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신문 편집인 칼럼] 화성에서 온 정부, 금성에서 온 의료계

2024.03.21 11:54:11 제1057호

최성호 편집인

화성의 대기는 매우 희박하고 차갑지만, 지구보다 태양에 가까운 금성의 대기는 밀도가 매우 높고 건조하고 뜨겁다고 한다. 1993년 초판이 나온 후 3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스테디셀러인 존 그레이 작가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누구나 한 번쯤 제목은 들어봤을 것이다. 남녀 관계의 바이블, 연예의 교과서로 불리며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부가 팔린 이 책은 40년간 관계 상담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2만5,000여명의 남녀와 상담을 통해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의 원인을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남자는 화성에서,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는 한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로 남녀 간에 생기는 갈등을 풀어나간다. 저자는 각각 다른 언어와 사고방식을 가진 행성에서 왔지만, 지구에서 오랜 기간 살아가다 보니 서로가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고 말하면서, 상대가 자기처럼 생각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똑같이 원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갈등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다르다는 것을 기억할 것’

 

남녀가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할 때 비로소 사랑이 기적처럼 지속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이 오랜 기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이러한 결론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진화 심리학의 발달로 남녀 간의 다른 사고방식, 감정, 욕망 등을 대부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남녀 간의 다름을 연구하고 화합을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공유해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요즘 시대의 남녀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이유 중 하나다.

 

지금 의료계와 정부의 발표를 들어보면 ‘화성인은 화성의 언어를, 금성인은 금성의 언어만 사용한다’는 느낌이다. 견해 차이를 비난하기 이전에 본성이 달라서 생긴 언어적 차이를 먼저 존중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말을 왜 그렇게 해?”하고 싸움을 시작하면 그 싸움에 끝이 있을 수 없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의료 공백’ 사태 해결과 전공의와 의대생 보호를 위해 논의를 거듭하고 있다. 의대 교수들은 환자도 지켜야 하고, 면허정지와 유급 등 불이익에 처할 전공의와 의대생들을 ‘스승’으로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대 교수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을 위한 대화의 장에 임하고 여기에서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개별적, 자발적인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번 전공의들의 자발적 사직 사태는 한국 의료 체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공론화하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다시없을 기회를 우리에게 주었다는 효과가 있다. 전공의들이 처해 있었던 수련 과정은 한국 의료 체계의 약한 고리였고 이 약한 고리가 가장 먼저 끊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주었다. 수련 과정이라는 이유 아래 전공의들은 거대 병원의 수익 40% 정도를 저임금 중노동으로 맡아 오고 있었다. 한국 의료에서 거대 병원들의 수익이 이들을 통해 유지되고 있었다는 점이 전공의들이 사라지자마자 거대 병원들의 적자라는 점으로 여실하게 드러났다. 사실 도제식 교육은 모든 직업 전문가 교육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의 하나지만,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저임금 중노동을 당연시하는 고질적인 병폐임은 모든 분야에서 역사적으로 명백하다.

 

물론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은 무리한 정책 집행과 업무명령을 남발한 정부가 더 크다. 조만간 의료계와 정부는 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때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만나보길 바란다.

 

우주 연구진에 의하면 화성과 금성의 대기는 놀랍도록 비슷하다고 한다. 매우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생각보다 훨씬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있을 의료계와 정부의 대화는 환자를 살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니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다름이 무조건 틀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만나길 바란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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