)는 최고(最高)가 아닌 것이기 때문인데, 이 둘을 혼동하는 가치관이 아닌가 하는 것이고, 이미 최고(最高)인 그들이 왜 최고(最古)까지 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평가다. 해당 학교 출신들마저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단순한 진영 논리가 아닌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의 총독부의원이나 경성제국대학의 역사마저 포함해 역사를 연장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의 자부심에 해당하는 최고 병원이 가져야 할 역사관이 맞는가?’하는 비판이 있었다. 총독부의원은 역사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다 알 만한 이토 히로부미가 설립에 관여한 의료기관이니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겐 불쾌한 감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역사가 ‘우리’와 ‘남’을 구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 대한치과의사협회에는 ‘창립일 전쟁’이 존재한다. ‘제중원 뿌리 논쟁’은 일반 언론에 노출되었고, 세인들의 평가가 사실상 끝난 상태지만, 우리의 ‘창립일 전쟁’은 일반 국민의 상식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다.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연혁과 창립일에 관련된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었던 계기는 인터넷이 탄생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치협의 홈페이지가 개설되고 일반 국민이 홈페이지에서 정보를 얻어가는 일이 생기면서 게시된 연혁이 일반 국민에게 노출된 것이다. 일반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총독부의 명령’으로 시작되며 일본인 초대회장의 이름이 노출되었던 연혁에 친근함보다는 강한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더 기분 나쁜 문제는 번역기 등으로 실시간으로 홈페이지가 번역되어 일본인들이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점에 있었다.


이로 인해 지난 20년간 문제 제기와 개정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40년 전인 1981년 창립일 제정과 연관된 분들의 강한 반발로 연혁에서 초대회장 나라자끼 도요오의 이름만 삭제되었을 뿐, 이 문제가 마치 폭탄 돌리듯 떠넘겨졌는데, 5년, 10년 단위로 넘어가며 ‘조선치과의사회’의 85주년, 90주년을 맞을 때마다 반복되는 반발을 억지로 뭉개면서 넘어가다가 마침내는 일본인이 창립한 단체의 100주년을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이름으로 기념하게 되어버리는 날이 내년에 돌아오고 있다.


왜 이렇게 잘못된 창립일과 연혁의 개정이 어려운 것인지를 이해하려면, 앞서 언급한 ‘우리와 남’의 구별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인가?


일제가 패망하고 회장, 부회장, 총무 등 집행부 대부분과 회원 상당수가 자신들의 나라 일본으로 돌아갔다면 ‘그 조선치과의사회’의 역사는 일본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이 맞다. 초대회장 나라자끼 도요오와 그 역대 집행부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일본에서 그들의 후손이 100주년을 기념하면 된다.

 

 

우리는 1925년 설립된 한국인만의 치과의사단체인 ‘한성치과의사회’의 100주년을 2025년에 기념하면 된다. 이렇게 단순한 문제가 왜 그리 어렵단 말인가?

 

사람들의 역사를 마치 땅에 박혀 있는 것인 양 인식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우리가 고구려의 후손이고, 현재 만주 지역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이 고구려의 후손이 아니듯이 일제 패망 후 자신들의 고향인 일본으로 돌아간 조선치과의사회는 현재의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억지로 연결고리를 만들어낸다면 23년간 같은 공간에 머물며 우리 선배들과 불평등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더욱 더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역사가 문화 콘텐츠로 소비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조상의 친일 행적이 드러나 이미지가 훼손된 정치인이나 연예인도 있고, 독립유공자의 후손인데 좋지 못한 일에 연루되어 조상 얼굴에 먹칠하는 경우도 볼 수 있는데, 지나간 역사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절대로 간과해선 안 된다.

 

우리나라는 현재 임플란트 급여확대와 같은 정치적 공약이 남발되고 있고, 막상 시행하려니 재정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삼일절이 있는 3월이나 광복절이 있는 8월에 문제가 있는 연혁과 창립일을 언론에 다루면서 여론을 악화시키고, 수가를 강제로 인하한다는 악몽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일이 현실화되면,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서 연혁과 창립일을 다루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치과의사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가? 그런 노력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는 것이 이 문제다.


창립일과 연혁은 단순한 역사의 기록이 아니다. 우리 치과의사들이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지 대중에게 드러내는 것이다. 최고(最古)는 최고(最高)가 아니다. 그것을 억지로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 치과의사 전부를 잘못된 역사관을 가진 집단으로 몰아넣어 얻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냥 “우리가 최고(最古)!”라는 것인가? 미안하다. 그 최고(最古)라는 것에 동의해주지 못해서…


그래서 그쪽이 ‘우리’가 아닌 ‘남’인 것이다.

 

 

 

 

 

 

 

 

 

김호영 원장(다음플러스치과의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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