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판 최인훈의 ‘광장’ 서문을 읽는 지금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표범의 가죽으로 만든 징이 울리는 원시인의 광장으로부터 한 사회에 살면서 끝내 동료인 줄도 모르고 생활하는 현대 산업구조의 미궁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광장이 있다.’
‘광장’은 중편 소설로 1960년 11월 ‘새벽’에 발표된 최인훈의 대표작이다.
이 책은 원래 약 600장 정도의 분량이었으나, 이후 단행본 출간과 여러 번의 개작 과정에서 800장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특히 처음 발표한 이후로 대략 6차에 걸쳐 개작을 거친 것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책의 서문이 여러 개이며, 책이 새로 출간될 때마다 작가가 개작 과정을 거친 것으로 유명하다. 작가는 오래전 만들어 낸 인물, 사유와 행위, 고민과 선택이 바로 지금 이 시대의 것으로 ‘현재화’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 현재성으로 지금 우리 속에 있는 주인공 이명준에게 끊임없이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다.
최근 우리는 인간에게 있어서 광장은 얼마나 거대한 것이고, 한편으로 얼마나 편협해질 수 있는지를 보았다. 우리의 세상이 아무리 어둠이 짙을지라도 불편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의식들은 그 빛으로 인해 광장이 빛나는 것을 목도했다.
서울시치과의사회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행사에서도 치과계 전체의 거대한 광장을 보았다.
SIDEX 2025는 국제종합학술대회와 서울 국제치과기자재전시회에 더해 서울지부 100년의 역사를 기념하고 제80회 구강보건의 날 행사가 동시에 열렸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치과계 인사가 한자리에 모여 치과계 100년 역사를 돌아보고 미래 100년을 향한 비전을 함께 공유하는 빛나는 광장이 열린 것이다.
‘광장’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에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폐쇄적인 도시 구조에 대한 반대급부로 열린 공간을 선호하는 문화적 성향이 발달해 광장이 된 것이고, 한국뿐만 아니라 성리학적 관념을 토대로 하는 문화권에서는 도시의 중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주작대로’가 광장이었다. 서양식 광장과 동양식 저잣거리(시장)의 공간적 의미는 매스컴과 SNS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도 개개인의 집단적 의사 표현이 주로 광장에 모여 이뤄진다는 점에서 아직도 유효하다.
광장에 대한 고뇌는 여전히 풀어야 할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공동의 이념을 추구하면서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공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개인 역량을 키워나가는 곳도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 최인훈이 주인공 이명준을 통해 꿈꾸었던 이상향이 광장과 밀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회이다. 오늘 장미대선이 끝나는 새벽, 지금까지 일련의 정치상황 속에서 광장은 그 순수한 의미를 잘 지키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광장을 광장답게 만든다는 것은 우리가 다음 미래 세대에 잘 물려줘야 할 유산임이 틀림없다.
이번 서울지부 창립 100주년 기념 SIDEX 2025, 그리고 서울시민과 함께한 제80회 구강보건의 날에서는 진정으로 치과계의 ‘광장’이 아직 굳건하다는 것을 보았다.
치과계가 시민과 함께 호흡하고, 지난 10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기억하며 앞으로 100년 또한 지난 역사를 잊지 않고 시민과 함께 나아가며 건강한 서울과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는 축제의 장이 열린 것을 기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었다.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는 의미는 이번 축제의 장에서 수많은 지인과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과 반갑게 인사하면서 절절히 느껴졌다.
‘개인의 밀실이 광장과 맞뚫렸던 시절에 사람은 속은 편했다. 밀실과 광장이 갈라지던 날부터 괴로움이 비롯했다.’ 작가가 던진 화두처럼 이번 치과계의 ‘광장’은 여전히 풀어내야 할 현실적인 문제이지만 그곳에서 함께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행복한 ‘광장’이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