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신문 편집인 칼럼] 필수 진료과목으로 유도할 제도적 장치 먼저 제시하라

2024.02.01 13:59:04 제1050호

최성호 편집인

지난 1월 3일 영국의학협회(BMA) 소속 1년 차 전공의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은 9일까지 6일간 진행됐고 이는 영국이 자랑하는 공공의료 체계인 국민보건서비스(NHS)가 설립된 1948년 이후 최장기간의 파업으로 기록됐다.

 

파업 기간 전공의 수천 명이 진료를 거부한 탓에 영국 의료체계에 비상이 걸렸다. 영국 의료계는 파업 기간 응급 의료인력 수요를 대체하기 위해 전문의 등 의료진을 차출할 수밖에 없었고, 이번 파업으로 영국 전역에서 진료 예약과 수술이 수만 건 이상 연기될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NHS 최고 책임자들은 파업이 의료 서비스가 가장 힘든 시기에 일어났다며, 성탄절과 새해맞이가 끝난 직후에 환자 수요가 몰리고 독감과 코로나19까지 겹쳤기 때문에 환자에게 상당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도 의대 정원확대가 발표되면 전공의 86%의 찬성으로 집단행동이 예정되어 있다. 지금도 정부와 의협은 의견을 충돌하며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의대 정원은 현재 3,058명으로 18년째 유지되고 있다.

 

정부는 2000년 의약분업에 반대하는 의료계를 달래기 위해 의대 정원을 10% 감축했다. 이때는 1985년부터 2003년까지 의사 인력 증가율이 126%로 미국이나 영국 등을 크게 앞지른다는 명분이 있었다. 이후 정부에서도 의대 정원확대를 추진했지만, 의료계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유보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연 400명씩 10년간 4,000명을 늘리려고 했지만 의료계 총파업으로 무산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의사 인력 부족을 절실히 체감한 정부는 중증 필수진료 과목 의사 양성 계획과 공공의대 설립을 검토했다. 다만 의료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기에 진행됐던 의료계 총파업으로 정원확대 논의는 중단됐고, 정부와 의료계가 맺은 ‘9.4 의정 합의’에 따라 향후 의대 정원을 얼마나 늘릴지에 대한 회의를 이어가기로 잠정 합의했다.

 

현재까지 의대 정원은 정부와 의료계 간의 합의였는데, 이제 정부는 의대 정원 문제를 의사단체와 반드시 합의해야만 추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태도다. 국가 정책 추진에 있어 특정 단체와 반드시 합의를 이뤄야 한다는 법적인 근거 조항도 없을뿐더러 이미 오랫동안 의료계를 포함한 각계의 의견 수렴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또한, 의사단체를 포함해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면 대응할 예정이라고 한다. 실제 의사들이 파업에 나선다면 정부는 업무 복귀 명령을 발령하고, 불응 시 징계 및 사법조치 등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이러한 기조는 궁극적으로는 의료계 전체의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특히 전공의들이 적극적으로 반발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는 코로나19 시기의 2020년 의료계 총파업과 비슷한 상황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단순히 의사 수만 늘린다고 지금의 환경이 바뀔까? 의사 수가 증가한다고 힘들고 고된 환경에서 일할 의사가 조금이라도 늘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사회적으로도 어느 누구나 돈만 보고 직장을 선택하지 않는다. 젊은 세대가 손쉽고 급여가 높은 업종만 선호한다고 우려하지만 이 역시 선택의 자유인 것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문제를 결정한다면, 앞으로 의료계 현안 모두를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결정하겠다는 의미와 다를 바 없다. 극단적인 결정의 피해는 결국 진료가 급한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또한, 최근 위험 부담이 큰 임상과목에서의 형사처벌과 엄청난 배상액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그렇지 않아도 위축되는 필수 임상과목 기피 현상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의사가 개원을 위해서는 수억 원의 비용이 소요되는데 환자에 대한 막대한 과실 배상액은 평생 일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징벌적 성격을 갖고 있다. 여기에 의료과실로 인한 법정구속 사태 등이 의료계에 회의감과 좌절감을 키우고, 생명을 직접 다루는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만들고 있음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영국의 NHS 제도는 의사들이 전문분야에서 소신 진료를 가능하도록 의료과실 배상제도 역시 공공성이 매우 강하게 되어있다. 정부는 일방적인 의대 정원확대에 앞서 의사를 지역이나 필수진료 과목으로 유도할 제도적 장치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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