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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치과생활

아름다운 야외 미술관 속 미술관, 몽마르트르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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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작은 미술관에서 만나는 위대한 예술가 이야기 #3
글 / 사진 안성규 프랑스 미술관 국가 공인가이드

 

 

언덕을 올라가며

 

2021년 5월 19일. 프랑스 파리는 약 7개월간의 봉쇄를 풀고 다시 카페와 레스토랑, 미술관의 문을 열었다. 봄은 진즉 왔지만 잔뜩 웅크리고 있었던 파리는 이제서야 기지개를 켜며 비로소 진짜 봄이 왔다고 행복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파리지앙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정성껏 준비된 테라스에 앉아 따스한 햇볕 아래에서 에스프레소와 함께 사랑하는 사람들과 수다를 떤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순간이었던가! 일상적인 이 모든 평범함이 지금 이 순간, 너무나 특별하다.

 

 

햇살이 좋은 일요일 아침. 파리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올랐다. 순교자(Martyr)의 언덕(Mont)이라는 말에서 유래가 된 Montmartre는 프랑스가 로마제국의 영향 아래 있던 AD 250년경 이탈리아에서 온 생 드니(Saint Denis)가 예수의 복음을 전하다가 이곳에서 순교를 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1871년 파리 코뮌 사태가 끝나고 시민들의 애정 어린 모금으로 세워진 거대한 사크레쾨르 성당은 이 언덕이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특별한 장소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19세기 중, 후반부터 오늘날까지 이 언덕은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예술가들의 언덕으로서 파리지앙들과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더욱 친숙하다.

 

19세기 인상주의 화가 모네, 르누아르, 로트렉, 고흐를 비롯하여 20세기 거장 피카소 등 파리에서 활동했던 수많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이 언덕에서 그림을 그리며 인생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의 많은 장소들은 화가들의 작품 속 실제 배경이 되며 그들의 생생한 인생 스토리를 들려준다. 다시 말해 언덕 자체가 거대한 야외 미술관이다.

 

 

그런데 이 야외 미술관에 또 하나의 작은 미술관이 존재한다. “뮤제 드 몽마르트르”라 불리는 이곳은 과거 화가들의 아틀리에이자 거주 장소로 사용되었던 곳인데 현재 몽마르트르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주요 작품 전시와 함께 19세기 당시 카바레와 화가들의 아틀리에를 재현하고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도시를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이 언덕을 방문하지만 생각보다 이 미술관에 입장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알고 보면 이곳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미술관의 울타리를 넘어서 이 언덕의 골목길과 연결되어 더욱 풍성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말이다. 날씨가 너무 좋아 언덕 이곳저곳을 산책하니 벌써 점심시간이다. 서둘러 해결을 하고 미술관으로 입장하였다.

 

 

첫 번째 만남 : 오귀스트 르누아르

 

미술관에 들어서니 아름다운 정원과 몇 채의 하얀 건물들이 나를 맞이하였다. 클로드 모네와 함께 19세기 인상주의를 이끌었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이곳의 스튜디오에서 1875년부터 1877년까지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였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쏟아지는 빛의 어른거림의 순간성을 포착하여 밝고 경쾌하게 표현한그의 초기 명작들은 바로 이 곳에서 탄생하였다. 나는 정원을 거닐면서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 중인 그의 작품 <그네>의 배경을 만나는 큰 기쁨을 만끽하였다.

 

화가가 살아가는 현실적인 세상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아내되 가난, 절망, 죽음 등 세상의 어두운 모습은 결코 그리지 않고 삶의 행복한 순간만을 평생에 걸쳐 그린 르누아르의 예술세계는 이 정원의 사랑스러움과 매우 잘 어울린다. <그네>와 같은 시기에 그려진 화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의 무도회>도 바로 여기 그의 스튜디오에서 완성되었다.

 

‘갈레트의 풍차’라는 의미를 가진 이 작품의 배경은 19세기 당시 몽마르트르의 시민들이 모여 주말에 춤을 추던 선술집이었으며 현재는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다. 원래 이 언덕은 도시화가 되기 전에 파리에서 풍차가 가장 많은 곳이었는데 이 풍차들은 밀가루를 얻기 위해 밀을 갈거나 다양한 목적을 위해 포도, 석고, 자갈 등을 분쇄하는 기능을 하였다. 그런데 19세기 후반부터 산업이 더욱 발전하고 몽마르트르 구역이 파리 시내로 편입되면서 도시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지금은 두 개의 풍차만 존재할 뿐이다.

 

도시 전체가 피로 얼룩졌던 1871년의 파리 코뮌 사태가 끝이 나고 상처가 아물어가는 1877년 어느 주말, 르누아르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이 선술집에서 힘들게 노동하며 살아가는 파리지앙들이 휴일을 맞이해 춤을 추며 다시금 일상의 행복을 찾는 생생한 순간을 목격했다. 무도회장을 가득 채운 쏟아지는 빛,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 음악에 맞춰 흔드는 이들의 사랑스러운 몸짓, 이 모든 것이 화가를 사로잡았고 화가의 붓끝에서 표현되는 그 생명력은 오늘날 작품을 감상하는 우리에게도 큰 행복으로 다가온다.

