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극장가의 중심에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있다. 개봉 18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사극 흥행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설 연휴를 거치며 이어진 매진 행렬은 이른바 ‘왕사남 열품’을 실감케 한다. 단종 이홍위의 절제된 눈빛과 감정 표현이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끌어올렸고, ‘엄홍도’ 역할도 당대의 일상일 수 있는 생활 연기와 깊이 있는 감정 연기로 극을 이끌어 가며 긴 호흡의 흥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조선 제6대 왕 이홍위가 유배된 이후의 삶을 풀어낸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은 머나먼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다.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전 국왕과 그 곁에서 모시는 왕과 사는 남자 엄홍도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정치적 음모와 배신, 치열한 권력 다툼 속에서도 인간적인 서사가 들어있고, 후반부에 약간은 신파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선을 자극하는 점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단종의 이야기는 어디까지 사실일까? 단종에 대한 기록은 1452년에서 1455년의 짧은 재위기간의 국정 전반을 담은 ‘노산군일기’와 1457년 영월 유배 중 사망, 장례, 복권, 능 조성에 대한 전승 문헌 기록으로 구성된 총 14권, 부록 1권이 전부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에 세조 사후에 완성된 노산군일기는 왕위 찬탈을 미화하고, 희생자들을 비방하는 등 왜곡이 심한 편이다. 영화 줄거리 대부분은 전승되어 온 사약설, 시신 수습, 엄홍도의 암장 등 야사에 전해온 이야기다.
단종에 대한 야사, 민담, 전설이 유난히 많은 것은 그만큼 단종의 생애가 민중들의 동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단종 복위를 본격적으로 논의했던 숙종 시절, 단종에 대한 동정심은 당시 사림과 백성을 막론하고 모두가 오랜 기간 가지고 있었다. 현재의 ‘왕사남 열풍’도 이러한 애틋한 마음이 이어진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으론 과연 단종이 1929년 춘원 이광수가 소설 ‘단종애사’에서 묘사한 것처럼 나약하기만 한 인물이었을까? ‘단종애사’는 사악한 한명회와 수양대군의 음모에 희생된 어리고 나약한 단종의 생애를 애틋하게 풀어냈다. 1929년 일제강점기 시절 당시 시대상과 맞물려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우리는 소설의 허구적 인물 묘사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 단종은 조선시대 27명의 임금 중 유일하게 적장자 왕세자의 장남, 즉 적장손으로 태어난 국왕이다. 조선 왕조 역대 국왕 중 가장 완벽한 정통성을 가진 유일한 임금이다.
아버지 문종은 할아버지 세종대왕의 적장자였고, 단종 또한 문종이 세자 시절에 본 유일한 아들이다. 따라서 단종은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원손으로 시작해 세손, 세자, 국왕을 모두 거친 조선의 유일무이한 군주다. 단종은 태어나자마자 준비된 왕의 길을 10년 넘게 교육받았기 때문에 12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하더라도 완벽한 왕권 조직 안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다만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기에 패자는 나약하게 표현됐을 것이다.
왕사남 열풍과는 대조적으로 지금 제34대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장단 선거는 아직 열기를 뚜렷하게 체감하기 어렵다. 많은 회원이 선거일이 언제인지도 잘 모른다고 할 정도로 선거 운동이 조용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각 후보자 간에 차별화된 공약이 적고, 회원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이 부족해서일 수 있다. 보조인력 구인난, 불법 저수가 치과 대응 방안, 임플란트 보험 보장성 확대, 배상책임보험 구조 개선, 치과의사 수급 조절 등 치과계 핵심 과제에 대한 후보자들의 해법이 회원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각 캠프의 해법이 거의 대동소이(大同小異)하고 ,비슷한 방향성을 보이면서 회원들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성과 실행 전략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같이 엄중한 시기에는 선언적인 구호보다 실현 가능성이 담긴 세부 계획이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일단 선거만 이기고 보자는 생각으로 화려하지만 두리뭉실한 말로만 넘어가려고 한다면 결코 회원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 지키지 못할 헛된 공약을 남발한다면 회원 모두가 기억하고 지켜볼 것이다. 누군가는 그렇게 지우고 싶었을 단종의 역사를 민중은 오랜 기간 마음으로 간직했다. 선거 역시 시간이 지나면 평가와 기록으로 남는다. 조용한 선거가 무관심으로 이어질지, 깊이 있는 논의로 전환될지는 후보들의 준비와 진정성에 달려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