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1 (토)

  • 흐림동두천 23.5℃
  • 흐림강릉 30.0℃
  • 서울 24.7℃
  • 대전 24.5℃
  • 대구 28.9℃
  • 흐림울산 27.3℃
  • 광주 26.0℃
  • 부산 23.5℃
  • 흐림고창 25.6℃
  • 흐림제주 29.7℃
  • 흐림강화 22.9℃
  • 흐림보은 24.4℃
  • 흐림금산 25.4℃
  • 흐림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8.5℃
  • 흐림거제 24.1℃
기상청 제공
PDF 바로가기

심리학이야기

“빨리 봐주세요”

URL복사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 이야기(480)
최용현 대한심신치의학회 부회장

실장으로부터 초등학교 환자가 학원시간 때문에 빨리 봐달란다는 전갈을 받았다. 빨리 진료를 마치고 예약을 잡는데 4주 안에 시간이 나지 않아서 5주로 잡아도 되냐고 물어왔다. 코로나로 학교도 안 가는데 무슨 일이냐 물어보니 실기형 학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여서 시간을 낼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필자가 젊었던 시절에는 빨리해달라는 환자를 보면 화가 났었다. 치과 진료 특성상 환자의 상태에 따라 진료시간이 달라지는데 획일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하지만 이제는 분노보다는 안타까움이 먼저 든다. 어려서부터 놀지 못하고 바쁘기만 한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러셀은 ‘행복의 정복’에서 아이들에게 심심함(boredom)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 했다. 아이들은 심심해야 스스로 놀거리를 찾고, 어른들은 알 수 없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고, 그것이 나중에 창조력으로 발전된다고 하였다. 쉬는 시간이 하나도 없이 바쁜 아이들을 보면 안쓰럽기보다는 안타깝다. 최근엔 빨리 봐달라는 환자가 많이 줄어들었다. 일반 생활에서도 빨리라는 표현을 예전보다 잘 듣지 못한다. 사회가 선진국에 진입하면서 순서나 기다림에 익숙해진 이유이지만, 또 다른 면에서 사회가 빨라진 탓도 있다.


90년대 후반 이메일이 보급되기 전까지는 편지나 팩스를 사용했다. 90년대 초 건강보험청구를 도트프린터로 출력해 제출하던 시절에는 출력을 걸어 놓고 다음날 출근해 정리하였다. 출력에 몇 시간이 걸리던 시절이었다. 그것이 어느 날 CD로 대체된 것만으로도 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지금은 EDI로 클릭 한 번에 끝난다. 우리 사회에서 시간은 그렇게 획기적으로 짧아졌다. 송금도 마찬가지다. 90년대 초에는 직원봉급을 현금으로 지급했다. 그 후 전화로 하는 텔레뱅킹이 나오고, 인터넷뱅킹이 나오고, 이젠 스마트폰으로 송금할 수 있다. 텔레뱅킹으로 송금하면 30여분 걸리던 것이 이제는 10여분이 채 걸리지 않고 카카오뱅크를 사용하면 1분도 걸리지 않는다. 빨라진 세상 속에서 ‘빨리’라는 표현이 사라져간 이유다.


코로나로 인해 모처럼 차를 몰고 여름휴가를 떠났다. 서울을 벗어나면서 처음 느낀 생각이 지방으로 갈수록 신호등 바뀜이 느린 것이었다. 불과 몇십 초 차이일 텐데도 돌아오는 날까지 적응되지 않았다. 빠름에 익숙하니 느림이 불편했다. 이번 여행에서 의대 기초학교실 교수인 후배를 만났다. 도심에서 벗어난 근교 한옥에 차려진 찻집 대청마루에 앉아 차를 마셨다. 머리가 허연 원로교수님이 되셨지만, 학창시절인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생각과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장맛비를 보며 대청마루에서 옛 벗을 만나 나눈 대화와 분위기는 쌍화차 맛을 못 느낄 만큼 좋았다. 서로가 각자 살아온 길도 경험도 달랐지만 결국 같은 생각과 같은 방향을 보고 있음을 알았다. 헤어질 때까지 느림과 변함없음을 즐겼다.


‘빨리’는 가치기준이 현재가 아닌 미래에 있는 단어이다. 현재를 희생시키고 미래를 추구한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언제나 현재이고 미래는 언제나 나중이다. ‘빨리’를 생각하는 한 절대로 현재에 충실하기 어렵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현실을 희생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가 미래에 매달려 현실을 희생시킨다. 필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빨리 대학생이 되길 바랐고, 대학 시절에는 빨리 대학을 졸업하기를 바랐다. 공보의 시절도 수련의시절도 빨리 끝나기만 바랐고 유학 또한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개원 시절에는 어느 날 체력이 힘들기 시작하면서 근무가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근 40~50년을 미래가 빨리 오기만을 바라며 살았다.


