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모순(矛盾)들

2025.08.23 08:26:52 제1126호

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이야기(723)

얼마 전 대학에서 연구와 학생을 가르치는 60대 인문학 교수님과 헤어지면서 택시를 잡는데 카◯◯택시를 사용할 줄 모르셨다. 항상 조교들이 잡아줘서 모른다고 해 필자가 불러주었다. 필자가 아는 지인 교수들을 둘러보니 문과와 예술계 쪽 교수 중 카◯◯택시를 사용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다. 공대나 의·치대 등 의과 쪽 교수들은 없었다. 어쩌면 직업적 성향이나 환경이 영향을 미친 듯하다.

 

지난주 장모님 댁에 택배를 보내기 위해 전화로 주소를 물으니 문자로 보내주신다는 답변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성함·주소·우편번호·연락처가 적힌 문자를 받았다. 저장해 두었다가 보내셨다. 86세이신데 미국에 계신 이모님들과 카톡으로 자주 대화하시고 사진을 찍어 주고받는 것은 알고 있었다. 휴가로 처가를 방문했을 때는 당신께서 ◯튜브를 자주 보시고 검색은 네◯버로 하신다고 해 몇 가지 사용방법을 가르쳐 드리고 왔다.

 

카◯◯택시를 사용할 줄 모르는 60대 대학교수와 86세에 카톡을 사용하시고 문자보내기를 완벽하게 구사하시는 장모님의 차이는 무엇일까.

 

최근 MZ세대들의 문해력이 자주 논란거리로 등장한다. 최근 SNS에 “오늘 쾌청하다”가 화젯거리다.

 

한 회사에서 상사와 신입사원이 거래처로 가는 길에 상사가 “오늘 쾌청하다”고 했다. 그때 신입은 “어제 술 드셨어요?”라고 물었다. 상사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자 “쾌청하시다길래 술 드셨다는 줄 알았다. 술 마신 다음 날 숙취 없으면 쾌청한 것 아니냐”고 했다. 이에 상사가 한자어라고 한문을 설명하자 신입은 “한자로 막 설명해주시는데 혹시 조선족이시냐. 한자를 엄청 잘 아신다”고 물었다고 한다. 상사는 사연을 올리며 ‘쾌청’이란 단어가 그렇게 어려운 단어인지를 물었다. 아마도 그 신입사원은 쾌청이란 단어를 음주회복 드링크로만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20년 전 초등학교 시험에서 조카가 ‘삼한사온’을 냉장고라고 답한 것과 유사하다. 당시 ‘삼한사온’ 냉장고가 매우 유명하던 때였다.

 

최근 MZ세대들이 문해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기정사실화되었다. 단어 뜻을 잘못 이해하거나 문맥을 실제와 다르게 파악하는 것이다. ‘

 

심심한 사과’를 왜 사과하는데 지루하냐고 생각하고, 시발점을 욕이라 이해하고, 금일을 금요일이라 알고, 세로로 서 있는데 왜 가로등이냐고 묻고, 족보를 족발과 보쌈으로 알고, 이부자리는 별자리로 생각하고, 무설탕은 무로 만든 설탕이고, 사흘은 4일째이고, 고가 다리는 비싼 다리라고 이해하고, 경기력 저하를 왕세자의 이름으로 알고, 녹음(綠陰)은 녹음기로 생각하고, 두발 자유화는 두 다리가 편한 것으로 안다. 최근엔 교사들이 학부모들의 문해력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가정통신문에서 ‘교과서는 도서관 사서선생님에게 반납’이란 글을 보고 “왜 교과서를 사서(구입) 반납해야 하냐”고 반문한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모든 문제나 일에서 그렇듯이 이런 한 사건이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한 마리의 제비가 보였다고 여름이 온 것은 아니지만 여름이 올 것을 예고는 한다.

 

필자는 MZ세대가 문해력이 떨어진 것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MZ세대와 학부형세대는 엄청난 공부를 한 세대다. 학교와 학원으로 하루도 쉬지 않고 병원에 치료받으러 갈 시간도 없이 공부만 한 세대다. 입시 지옥을 통과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시간을 공부한 세대다. 그렇게 많은 양을 공부했는데 어떻게 소통에 필요한 간단한 한자어도 모르는지 촌극과도 같은 모순이다. 엄청난 학문을 지니고 대학생을 가르치는 교수가 실생활에 유용한 카◯◯택시를 사용하지 못하고, 86세이신 장모님이 카톡을 요긴하게 사용하는 것이 현대판 모순이다.

 

무엇이든 뚫는 창과 무엇도 뚫지 못하는 방패를 같이 팔던 사람은 진정한 논리적 모순이었다. 현대에서 엄청난 양의 공부를 하고도 일상 대화에서 ‘쾌청’을 모르는 것은 모순을 넘어 코미디에 가깝다. 대학교수는 택시를 못 잡고, 평생을 주부로 사셨던 장모님은 카◯도, ◯튜브도 보신다. 문자로 사진을 보내달란 대화에 어떤 걸림도 없으시다.

 

삶의 필살기는 문제풀이적인 단편적 지식이 아닌 지혜다.

 

김영희 기자 news001@sd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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