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12월 21일)은 동지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니 평생 할 일을 다 한 것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아마도 평생 들을 트로트 노래를 다 들었고 평생 쓸 마스크를 다 쓴 듯하다. 일 년 내내 TV에서는 트로트가 아니면 코로나 이야기뿐이었다.
며칠 전 트로트 경연 대회에서 어린 출연자가 부른 ‘단장의 미아리고개’ 가사 중에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 때’란 구절이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어려서부터 들어온 노래 가사 때문인지 왠지 동지라는 단어는 북풍한설의 눈보라를 연상하게 한다. 노래 가사는 한국 전쟁 당시 서울 북쪽 유일한 외곽도로인 돈암동 미아리고개에서 1.4후퇴 때 피랍되던 가족들과 작별을 하던 장면을 묘사하였다. 그런 이유인지 전쟁 이후부터는 늘 동지는 추위와 배고픔의 상징처럼 되었다. 하지만 전쟁 그 이전에는 의미가 달랐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동지는 정월대보름과 같은 느낌의 명절이었다. 가장 풍요로운 추석이 지나고 마지막 겨울 준비인 김장까지 모두 끝나서 한 해의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새경도 받았고 먹거리도 넉넉한 때이며, 봄이 올 때까지 쉴 수 있는 일종의 휴가가 시작되는 기쁜 날이었다. 양식이 모두 떨어진 보릿고개와는 대조되는 날이다. 여유가 있는 집은 팥죽을 많이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다. 낮이 짧고 밤이 가장 길기 때문에 많이 잘 수 있어 좋았다.
동지가 지나면 일조량이 늘어나고 희망이 생기며 양기가 시작된다는 의미에서 옛날 서당은 동짓날에 그해 입학식을 하고 개학을 하였다. 고대 중국에서는 동지를 새해로 시작한 때도 있었다. 동지에 팥죽을 먹는 이유도 새해를 시작하는 날에 악귀나 잡귀를 쫓아내기 위해 팥죽을 먹고 뿌렸다. 팥은 붉은색으로 양을 의미하기 때문에 음기를 지닌 잡귀를 쫓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다. 24절기 태양력이 중국을 통해 들어올 때 팥죽도 같이 들어온 듯하다. 팥죽을 먹어서 몸에 있는 잡귀를 쫓고 뿌려서 주변의 악귀를 쫓고 나서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이었던 것이 이제는 그런 의미는 모두 사라지고 그저 습관적인 풍습으로 남게 되었다.
올해도 열흘 남았다. 늘 이맘때면 회한이 많지만, 올해는 아무런 느낌이 없다. 송년회가 하나도 없었고, 아직도 코로나 방역으로 단조로운 생활만 이어가기 때문이다. 집과 병원만 오갈 뿐이고,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고, 그저 문자로 안부나 전하는 정도이고 보니 송년 기분이 전혀 없다. 일 년 내내 유지해온 단조로운 생활의 연속일 뿐이다. 이렇게 연속적으로 내년으로 넘어갈 듯하다. 물론 이런 추세라면 신년도 마찬가지일 듯싶다.
지난 1년간 자의든 타의든 필자 생활이 미니멀화 되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졌다. 어찌 생각하면 단조롭고 지겨운 생활 양상이었지만 바꾸어 생각해보면 생활습관과 패턴을 미니멀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도 해본다. 스스로 바꾸려면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 코로나 시대 때문에 1년 만에 익숙한 단계까지 오른 듯싶다. 이젠 코로나가 끝나도 지금 패턴에서 조금 변하는 정도일 것 같다.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본인만의 시간을 스스로 즐기는 방법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동지는 남쪽 갔던 태양이 남회귀선에서 다시 되돌아오는 날이다. 필자도 새해를 맞이할 마음을 새롭게 준비해본다. 새해는 백신이 보급되기 시작하니 점차적으로 변화가 일어날 것을 희망해 본다. 새해는 예전처럼 마스크 없는 삶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지난해는 마스크 없는 삶이 얼마나 행복하고 고마운 삶이었는지 알게 해 준 해였다. 일상이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 평범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병들었을 때 비로소 건강이 행복이란 것을 깨닫듯, 경자년은 그런 깨우침을 주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를 맞아하는 마음을 내는 동짓날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지난 1년 동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일선 치과를 지켜낸 치과의사, 치과위생사, 직원 등 모든 분들을 응원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듀! 경자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