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늘 애용하던 커피잔 손잡이가 깨져서 버리게 되었다. 유학생 시절 바자회에서 10엔에 구입해 25년은 사용한 듯하다. 그동안에도 이가 빠진 곳이 두 곳 있었지만, 그때마다 포셀라인 리페어 키트 레진으로 수복해 사용해왔는데 이번에는 손잡이가 파손되어 결국 버리게 되었다. 물건도 연이 다하면 떠나는 것이 이치이건만 오래 사용한 물건이라서 약간 아쉬움이 남는다. 두께나 모양이 뜨거운 물을 넣었을 때 손에 전달되는 온도와 무게가 딱 떨어지는 잔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크다. 처음 이가 빠졌을 때 비슷한 것을 구해보려고 찾았지만 대부분의 잔들은 입구가 넓어 물이 빨리 식고, 두께가 두꺼워 무겁고 투박했다. 그 커피잔 덕분에 좋은 잔이 어떤 것인 줄 알게 되었고 오랫동안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필자에게는 오래 사용하는 물건이 하나 더 있다. 헝겊 필통이다. 중학교 때 구매한 것이니 45년이 넘었다. 지퍼는 두 번 교체했고 헝겊도 많이 닳기는 했지만 아직 사용하는 데 별 무리가 없다. 지금도 항상 가방 속에 넣고 다닌다. 예전에는 필기구를 넣었지만 요즘은 USB나 신분증 등을 넣는 데 사용한다. 구멍 나거나 해진 부분이 생기면 직접 바늘로 꿰매곤 한다. 특별히 비싼 것도 아니고 흔한 물건이지만 손때가 묻고 익숙하다 보니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오래 사용한 이유가 물건이 꼭 비싸거나 좋아서만은 아니다. 사용하다 보니 그 장점을 발견하게 되고, 점차 그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새로운 것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탓이다. 물론 폴더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뀌는 것처럼 혁신적인 변화라면 바꾸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헝겊 필통이나 커피잔처럼 오랜 세월 동안 사용되어온 물건들은 이미 혁신적 변화를 끝낸 것들이다. 필통도 플라스틱, 철제, 자석, 헝겊 등 다양한 재료로 변화했고 이제 필기구의 필요성이 감소된 시점에서 더이상 혁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커피잔은 더욱 그러하다. 청소부가 다치지 않도록 손잡이가 부러진 커피잔을 종이로 싸면서 사람 관계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사건·사고가 아닌 이상 사람 간의 이별은 시간과 환경변화에 따라 발생한다. 시간에 따른 이별에는 부모님과 이별이 있다. 10여년 전에 부친께서 떠나셨고 2년 전 장인께서 타계하셨다. 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이별들이다. 반면 우리 생활 속에서 만나는 이별은 대부분 환경변화에 따른 이별이다. 주말부부가 그렇고, 요즘은 뜸해진 기러기 아빠가 그렇다. 자녀가 대학생이 되어 떠나도 그렇다. 거리적 환경변화에 따른 것이다. 이외에도 경제적 변화에 따른 이별도 많다. 파산을 하거나 로또에 당첨되면 친구관계나 가족관계에 변화가 온다. 그런 것 중에 가장 큰 영향은 심리적 변화가 클 때이다. 부부가 이혼하고, 친구 간에 상처 주고 헤어지는 등의 모든 시작이 심리 환경변화에서 시작된다. 어떤 이별이든지 아쉬움과 미련 혹은 회한을 남기지만, 커피를 마시기 위해 새로운 커피잔을 사용하듯이 새로운 만남과 또 다른 인연이 시작되는 것 또한 세상사이다.
요즘은 사람이든 사물이든 익숙함이 더 좋다. 사람은 추억을 공유한 사람일수록 대화할 거리가 많다. 필자가 컴퓨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늘 새롭게 적응하기를 강요당하기 때문이다. XP에 익숙해지니 원도우7이 나오고, 이젠 윈도우10이 아니면 작동하지 않는 프로그램도 많아졌다. 어제는 15년 된 병원대기실 인터넷 컴퓨터를 치웠다. 스마트폰 보급화로 대기실 인터넷이 환자들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업그레이드로 사용할 수 없어서 창고에 쌓인 노트북만 10대는 넘는다. 필자는 혁신이 빠른 물건보다는 혁신이 적은 물건이 좋다. 그래서 25년 된 커피잔에 아쉬움이 남고 45년 된 필통을 아직도 가지고 다닌다. 나보다 10년은 더 늙어 보이는 52년 된 초등학교 친구가 좋다. 두세 달에 한 번 통화하고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도 늘 같음이 좋다. 혁신과 첨단이 결코 넘을 수 없는 것이 추억과 익숙함이다. 새로운 커피잔을 천천히 찾아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