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턱없이 낮은 수가로 형성된 치과 신경치료를 적정 수가로 재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 종합 국정감사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도자 의원(바른미래당)이 복지부 박능후 장관에게 “과거 발치해야 했던 치아를 신경치료로 잘 살려 현재까지 보존 중이다. 신경치료를 하면 살릴 수 있는 치아에 대해서도 쉽게 발치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배경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질의했다. 이어 “미국은 어금니 하나를 제대로 살리는 치료비용이 100만원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신경치료 수가가 적절한지 검토해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치아를 살릴 수 있는데도 발치를 하고, 임플란트 시술을 택하는 것 아니냐는 게 질문의 요지였다. 치아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모르는 치과의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점차 임플란트가 보편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발치의 기준 또한 상당부분 바뀌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할 현실이다. ‘장기적으로 어느 쪽이 환자들에게 더 유리한가’를 자문하고 발치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 치과의사의 본분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제일 먼저 학문적 지식을 총동원하고 최선을 다해 진료에 임한다 하더라도 발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 △치아의 균열이나 치근 쪽 병소가 100% 확진되지 않는 경우 △치료기간 중 환자가 제때 내원하지 않는 경우 △치료기간 중 주의사항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 △전신적인 원인 등 변수가 무수히 많다. 이러한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신경치료를 진행하다가 부득이하게 발치를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 책임 추궁 때문에 환자와 합의를 보기도, 책임을 묻는 소송에 휘말리기도 한다.
이외에도 진료시간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된 신경치료의 수가는 발치 쪽으로 진료의 방향을 정하는 데 또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혹자는 치과의사윤리를 거론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이 강화되고, 최저임금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치과의사들의 노동 가치도 재고돼야 마땅하다.
신경치료의 경우 보험청구액과 본인 부담금을 합치면 구치부 기준 20만원 정도다. 환자가 신경치료를 받기 위해 4~5회 이상 내원한 진료시간을 전부 합쳐 1시간 정도라고 가정한다면, 치과의사의 시급은 20만원이다. 특히 개원의는 직원임금비, 임대료, 세금 등의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이에 노동에 대한 순수익을 따져보면 2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치과진료의 질은 최상급 수준임에도 미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더욱이 치과의사가 되기 위한 시간과 교육비 등을 고려한다면 과연 신경치료 시 치과의사의 시간당 최저임금이 적정한가 의문이 든다.
이에 대해 건강보험공단의 ‘파이 이론’에 묻혀 어쩔 수 없다고 푸념해서는 안 된다. 치협을 중심으로 많은 연구를 하고 데이터를 축적해 합리적인 근거를 마련하여 치과의사의 노동 가치를 제고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노동 가치에 대한 재평가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 시점에서 치과의사도 스스로의 가치를 찾아야겠다. 치과의사도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생계를 책임지는 아빠이자 엄마이자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적정한 노동의 댓가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수한 인재들이 치과계로 유입되고, 치과의료의 질 향상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신경치료뿐 아니라 임플란트의 경우도 치과의사의 노동 가치가 저평가되고 있다. 어쩌면 진료비용 할인을 통해 스스로 노동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표현이 맞겠다. 과연 그 정도의 할인 덤핑된 진료비로 치과의사로서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자문해보자.
한편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건강보험적용 치과임플란트의 소비자불만이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불만 사유를 들여다보면, 임플란트시술 전후 부작용과 보철물 탈락이 가장 많았고, 진료 도중 병원 변경의 불편함 등도 뒤를 이었다. 물론 건강보험 적용에 따른 제도·행정적 절차에 따른 불만도 많고, 이에 따라 치과가 불이익을 보는 경우도 간혹 있다. 하지만 치과의사의 노동 가치 제고 측면에서 살펴보면, 환자로부터 받는 인정이 곧 스스로의 가치다. 환자들의 불만 해소를 위해 먼저 인사하고, 친절하게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자. 환자를 향한 친절함이 치과의사의 노동적 가치를 재평가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