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안 좋은 행동이나 보기 싫은 행동, 듣기 싫은 말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진상(進上)’이라는 단어는 원래 국가의 길일과 경사 때 중앙과 지방의 책임자가 국왕에게 축하의 뜻으로 토산물을 바치는 일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폐단이 부각되면서 ‘허름하고 나쁜 것을 속되게 이름’이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파생되었는데 이 부분만을 차용하여 우리가 사용하는 진상이라는 속어가 되었다.
수일 전 MBC 뉴스데스크에 진상환자 치료거부에 대한 심층뉴스가 보도되었다. 한편 부끄럽고 한편 억울한 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치과를 하다보면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난다. 치료비에 대한 불평을 하는 사람은 양반이고 지시나 계획된 치료는 거부하면서 전에 진행된 치료가 문제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고, 종료가 된 치료에 대하여 환불이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작년에 발생한 오산 치과의사 피살사건도 스케일링 후 불만을 가진 환자가 5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일 년 가까이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미리 준비한 흉기와 야구방망이로 치과의사를 살해한 사건이었다. 멀쩡한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큰소리나 욕을 듣는 경우도 부지기수고, 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경우에 치과의사가 무엇인가 잘못이 있었다고 말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러나 이번 MBC의 보도는 이런 부분은 언급하지 않고, 환자들이 차별대우를 받는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당한다는 등 스스로 선서한 의무를 무너뜨려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다는 등 자극적이며 편파적인 시각으로 마무리했다.
진료라고 하여 소비자가 모두 약자인 것도 아니고 착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다. 또 기계를 만들 때 불량률 ‘제로’를 요구하듯 진료에서 치료에 불만이 전혀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 소비자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공급자의 정보교환은 사회통념상 용인된다. 대기업도 블랙컨슈머에 대한 정보를 서로 교환하기도 하고 백화점이나 통신사도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자신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활용한다.
이런 문제가 갑자기 터져 나오고, 치과의사만 들어갈 수 있는 게시판에 접근하여 취재를 한 것을 보면, 이 사건은 어쩌면 치과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특정 집단이 치과의사 전체를 물먹일 생각으로 벌였거나, 어쩌면 눈엣가시 같은 해당 사이트를 문 닫게 하려는 목적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런데,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MBC와 진상환자에 대한 검색을 하면 특정네트워크와 연결이 된다. 이 사실은 이런 문제가 갑자기 공중파의 메인 뉴스시간에 보도된 이유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진료는 수리가 아니다. 진료를 특정 부품이 마모되거나 부서지면 똑같은 부품으로 다시 끼우는 수리와 같이 생각한다면 인간 스스로를 기계와 같이 유물화 시키는 것이다. 진료는 환자와 의료인 간의 신뢰를 통한 끊임없는 교감을 통하여 완성된다. Placebo effect의 실험에서처럼 가짜 약으로도 치료를 할 수도 있지만 진짜 약으로도 치료를 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치료에 무조건 같은 비용을 산정해 놓은 행위별 수가제도 문제가 있고, 그나마도 눙쳐서 같은 비용을 지급하는 포괄수가제도는 더더욱 문제가 있다. 그런데 오직 저가의 진료만이 최고의 선인양 이야기 한다면 진료를 수리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표현일 것이다. 물론 진상환자리스트를 만든다면 최소한의 피해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가 환자를 편파적으로 나누고 차별한다면, 결국 환자를 돈으로 보는 특정집단의 시각과 차이가 없게 될 것이다. 우리부터라도 아량을 보이자. 우리는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고 맹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