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네트워크 치과 문제만큼은 아니지만 대표적 치과계 인문학 논쟁점들 중 하나인 기원 논쟁이 재개됐다. 1981년 총회에서 1921년으로 제정된 이후 세 차례 총회에서 거론됐고, 두 번 편찬위에 위임됐다.
선후배들의 연구 자료를 요약해 보면 1921년 안(변석두, 변영남, 배광식, 조영수)은 전국조직이란 정통성은 있으나 일본인 위주라서 정체성이 없으며, 1925년 안(신재의, 김평일, 권훈, 변웅래)은 한국인 위주라 민족성은 있으나 빈약하며, 1945년 안(임경빈, 이주연, 장은식, 박용호)은 국가 주체성이 있으나 역사생략의 단점이 있다.
권훈 회원의 칼럼으로 10년 만에 촉발된 이번 논쟁은 이것이 개인의 순수한 탐구적 열정인지, 협회의 필요성에서 나왔는지, 정치적 성향에 부응함인지 의구심이 있긴 하지만 그 역사적 사료의 세세함과 방대함은 찬사를 받을 만하다.
이 논쟁은 최근의 국가기원 논쟁과 결부짓지 않을 수 없다. 보수층은 건국을 1948년으로 정했지만 진보층은 1919년 임시정부 기원설을 주장한다. 임정 기원설은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전문에 의거하지만 이승만이 건국대통령임을 격하시키는 측면이 있다. 나랏일을 설마 지헌택 前 협회장 식으로 역사는 긴 게 좋다고 1919년 기원으로 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족의열단, 김원봉 등 사회주의 항일운동가들을 복원하기 위한 복선을 깐 것 아닌가. 김대중 대통령도 1998년 건국 50주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제2의 건국을 모토로 했다. 개인과 국가의 생일이 중요하듯이 단체의 생일도 심사숙고해야 한다.
말은 안 해도 이 쟁점의 근저에는 일본에 대한 무의식적 적개심이 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임진왜란을 생각해보면 500년 정도 지나야 적개심이 희석될 것이다. 더구나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배상문제, 조국의 ‘죽창가론’등으로 대일감정이 경색돼 있었다. 그러나 미국·일본 정권이 교체된 후 그 기류가 바뀌고 있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前 국사편찬위원장)에 의하면 일본 역사교과서에는 서기 3세기 일본의 한반도 ‘정벌’, 고대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이 수록돼 있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정한론(征韓論)에 의거한 한일합방은 당연히 바로잡은 한일관계라는 날조로 왜곡했다. 현재도 일본 극우파의 관점은 이렇다.
그러나 이 모든 역사적 사건과 한(恨)에도 불구하고 반일감정만을 기원선택의 제일 관점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자유대한의 지속을 위해 일본과 우방, 동반자적 위치를 고수해야 함은 필수적이다. “역사의 정치화는 우편향이든 좌편향이든 진리의 우물에 독을 타는 것과 같다”는 폴 존슨의 어록은 깊이 성찰해야 한다.
일제 역사를 무조건 말살하자는 것이 아니다. 말살이 아니고 ‘선택’의 문제다. 친일·반일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건물)을 파괴하는가, 존치하는가의 문제는 전 세계 모든 국가의 논쟁거리이며 장단점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해 민족 정기 복원에 기여했다. 폴란드와 오스트리아는 유태인 수용소를 보존하여 홀로코스트를 잊지 않고 전체주의를 저주하는 공간으로 삼는다. 일제역사를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괄호 속에 넣고 연구용으로 반면교사, 와신상담용으로 새기면 된다. 일본과의 열등감에서 벗어난 새 세대들이 새 기원을 정립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필자는 1945년 기원 안을 제안한다. 1921년, 1925년 안은 건국년보다 앞서는 괴리감과 태생적 문제가 있다. 나라 있고 협회 있지, 협회 있고 나라 있진 않다. 다른 의료인 단체보다 역사가 짧아지는 점은 감수해야 한다. 오히려 제일 먼저 일제 흔적을 털어냈다는 자부심이 생길 것이다. 이 사안은 편찬위에서도 주장이 평행성이라 절충과 타협이 곤란하다. 현재는 1921년 안이 유효하니 예정대로 2021년에 100주년 기념식은 치러야 한다. 그 연후에 공청회를 거쳐 2022년 총회에서 ‘표결’로 해결하는 것이 순리다.
*논단은 논설위원의 개인적인 견해로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편집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