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의정 갈등이 장기화되자 의사들의 해외 진출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당시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사직 전공의 10명 중 2명은 해외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는 구체적 수치를 언급하며 의사들의 해외 진출 가능성을 시사했다. 실제로 일본 의사 시험(JMLE)에 서류를 제출한 인원이 상당수였고, 베트남의 외국인 의사 채용 시험에도 국내 의사 다수가 지원했다. 물론 베트남은 현지 면허 취득이 우선이지만, 병원 보증 등을 통하면 비교적 수월하게 진출할 수 있었고 베트남 현지 병원에서는 한국 의사 채용에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특히 장기간 누적된 인력 부족과 낮은 수가 체계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학술대회에 편성된 해외진출 강연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가 개최한 ‘한국 면허로 캐나다에서 의사하기’, ‘미국 의사 되기’ 강연에는 우리나라 대형 병원에서 재직하다가 캐나다, 미국 등의 병원으로 건너가 일하는 의사가 직접 나와 현지 업무와 처우 등을 소개했다. 응급의학과 특성상 정부 정책대로라면 개원하더라도 적자가 불 보듯 뻔하다는 현실이 해외 진출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기존에도 의료인의 해외 진출은 있었지만, 의정 갈등은 기존에 해외 진출을 생각하지 않았던 의사들의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
1년여가 지난 지금 얼마나 많은 의료인이 해외로 진출했는지는 통계로 나오진 않았지만 2024년 의정 갈등 때 구축해 놓은 의료인 해외 진출 통로는 상당 부분 구체화 됐을 것이다. 아직 생소할 수 있는 해외 진출은 현재 대한민국 상황과 글로벌 수요를 고려할 때 크나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소위 ‘의학 비즈니스’라고 불리는 해외 진출 의료사업은 이미 해외에서 크게 자리 잡은 상황이다. 거대 의료 기업이 해외에서 의료시스템을 컨설팅하고 병원을 짓는 등 왕성한 활동으로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있다. 우수한 한국 의료 인력과 의료 서비스는 물론, 높아지고 있는 한국의 글로벌 위상 등을 고려한다면 해외 진출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진료업무 종사, 의료기관 개원, 의료기기 수출입 사업, NGO 활동 등 다양한 진로도 가능하다.
치과계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본지는 지난해 신년 특집에서 치과의사 해외 진출을 조명한 바 있다. 개원가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불법 네트워크 치과에서 시작된 진료비 덤핑은 이제 동네치과 깊숙이 파고들어 치과 진료환경을 황폐화하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치과의사를 줄이고 망가진 진료환경을 정상화하는 것이지만, 차선책으로 과잉 공급되고 있는 치과의사를 다양한 영역으로 분산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치과의사 해외 진출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근무 조건과 생활 여건만 맞는다면 자녀 교육 측면에서도 장점이 많다. 실제로 올해들어 의료인의 해외 진출은 큰 폭으로 늘었고, 진출 통로도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1년 넘게 이어진 의정 갈등은 봉합됐다고 하지만 그 여파로 외국의대 출신 의사가 한국 의사 면허를 취득하기 위한 관문인 ‘의사 예비시험’의 2025년 최종 합격자가 전년 대비 3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예비시험 합격률이 54.5%에서 88.7%로, 합격자 수는 55명에서 172명으로 껑충 뛴 것이다.
의사 단체에서는 의사 예비시험에 대한 변별력과 신뢰성에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예비시험 제도가 시작된 이래 최근까지 총 합격자가 235명에 불과한데 올 한 해에만 172명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의료계는 의사 증원 정책이 불투명해지자 정부가 외국의대 출신 의사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로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내비치고 있다.
의정 갈등이 한창이던 지난해 5월 보건복지부는 국가 재난 상황에 한해 외국 의료인 면허를 가진 자가 국내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한 의료법을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했던 점 등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상황은 우연이 아니다. 이와 같은 기조라면 치과계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치과계가 적극적으로 치과의사의 해외 진출을 모색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