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날 시기인 8월 중순이 지났는데도 지속적으로 비가 내린다. 며칠째 내리던 비가 오늘 아침까지도 내리고 있다. 필자는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한다. 비가 내리면 번잡함이 사라지고 고즈넉해져서 좋다. 오늘 아침도 비가 내리면서 그렇게 시끄럽던 매미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고즈넉한 한가함이 있어 좋다. 더불어 창밖에서 들리는 빗소리도 좋다. 특히 비오는 날에 자동차 안에서 빗줄기가 천장에 부딪치는 소리는 더욱 좋다. 이럴 때면 지금은 이룰 수 없지만 아랫목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고구마를 까먹으면서 만화책을 보는 것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필자에게 비오는 날은 좋은 추억과 기억이 있다. 반면 비오는 날이면 우울해지는 사람들도 있다.
비가 오면 우울해지는 사람들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과거의 불행한 경험에 의한 정서적 원인이다. 즉 비와 연관된 안 좋은 경험을 지닌 것이다. 예를 들어 비오는 날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던가 아니면 빗길에서 심한 사고를 당했다던가하는 등등으로 비가 심리적인 트라우마의 원인으로 자리 잡은 경우이다. 두 번째는 빛에 반응하는 멜라토닌과 연관된 생리적 원인이다. 비가 오면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멜라토닌 분비가 적어지면서 우울증이 야기될 수 있다. 이런 종류에는 계절성 정서장애와 야식증후군 등이 있다. 계절성 정서장애는 겨울성 정서장애와 여름성 정서장애로 나뉜다. 겨울에 햇빛 조사량이 감소하여 멜라토닌 분비가 적어지면서 발생하는 증상으로 식욕부진과 과수면이 생긴다. 반면 여름에는 식욕저하와 불면에 시달리는 경향이 많은데 이는 장마철에 일조량이 감소하는 것과 연관이 있어 보이지만 아직 확실한 원인이 규명되지는 않았다.
야식증후군은 저녁 7시 이후의 식사량이 하루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하며 불면증 등 수면장애를 동반하는 증상의 증후군이다.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스트레스에 대한 비정상적인 반응, 우울증, 불안, 자신감 결여 등의 심리적인 문제를 동반한다. 이들은 대개 아침 식사를 거르거나 적게 먹고, 점심 식사도 대충 먹고는 저녁에만 하루 섭취량의 절반 이상을 먹는 경향이 강하다. 또 먹지 않으면 잠들기 어렵거나 배고파서 밤에 자다가 깨기도 한다. 그 이유는 야식이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을 정상의 절반 정도로 감소시키고,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인 렙틴 분비도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밤에는 항상 수면이 부족하고 식욕은 억제되지 않아서 계속 먹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밤에 먹으면 소화가 충분히 되지 않고 열량이 소비되지 않기 때문에 체지방이 축적되어 비만으로 이어지고, 역류성 식도염과 기능성 위장장애 등의 합병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보고에 의하면 미국에서 정상 체중인 사람의 0.4%, 비만인의 9~10%, 치료가 원활하지 않은 중증 비만인의 51~64%에서 이 증상을 보였다.
이처럼 햇빛과 연관된 멜라토닌은 생리적인 현상이면서도 수면, 우울증, 무기력 등과 같이 심리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멜라토닌은 햇빛에 노출된 후 15시간 후에 분비되며 보통 저녁 7시에 분비되기 시작하여 10시에 급상승하고 새벽 3시에 최고로 분비되었다가 그 다음날 아침 햇살이 들어오면 멜라토닌 호르몬의 분비가 억제되며 잠에서 깬다. 그래서 생리학적으로 보면 멜라토닌 분비가 정상적인 아침형인간이 저녁형인간보다 정신·심리적으로 건강할 가능성이 높다. 시카고대학의 심리학자 카시오포 교수는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외로움을 느끼기 쉽고 마음이 답답하고 개운하지 못한 경향이 있다고 하였다. 초파리 잠 유전자를 연구하는 최준호 카이스트 교수는 “잠은 항상성이 있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든 평균 수면시간을 채우려는 경향이 있다”고 하였다.
여기에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일찍 자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 편하고 고민이 없어야 일찍 잘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저녁형인간은 잠들지 못할 사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하루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다 풀지 못한 사람이거나 풀고 있는 사람인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