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보건복지부 예산은 46조 8995억원이다. 이중 건강보험을 제외한 보건의료예산은 1조9284억원으로 4%정도에 해당한다. 전국의 의료기관은 60,000여개소이다. 이중 군병원을 포함한 공공의료기관은 2014년12월 기준으로 213개소로 전체 의료기관수 의 0.3%에 해당한다. 건국초기의 사회부나 보건부 시절의 장관 중에는 의료인 많았다. 그러나, 보건사회부에서 보건복지부로 개편된 1994년 이후 23명의 장관 중 의료인 출신은 간호사2명과 의사1인이 전부이다.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이다. 4%와 0.3% 그리고 23명 중 3명은 한국의 정부가 보건의료를 바라보는 시각과 정책의 기조를 고스란히 드러낸 숫자들이다. 차기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병원장 출신의 의사를 내정하고 있지만, 단순한 면피성 인사라는 말도 있고, 원격의료와 관련된 “의료규제완화”를 하기 위한 노림수라는 말도 들려온다. 의료혜택을 확대한다는 생색은 내고는 싶지만 그렇다고 더 많은 돈을 쓰고 싶은 생각은 없는 것이 지금 정부의 속내가 아닐까.
근대사회 이전까지 의료는 특권층이 누리는 혜택의 하나였다. 훈련된 전문인력이 소수였고, 의료장비나 약품도 보잘 것 없었으니 치료를 위하여 많은 돈과 자원이 들어가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현대사회에서도 의료는 엄청난 자원을 필요로 한다. 숙련된 전문인력이 24시간 필요한 곳이 의료의 현장이다. 엄청나게 소모되는 자잘한 일회용 소모품도 고가품이 많고, 10억원을 넘나드는 장비는 물론 언제 사용할지도 모르는 1억2천만원짜리 에크모같은 장비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곳이 의료의 현장이다. 그나마 에크모 같은 경우는 메르스같은 전염성 환자가 사용할 경우 감염인자가 남을 수 있어 전량 폐기해야 한다. 한마디로 정상적인 의료의 제공을 위해서는 엄청난 자원 즉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건강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의료혜택은 국민이 기본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이고 국가는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의료혜택을 국민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의료는 많은 복지사업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는 국민이 원하는 의료혜택을 제공하기에는 돈이 충분하지 못하다. 그러다보니 국민이 충분한 의료혜택을 못받는 것을 의료서비스의 공급자인 의료인의 탓으로 몰아붙이거나 의료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현상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다.
한국의 상태는 더욱 실망스럽다. 물가수준을 반영한 년간 국민1인당 의료비 지출은 한국이 $2,035로 OECD 평균 $3,266의 60%수준이고 미국의 $8,233에는 ¼ 수준이다. GDP대비 의료비 지출도 7.1%로 미국의 17.4%와는 엄청난 차이가 나고, OECD평균의 ¾ 밖에 안된다. OECD국가의 의료비 중 공공지출은 평균 72.2%이지만, 한국은 58.2%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국민의료비 중 가계지출 비율이 32.1%로 OECD 평균의 1.6배이다. 한국인은 음주량과 남성흡연율은 최고 수준이고, 치료약은 OECD평균보다 많이 먹는데도 한국의 대부분의 건강지표는 항상 상위권에 있다. 신기한 일이다. 어쩌면 의료를 위해 들어간 돈과 그 결과들의 차이를 의료인들의 희생을 통하여 메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작년의 세월호 사태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가 '안전은 공짜가 아니다'일 것이다. 올해 메르스 사태에서는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우리는 왜 매년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사람이 죽고, 나라가 뒤집혀야 하는가? 한국병원경영연구원이 밝힌 메르스로 인해 건강보험진료비 손실은 병원급 이상에서만 7,040억원이라고 한다. 비보험진료와 의원급 손실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쉽게 추측이 된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같은 동물전염병이 발생하면 국가가 방역도 하고 살처분도 하고 피해농가에 대한 보상도 한다. 법으로 그렇게 하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메르스같은 인간전염병이 발생하면 무엇을 어떻게 보상할지 전혀 준비된 것이 없다고 한다. 세월호에 부서지고, 메르스에 무너져도 하소연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자리만 지키고 있어야 하는 게 지금의 치과의사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