미래는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오고 또 미래를 기다리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늘 그리고 지금에 충실하면 되는 것을 아는 데 멀리 돌아왔다. 현재는 지나면 다시 오지 않는, 미래보다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빨리’가 미래인 것을 아는 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피니언

더보기


배너

심리학 이야기

더보기
우울과 불안의 관계
우울과 불안은 현대인 심리적 고통의 양대 산맥으로 불린다. 물론 개개인으로 접근하면 성격에 따라 나타나는 형태와 민감도의 차이는 있으나 양상은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과거에 대한 집착은 우울을 만들고,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불안을 만들어낸다고 알고 있다. 우울과 불안과의 관계에서 불안은 늘 우울을 유도하기 때문에 우울 속에 불안이 포함되는 관계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우울과 불안을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긍정적인 시각으로 파악한다. 인류가 탄생하고 좀 더 많이 우울하고 불안한 자들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 성향이 결국 DNA 속에 내재되었다. 인체가 감염되면 염증유전자가 발현되며 면역체계가 활성화되고 이에 따라 기분저하 유발 시스템이 가동된다. 우울모드로 진입되면 외부 활동을 중지하고 에너지 비축으로 회복에 집중하는 효과가 있다. 우울한 모습은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 구조 신호를 보내고 도움을 받는 데 유리했다. 개인적으로는 문제 해결을 위한 사고의 집중력을 높이고 위험 회피나 환경 적응에 도움이 되어 생존가능성을 높였다. 불안은 사회적 민감성을 높여서 집단 내에서 갈등을 줄이고 협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또 신경계를 활성화하여 집

재테크

더보기

이스라엘-이란 분쟁 속 2025년 6월 원달러 환율 시황과 전망

2025년 6월 13일 이스라엘이 이란을 기습적으로 공습하면서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 금융시장이 빠르게 반응하고 있으며, 원달러 환율 또한 민감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가와 달러인덱스의 움직임은 글로벌 투자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됐으며, 환율의 향후 방향성에 따른 자산배분 전략의 중요성도 높아졌다. 이 칼럼에서는 원달러 환율의 흐름을 글로벌 금리 사이클과 프랙탈 분석을 바탕으로 전망하고, 투자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다뤄보려 한다. 2025년 6월 18일 현재 글로벌 경제는 금리 인하 사이클의 B~C 구간 후반부를 지나고 있다. 본격적인 경제위기 국면(C)의 진입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환율시장 역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필자의 지난 분석에 따르면, 경제위기 국면(C)의 시작은 2025년 4분기(10월 전후)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 시기가 다가올수록 환율의 상승 압력도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과거의 금리 사이클과 환율 움직임을 분석해보면, 환율은 대개 경제위기가 본격화되기 직전에 급등하면서 이전 고점을 돌파하는 패턴을 반복적으로 나타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지난 두 달간 꾸준한 하락


보험칼럼

더보기

알아두면 힘이 되는 요양급여비 심사제도_④현지조사

건강보험에서의 현지조사는 요양기관이 지급받은 요양급여비용 등에 대해 세부진료내역을 근거로 사실관계 및 적법 여부를 확인·조사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조사 결과에 따라 부당이득이 확인된다면 이에 대해 환수와 행정처분이 이뤄지게 된다. 이러한 현지조사와 유사한 업무로 심평원 주관으로 이뤄지는 방문심사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주관이 되는 현지확인이 있는데, 실제 조사를 받는 입장에서는 조사 자체의 부담감 때문에 모두 다 똑같은 현지조사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시 주관에 따라 내용 및 절차, 조치사항이 다르기 때문에 해당 조사가 현지조사인지 현지확인인지, 혹은 방문심사인지를 먼저 정확히 파악한 후 적절한 대처를 해야 한다. 건강보험공단의 현지확인은 통상적으로 요양기관 직원의 내부 고발이 있거나 급여 사후관리 과정에서 의심되는 사례가 있을 때 수진자 조회 및 진료기록부와 같은 관련 서류 제출 요구 등의 절차를 거친 후에 이뤄진다. 그 외에도 거짓·부당청구의 개연성이 높은 요양기관의 경우에는 별도의 서류 제출 요구 없이 바로 현지확인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방문심사는 심사과정에서 부당청구가 의심되거나, 지표연동자율개선제 미개선기관 중 부당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