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진주의료원 사태, 공공 치과의료는 작동되는가?

2013.05.16 11:28:55 제543호

박용호 원장(박용호 치과)

85세, 박선녀 할머니. 필자와 종씨(宗氏)인데다 성함이 선녀라 잊히지 않는다. 그러나 처음 진료실에서 대한 순간은 선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헝클어진 백발과 거친 피부, 남루한 옷차림과 지금은 잘 쓰지도 않는 흰 붕대를 감은 목발에 의지한 상태였다. 입안을 보는 순간 막막했다. 17개의 총알 같은 잔존치근이 일제치하, 6·25 피란생활, 자식 양육, 보릿고개를 버텨낸 인생의 치열한 흔적처럼 박혀있었다. 무전유골(無錢有骨)의 강팍한 치조골은 마지막 정신적 보루인 듯 했다. 할머니는 다른 치과에서는 안 빼준다며 머리가 아프니 다 빼달라고 했다. 파노라마 상 염증의 뚜렷한 인과관계도 보이지 않아 그냥 놔두시라는 말이 맴돌았지만, 평생 틀니도 못하고 사는 한이 맺힌 듯 보여 발치를 결심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으로 돌아가시는 게 염려됐지만, 경험상 이런 분의 생명력은 오히려 질기기 마련이다. 쉬엄쉬엄 오며 가며 두어 달, 치아 전체를 발거하니 머리가 좀 맑아졌단다. 어느 날인가는 비바람이 몰아쳐 택시를 타고 귀가하시라고 2만원을 드렸더니 극구 사양했다. 발치가 끝나갈 무렵. 틀니도 보험이 되고, 손주하고만 사신다기에 무상적용 여부를 보건소에 문의해보라고 했더니 “젊은 것들이 일은 안 하고 나라에 공짜만 바란다”고 오히려 역정을 냈다.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하는 할머니는 밥벌이도 못하고 용돈 타낼 궁리만 한다는 손주에 대한 전이감정인 듯 했지만 대화 중 할머니의 사리 밝음과 기력에 내심 놀랐다. 진료를 하다 보면 ‘공공 치과의료’로 해결해줘야 할 느낌이 드는 환자가 일 년에 2~3명은 꼭 있다. 큰맘 먹고 무상으로 해주고 싶지만, 일터에서는 그마저 쉽지 않다.

 

두 번째 촛불 집회로 번질 것만 같던 진주의료원 사태 이야기는 쑥 들어갔다.

 

국민 대다수가 먹는 소고기와 달리 공공의료원은 사회 계층의 일부만 이용하고 ‘나는 사립병원만 이용하면 된다’는 이기심 때문이었을까? 내 가족이 죽어나갔다는 절박감이 없어서였을까? 주지하다시피 공공 치과의료는 무척 열악하다. ‘치과신문’ 보도에 따르면 진주의료원 치과의 경우 2년 전부터 장애인 치과시설을 갖췄지만, 진료 인력은 공중보건의 한 명과 스탭이 전부라고 한다. 일개 도에 최소한 하나씩은 공공 치과병원이 있어야 할 터인데 의료원의 일개 과로 있으니 실적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그나마 치과계는 이수구 서울지부장 시절에 서울시장애인치과병원을 건립해 명분은 살렸다. 현재 공공 치과의료의 업무는 열린치과봉사회, 스마일재단과 같은 자발적인 봉사단체와 보건소에서 의뢰된 개인 치과의원 등이 떠맡고 있어 사실상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민간부문에서 도맡은 상태다.

 

공공 치과의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은 일간지 기사에서도 단적으로 나타난다. 진주의료원 폐업을 반대하는 6개 의약직능단체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는 기사가 나왔지만,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은 치협을 빠뜨렸다.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하거나 글자 수가 너무 많아 그랬겠지만 우선순위에서 제외하는 기자의 무의식은 국민과 정치권의 시각을 대변한다.

 

물론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치과의사 수, 점차 확대되는 보험 적용, 환자도 없는 개원 현실에서 한가하게 공공 치과의료 타령이냐며 폄하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장치다. 환자와 의료원 노조의 도덕적 해이와 경영적자는 당연히 예측가능한 일이지만 치과의사가 원장으로 재직하며 흑자를 낸 김천의료원을 살펴보면 리더십이 문제이지 경영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75세 이상 노인계층은 틀니보험 50% 적용도 부담이 되므로 연령상한도 낮춰야 한다. 부작용이 많은 보건소 무료틀니 예산으로 부담률을 인하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다. 이미 실패한 영국과 일본의 틀니제도에서 배워야 하는데, 치과의사 본인 이외에는 왜 무상이 좋지 않은지를 납득시키기가 어려우니 답답할 따름이다.

 

그때 대기실에서 계단 조심해서 잘 내려가시라고 떠나보낸 할머니가 아직 어릿하다. 틀니는 하셨는지 개원일 기념으로 도움을 드릴까 해서 찾아본 진료기록부에는 전화번호도, 그 흔한 휴대폰 번호도 적혀있지 않았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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