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단] 씁쓸한 가을 나들이

2011.10.31 20:00:40 제467호

기태석 논설위원

젊든 연륜이 있든 간에 현직으로부터의 은퇴를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같은 연배 치과의사 한 분이 진료실에서 희생 당하셨다는 비보를 접하고 다시 한 번 은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요즘 비슷한 또래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하다보면 나를 포함해 은퇴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토로하는 동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대화의 주제가 사소한 주변 이야기로 시작되나 결론으로 갈수록 비관적으로 흐르고, 마침내 하루 빨리 핸드피스를 놓고 싶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원 없이 환자도 보았고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여유를 가지고 제2의 인생을 찾기 위한 은퇴라면 좋으련만, 대부분이 피라미드 치과, 세금, 환자 스트레스, 자녀문제 등 복잡한 함수 관계를 가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대처할 자신이 없어 차라리 피하고 싶다는 것이면 이야기는 달라 질 수 있다.


선배님 한 분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병원을 갑자기 폐업하시고 교직으로 옮기셨다. 얼마 후 병원 정리를 위해 들렀더니 우편물이 쌓여 있었단다. “공단, 심평원, 보건소 세무서, 협회 등에서 날라 온 것이었는데, 뜯지도 않고 찢어버리는 쾌감을 너는 모를 거야” 하시며 웃던 모습이 잊혀지질 않는다.


우리는 직장인들 시각에서는 정년이 없는 꿈의 직업이 아니었던가? 언제부터 미래와 환자에 대한 두려움으로 천직을 스스로 포기하기에 이르렀나. 현실은 냉혹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70~80대 선배님들이 가시던 구강검진센터 자리가 50대 치과의사로 채워지고 있고 심지어 우리 지역에는 갓 졸업한 치과의사가 근무하는 곳도 있다. 정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어렵사리 입사한 대기업 사원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치전원 시험공부를 하듯이, 우리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 현실화 된다면 일본처럼 치과대학 신입생은 미달될 것이고 젊은 치과의사들이 진료실을 떠나 공무원 자격시험 공부를 하는 것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전국 산들이 울긋불긋하게 단풍으로 물들고 있다. 나무들도 다가올 혹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해 구조 조정을 시작한 것이다. 찬란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 제 살 깎듯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낙엽을 떨구고 있는 것이다. 시시각각 모진 비바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그에 대한 대비를 안 한다면 우리의 미래도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치과대학 입학정원 감축은 미래를 위한 선결 조건이 되어야만 한다.


늦었지만 필자가 속한 치협 치과미래비전특별위원회에서는 치과의사들의 영역을 넓힐 수 있도록, 젊은 치과의사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새로운 공직이나 연구소, 제도가 있는지, 여자 치과의사들에게 알맞은 새로운 일자리가 없는지는 물론 앞으로 학교나 진료실에서 쏟아져 나올 은퇴하는 선배님들이 일 할 검진 센터, 노인 요양원, 보건지소 등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연구에 착수하려 한다. 회원 여러분들의 관심과 격려를 필요로 한다.


경북 성주 가야산 자락 선석산 솔밭사이 세종대왕자태실에는 세조를 포함한 18명의 세종의 왕자와 단종의 태가 안치되어 있다. 짧은 생에 계유정난 등 피비린내 나는 치열한 삶을 살다간 그들이었지만 더 많은 시간을 처음처럼 평화롭게 누워있는 것을 보면서 치과계의 시련 또한 찰나에 불과한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과 우리의 노력에 따라 미래가 밝아 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은퇴를 생각하는 나와 같은 처지의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씁쓸한 가을 나들이를 마쳤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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