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사직의 의미

2025.11.22 07:40:39 제1138호

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이야기 (735)

여든 야든 정치인들 행태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그들이 벌이는 일에서 어리석음이 도를 넘으면 한심함에 안타까울 뿐이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다 너무 놀랐다. 서울시장이 “세운상가를 허물고 녹지를 만들면 최대 수혜자는 종묘”라고 발언하였다. 그곳에 고층건물을 지으면 최대 수혜자는 종묘가 된다는 의미다. 그가 종묘가 지닌 의미를 모르는 것일까. 그저 관광지나 유적지 혹은 공원 정도로 생각하는 것일까.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우선 유교에서 위패의 의미를 알아야 종묘가 지닌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유교에서 사람은 혼과 백으로 구성된다. 혼은 정신을 의미하고 백은 몸을 의미한다. 유교에서 죽음은 몸인 백만이 죽는 것이고, 혼은 불멸의 존재로 늘 후손들과 같이 지낸다. 죽은 신체가 땅에 묻히니 혼이 머무를 새로운 몸을 만들어준 것이 위패다. 혼이 깃든 위패가 사는 집이 사당이고 왕실에서는 종묘다. 유교에서는 위패를 모시는 순간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역대 왕의 위패와 혼이 모셔져 있는 종묘는 이 나라를 수호하는 신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곳이다. 사직(社稷)은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을 의미한다. 곡식을 길러줄 땅과 풍요로운 먹을 것을 주는 곡물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 사직단이다. 종묘사직은 이 나라를 굳건히 수호하고 그 안에서 풍요롭게 먹고 살 수 있게 한다는 의미로 국가의 안녕을 의미한다.

 

사후 세계에 대한 개념은 종교마다 다르다. 기독교는 천당과 지옥으로 나누고, 불교도 극락과 지옥이 있다. 유교는 사후에 지옥이란 개념이 없다. 사후에 몸인 백만 사라지고 혼은 남아서 후손들과 같이 지낸다. 제사 지낼 때 지방이 몸이 되어 혼이 오는 것이다. 지방 틀에 지붕이 있는 이유고, 사당에 모셔진 위패에는 지붕이 없는 이유다. 우리나라 전통사상에도 지옥이 없다. 돌아가신다는 의미는 원래 있던 곳인 극락(저승)에서 이승으로 놀러 왔다가 다시 돌아갔다는 의미다. 꽃상여를 타는 순간부터 극락이다. 이승에 미련이나 한이 남아 못 가면 귀(鬼)가 되어 문제가 된다. 악마의 개념도 없다. 악마(사탄)도 외래 종교에서 전래되었다.

 

전통사상 속에 원래 악의 존재가 없다. 한 맺힌 경우 악귀가 되지만 한이 풀리면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사람을 해치는 존재는 이무기나 천년 묵은 여우처럼 사람이 되거나 승천 등 특수 목적을 지닌 짐승이다. 즉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는 사람이 아니란 개념이다. 산은 산신이 수호신이고, 마을은 서낭당이 수호신이었다. 집에는 터주신이 보호하고 불을 다루는 위험한 주방은 조왕신이 보호한다고 생각하였다. 이승에 놀러 온 인간은 인간답게 살다가 다시 행복한 저승으로 돌아가는 존재이다. 놀러 온 인간은 원래 이승의 주인인 존재(신)들의 도움을 받는 개념이다. 이런 전통사상에 유교 사상이 접목되어 혼을 담은 위패를 모시는 집인 사당과 종묘가 생겼다.

 

조선 왕조가 무너진 지도 100년이 넘었다. 유교 사상도 사라져 흔적만 남은 현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치인이라면 최소한 종묘가 지닌 의미는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땅의 수호신들이 어떻게 최대수혜자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가. 종묘는 단순히 왕의 이름이 써진 오래된 나무 쪼가리를 모아둔 곳이 아니다. 어찌 영구히 보존될 종묘 앞에 100년도 못 갈 흉물스러울 초고층 건물을 올린단 말인가. 사직에 제사를 지내던 곳은 사직공원이 되었다. 물론 시대가 그렇다 보니 그리된 것이지만 적어도 조상님들이 지켜온 개념이라면 사직단은 공원으로 조성할 것이 아니라 전통을 이어주는 것이 좋았다. 그랬다면 사직 제사 역시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을 것이다.

 

종묘 앞에 145m의 빌딩을 짓는 것으로 여야의 정치적 공방이 드세다. 정치인들 생각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다만 종묘 앞에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것은 과거 일제가 광화문 앞에 조선총독부를 만든 것과 다르지 않다. 조선총독부는 일제가 만들었는데 이 건물은 우리 스스로 만든다는 것이 더욱 한심한 이유다. 후손을 위해 그런 어리석은 일이 결코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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