 

 

또 다른 만남 :

수잔 발라동과 모리스 위트릴로 그리고 앙드레 우터

 

르누아르의 그네 맞은편에 위치한 La Maison du Bel Air 라 불리는 하얀색 미술관 건물로 들어갔다. 삐걱거리는 나무 마루를 밟으며 19세기 몽마르트르의 풍경을 담고 있는 많은 유화 그림들과 카바레의 다양한 포스터들을 보고 있으니 마치 그 시대 속으로 들어와 있는 듯하였다. 그 중에 나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곳은 몽마르트르의 여류 화가였던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과 그녀의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그리고 그의 친구이자 수잔의 연인인 앙드레 우터(André Utter)의 작품들이 전시된 공간이었다.

 

 

수잔 발라동은 젊은 시절 이 언덕에서 활동하던 대표적인 모델이었으며 동시대 활동하던 여러 화가들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한다. 또한 18세에 이미 아빠가 누군지 모르는 사생 아들을 낳았는데 그는 ‘모리스 수잔’이라고 불리다가 이후 수잔의 연인이었던 Miquel Utrillo의 성을 가져와 그의 이름은 ‘모리스 위트릴로’가 된다. 수잔의 곁에는 여러 남자들이 있었지만 그녀의 마지막 사랑은 결국 아들의 친구인 화가 ‘우터’이다. 지옥의 3인방으로 불렸던 발라동, 위트릴로, 우터는 몽마르트르 미술관 정원 한쪽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함께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였다. 20년이나 차이 나는 나이와 주변의 따가운 시선들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술에 대한 그들의 열정이 뜨거웠기 때문이었다.

 

 

20세기 초 예술계는 여전히 남성들의 세상이었다. 여성화가로서 설 자리는 너무나도 좁았고 위태로웠다. 모델로 활동하던 수잔은 물랭루즈의 화가 툴루즈 로트렉을 만나게 되고 연인 관계로 발전했었는데, 그가 수잔에게 에드가 드가를 소개해 주면서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 여성화가로서 활동하기에 환경은 척박했지만 그녀는 그 누구보다 강했다.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어려움을 부딪히며 예술가들을 상대해 왔기에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 남성에게 종속되던 전통적인 여성상을 완전히 탈피하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그림 속에 담아냈다. 수잔 발라동은 꾸며진 여성이 아닌, 있는 모습 그대로의 여성의 아름다움을 누드화와 자화상으로 당당히 표현한 서양미술사의 의미 있는 화가이다.

 

한편, 그녀의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는 몽마르트르 언덕 구석구석을 유화로 그렸다. 그래서 작품 속에 들어가 있는 곳과 실제 배경을 비교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몽마르트르 미술관 옆에는 파리의 유일한 포도밭이 있는데 그 부근에 ‘라팽 아질’이라는 카바레가 있다. 이곳은 몽마르트의 많은 예술가들과 문인들이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아지트 중 한 곳이었으며, 지금까지도 영업을 하고 있다. 위트릴로는 이곳의 풍경을 계절에 따라 여러 작품으로 남겼다.

 

 

카바레의 이름인 Au Lapin agile은 ‘재빠른 토끼’라는 뜻인데 이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건물 정면 벽면에 붙어있는 토끼 그림과 관련이 있다. 1880년경 이 카바레(당시 이름은 ‘살인자들의 카바레’였다)의 주인은 캐리커처 화가 André Gill에게 건물 정면 벽을 장식할 간판 그림 제작을 의뢰했는데 화가는 빨간 스카프를 한 토끼가 와인병을 든 채 뜨거운 냄비에서 뛰어나오는 장면의 그림을 그려주었다. 그 후로 이 술집은 Au Lapin à Gill(질의 토끼) 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가의 이름과 그림 속 토끼의 모습을 동시에 표현하는 언어유희로써 카바레의 이름은 Au Lapin agile로 바뀌게 되었다. 고흐, 피카소, 라울 뒤피, 수잔 발라동 등 많은 예술가들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이곳은 예술가들의 카바레로 지금까지도 파리지앙들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앙드레 질의 오리지널 작품은 현재 몽마르트 미술관 내부 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언덕을 내려오며

 

몽마르트르에 생각보다 사람이 북적여서 놀랐다. 우리나라도 지금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니 한국의 여행지가 붐비는 것처럼 파리지앙들도 한동안 오르지 않았던 몽마르트르로 많이 나들이를 나온 것 같았다.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 테르트르 광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과 환한 미소를 띤 시민들의 모습을 보니 르누아르의 무도회 그림이 다시 떠올랐다. 일상이 회복되어가니 여행도 성큼 우리에게 한발 다가온 느낌이다. 다시 언덕을 올라가는 날에는 한국의 여행객들과 함께하는 기쁨을 맛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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