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 정태종 교수의 건축 도시 공간 눈여겨보기(26)

2020.12.23 10:58:11 제900호

도시마다 대표색이 있다

항상 아프리카에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막상 가기엔 쉽지 않다. 거리도 멀고 막연한 불안감도 있다. 예방주사도 맞아야 한다. 먼저 가본 사람들은 비행기나 배에서 내리자마자 엄청난 더위, 거친 흑인, 그리고 길 건너 맥도날드 가다 총 맞을 뻔했다는 황당한 무용담으로 겁을 잔뜩 준다.

 

그래서 그나마 부담이 덜한 모로코로 간다. 생각보다 큰 도시인 카사블랑카(Casablanca)의 낭만도, 살아 있는 옛 도시의 교과서인 미로의 도시 마라케시(Marrakesh)와 페즈(Fez)도 있다. 남쪽에는 사하라 사막이 있고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보면서 기차를 탈 수도 있다. 쉐프샤우엔(Chefchaouen)은 푸른색, 카사블랑카는 흰색으로 도시마다 그들만의 색으로 도시의 정체성을 만든다. 색으로 기억되는 모로코의 도시를 들여다본다.

 

황토색 땅과 먼지

 


모로코 첫 도시 마라케시(Marrakesh)의 숙소는 그 유명한 자마엘프나 광장(Jemaa el-Fna Square) 근처로 정했다. 처음 가면서 괜한 욕심을 부려 찾기 쉽고 안전한 큰 호텔이 아닌 전통주택인 리아드(Riad)로 결정했다. 그 대가는 모로코 여행 내내 따라 다닌다. 가는 도시마다 숙소 찾기가 미로 속 생쥐 꼴이다. 리아드는 구도심에 있고 구글 지도는 명확하지 않고 동네 사람들도 잘 모른다. 몇 바퀴를 돌고 돌아 간신히 찾았다. 샤워 후 자신감을 가지고 자마엘프나 광장을 간다. 모두가 꾼들인 사람들 사이를 기웃거리다 호객행위도 당하고 방울뱀도 보고 전통시장인 수크(Souk)도 돌아다닌다. 마라케시는 온통 황토색이다. 원래 땅과 먼지 바람의 색. 먼지 냄새나는 이 색을 온몸으로 느껴본다(그림 1).

 

마조렐 블루

 


황토색 마라케시에서 눈에 띄는 곳은 마조렐 정원(Jardin Majorelle)이다. 이브 생로랑(Yves Saint Laurent) 주택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의 대표색인 마조렐 블루(Majorelle Blue)는 내 눈에는 이탈리아 아주리 블루(Azuri Blue)와 구별이 안 된다. 하지만 강렬한 색임에는 분명하다. 파랑의 역사에서 보면 파랑의 고귀함은 그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 노랑의 보색이라 더 강렬한지도 모른다. 유럽에서의 파랑은 아프리카에서도 대접받는 듯했다. 하긴 이곳은 아프리카지만 주인은 프랑스 사람이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마조렐 블루는 바닥에 반사되어 더욱더 강렬하게 다가온다(그림 2).

 

백색의 도시

 


실제 카사블랑카(Casablanca)1)의 낭만은 영화에서만큼은 아니다. 낭만은 분명 스케일과 관계가 있다. 작고 비좁은 공간에서 남녀의 애정이 일어나듯이 도시도 크기가 작아야 낭만이 펼쳐진다. 건축도 어느 정도 이상의 규모가 되면 작동하는 시스템이 달라진다는 렘 콜하스의 Bigness 이론이 어느 정도는 맞는 듯하다. 카사블랑카는 모로코에서 가장 큰 대도시다. 백색의 도시이지만 자동차와 매연으로 바랜 흰색이다. 트램도 현대식이고 주택도 현대식 공동주택이다. 흰색의 도시는 바닷가와 하산 2세 모스크(Hassan II Mosque)2)를 품고 있어 낭만이 유지되는 듯싶다(그림 3).

 

아이보리 석재

 


라밧(Rabat)3)은 모로코의 수도이다. 마라케시, 카사블랑카, 페즈처럼 유명하지 않지만, 정치 행정수도라서 그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곳이 많다. 그 중 하산 타워(Hassan Tower)4)는 그들을 알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은 12세기경 모스크의 건설을 시도했다가 중단되어 미완성인 채로 남겨진 모스크의 탑이다. 기둥 열주들과 빈 광장만으로도 도시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석재의 색과 단단함으로 권력을 보여주고자 했던 알모하드 왕조의 제3대 야콥 알만수르의 의지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그림 4).

 

기하학 패턴

 


메크네스(Meknes)5)의 숙소인 아키타 리아드(Riad Atika)는 영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다. 이날 따라 숙박은 필자 혼자여서 좋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건축가라고 하니 리야드 구석구석을 보여주며 자랑하던 남편 따라 옥상에 올라가니 도시 전체가 다 눈에 들어온다. 중정에 햇빛이 들어오고 구석구석 기하학 패턴을 이용하여 실내공간을 장식한 리야드는 그들의 정성으로 인하여 빛이 난다. 혼자만의 저녁 식사는 마치 왕이 된듯한 대접이다. 모로코에서 너무 친절한 사람들에게서 그 친절의 대가로 몇 번의 뒤통수를 맞은 필자는 모로코인이 아닌 유럽 사람에게 대접받고 오히려 안심한다. 영국을 떠나 이곳에 사는 그들은 행복해한다. 그들에게 모로코는 이방인으로의 삶이 아닌 식민지 지배자의 삶이라 그런지 모르겠다. 서로 다른 이방인들이 타지에 함께 모여 있는 이 상황이 묘한 정서를 느끼게 한다(그림 5).

 

*주석
1) https://en.wikipedia.org/wiki/Casablanca
2) https://en.wikipedia.org/wiki/Hassan_II_Mosque
3) https://en.wikipedia.org/wiki/Rabat
4) https://en.wikipedia.org/wiki/Hassan_Tower
5) https://en.wikipedia.org/wiki/Mekne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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