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금 매입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금 가격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외환보유 전략의 전제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중앙은행은 달러 자산과 국채를 중심으로 외환보유고를 운용해 왔지만, 최근에는 금을 외환보유 자산의 한 축으로 재배치하며 포트폴리오 구성을 조정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기적인 투자 판단이라기보다, 금리 환경 변화와 통화 신뢰에 대한 구조적 대응으로 볼 수 있다.
중앙은행의 금 순매입은 2023년을 기점으로 본격화됐고, 2025년에도 이러한 흐름은 이어졌다. 일부 대형 국가의 매입 속도는 이전보다 완만해졌지만, 폴란드·카자흐스탄·브라질·터키 등 여러 국가들이 금 비중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며 전체 수요를 지탱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매입 규모 자체보다, 외환보유고 내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어디까지 끌어올리고 있는가다. 금을 단순한 보조자산이 아니라 환율 안정과 대외 신뢰를 뒷받침하는 축으로 재배치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수치를 통해 보면 중앙은행들의 전략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2025년 11월 30일 기준, 폴란드는 연간 약 95톤의 금을 추가하며 적극적인 매입 흐름을 이어갔고, 외환보유고 중 금 비중 역시 약 30% 내외까지 빠르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달러 중심 외환보유 구조에서 금의 비중을 의도적으로 확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카자흐스탄은 연간 약 49톤의 금을 매입했으며, 외환보유고 내 금 비중이 50%를 상회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외환보유 자산의 절반 이상을 금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달러 자산에 대한 단순한 ‘헤지’를 넘어 금을 사실상 핵심 외환자산으로 운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브라질은 연간 약 43톤의 금을 매입하며 순매수 흐름에 동참했지만, 외환보유고 내 금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달러 자산 중심의 외환 체계를 유지한 채, 금을 보완 자산으로 점진적으로 편입하는 전략에 가깝다. 터키는 연간 약 27톤의 금을 매입했으며, 외환보유고 중에서 금 비중이 40% 후반대로 추정된다.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환율 변동성과 금융 불안에 대비한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은 연간 공식 집계 기준 약 26톤을 추가 매입한 것으로 나타난다. 절대 보유량은 최상위권에 속하지만, 외환보유고 규모가 워낙 커 금 비중은 약 8% 수준에 머문다. 다만 중국은 과거에도 공식 통계 외 비공개 매입 가능성이 거론돼 온 만큼, 수요를 숫자만으로 단정하기보다는 ‘공식 집계가 하한일 수 있다’는 정도의 여지를 두는 편이 타당하다.
이에 비해 한국의 경우 중앙은행 차원의 금 매입은 2013년 11월을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당시 금 가격은 온스당 1,200달러대 중반 수준이었으나, 이후 글로벌 금융 환경 변화와 함께 금 가격은 장기적인 상승 흐름을 이어왔다. 달러 기준으로 보면 2013년 11월 이후 금 가격은 현재까지 약 3배 수준으로 상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기간 동안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금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온 것과 대비하면, 한국은 과거 매입 시점에 대한 정책적 부담으로 인해 이후의 외환보유 전략 전환 흐름에 동참하지 못한 셈이다. 이는 금 가격의 단기 등락을 넘어, 외환보유 전략의 방향성과 시기 선택이 장기 성과에 어떤 차이를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처럼 국가별 매입량과 외환보유고 내 비중, 그리고 한국 사례까지 함께 보면, 중앙은행의 금 매입은 가격 상승 기대에 따른 단기적 판단이라기보다 각국의 통화 구조와 외환 전략에 기반한 선택에 가깝다. 그렇다면 중앙은행들은 왜 지금 금 비중을 확대하고 있는 것일까. 그 배경에는 금리 사이클의 전환 국면과 인플레이션 환경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금은 금리가 상승하는 구간에서는 매력이 떨어지고, 금리 인하 구간에서 재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번 사이클은 단순한 금리 등락을 넘어, 인플레이션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금리·물가·환율의 변동성이 동시에 높은 국면이 장기간 이어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과정에서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여겨져 온 미국 국채 역시 과거만큼 안정적인 완충 장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실질금리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통화 가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수록,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달러 자산만으로 외환보유고를 구성하는 방식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금의 역할이 분명해진다. 금은 이자를 지급하지 않지만, 발행 주체의 신용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 자산이다. 즉 금은 누군가의 부채나 정책 판단에 의존하지 않고 보유할 수 있는 자산으로, 외환보유고 내에서 일종의 ‘최종 안전판’ 역할을 한다.
중앙은행이 금 비중을 늘린다는 것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판단이라기보다, 외환보유고 운용의 우선순위를 환율 안정과 통화 신뢰로 옮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시장 상황에 따라 가치가 크게 흔들릴 수 있는 달러화 자산보다, 위기 국면에서도 신뢰가 훼손되지 않는 자산의 비중을 의도적으로 높이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흐름은 개인 투자자에게도 분명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금은 단기 가격 변동을 활용한 매매 대상이라기보다, 금리 사이클과 통화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자산배분 수단으로 접근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특히 금리 인하 국면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는 중앙은행이라는 장기 수요자가 시장에 존재하기 때문에, 가격이 조정을 받더라도 구조적인 수요가 급격히 약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는 금이 포트폴리오 안정성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 이유다.
물론 금이 항상 상승하는 자산은 아니다. 금 역시 조정 국면을 거치며 가격 변동성을 보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금을 위험자산의 대체재나 투기 대상으로 보기보다, 통화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자산 구성의 균형을 잡아주는 일종의 보험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금의 가격 자체보다 포트폴리오 내에서 수행하는 기능이 더 중요해진다.
중앙은행의 금 매입 지속은 통화 환경이 과거와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금리 사이클 전환 국면에서 기존의 안전자산만으로는 외환보유 전략을 구성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중앙은행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개인 투자자 역시 금 가격의 단기 방향을 예측하기보다, 중앙은행들이 이 시점에 금을 선택하고 있는 이유-금리 변화, 인플레이션 환경, 통화 신뢰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이해해 자산배분 투자 판단에 반영하는 접근이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