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계의 백년대계를 이끄는 대한치과의사협회(이하 치협)의 가장 강력한 힘은 3만 회원들이 납부한 신성한 회비와 이를 바탕으로 한 집행부의 도덕적 정당성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러한 정당성이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감사(監査)’의 직책은 치협의 상식과 도덕적 최후 보루이기에, 감사에게는 일반 임원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공정성과 엄격한 자기 절제가 요구된다. 그러나 최근 사법부의 판결 소식과 이에 따른 치협 내부의 갈등 양상은 과연 우리 치과계의 공정과 도덕성이 올바른 궤도 위에 서 있는지 깊은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최근 치과계 전문지 보도 등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치협 제33대 회장단 선거 당시 특정 후보의 선거운동을 위해 모 치과전문지가 보유한 약 2만 명의 회원 이메일을 당사자 동의 없이 선거 홍보물 전송에 무단 이용하도록 공모한 혐의(개인정보보호법 위반)로 기소된 현직 모 감사(당시 총무이사)에게 벌금 700만원의 1심 유죄 판결을 선고하였다. 고도의 윤리성이 요구되는 현직 감사가 대규모 개인정보 무단 이용 공모 혐의로 1심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은 감사의 신뢰성과 정당성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법률적 최종 확정 여부를 떠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는 1992년 미국 대선에서 클린턴 캠프가 내걸었던 “It’s the economy, stupid”에서 유래한 문구로, 당시 불황 문제를 부각하며 승리하는데 기여했다. 이후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경제 문제를 지적할 때마다 단어를 바꿔 사용하는 일종의 스노클론(Snowclone)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현직 대통령이던 공화당의 조지 부시는 걸프전에서의 압도적인 승리를 바탕으로 다시 없을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종전 직후 조지 부시의 지지율은 무려 90% 이상으로 치솟았고, 도전자에게는 이를 무너뜨릴 틈이 없어 보였다. 이때 선거 캠프의 전략가 ‘제임스 카빌’은 “It’s the economy, stupid”라는 기가 막힌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어냈다. 당시 미국 경제는 경기 침체와 실업 증가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한마디는 미국 유권자의 관심을 국내로 되돌렸고, 부시를 경제에 무관심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당시 인구 240만, 미국 남부 시골의 가난하고 작은 주 아칸소의 주지사 클린턴은 그렇게 대통령이 됐다. 지금 하고 싶은 말은 “바보야, 문제는 환자야”다. 치과계는 1992년 당시 미국의 경기 침체와 너무나 비슷하다. 반도체
필자는 지난 지면을 통해 ‘불법덤핑치과 척결을 위해 전 치과계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불법 의료광고로 초저수가를 내세워 환자를 대량으로 모집하고, 이를 감당하기 위해 공장형 부실진료와 불법위임진료 등을 자행하는 일부 의료기관의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최근 강남의 한 대형 치과에서 의식하진정법을 이용한 임플란트 시술 도중 발생한 사망사고와 관련해, 국과수 부검 결과 국소마취제의 과도한 투여에 따른 독성반응이 사망 원인으로 지목됐다고 알려지면서 당시의 문제의식은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왜 국소마취제를 과량으로 투여하면서까지 치료를 강행했을까? 수술 범위가 넓거나 시간이 길어지면 일반적인 용량보다 추가적인 마취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추가적인 약물 투여가 계속 필요하다면 어느 순간에는 환자의 상태와 누적 투여량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 치료를 나눠 시행하거나, 더 이상의 약물 투여가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시술을 중단하는 것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예정된 치료를 강행하는 것 보다 환자의 안전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대한치과의사협회 법제이사 재임 당시 의료광고에서 ‘수면임플란트’라는 용어의 사용을 불허한 바 있다. 이는
한때 거의 24시간 동안 음악만 듣던 시절이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살았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하지만, 실로 그런 때가 있었다. 그도 한때의 것인지, 아니면 그 시기를 충분히 겪었기 때문인지 요즘 일상에서는 음악을 거의 듣지 않는다. 일상을 벗어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나 겨우 음악을 듣는 처지가 되었고, 그러다 보니 과거에 들었던 노래를 다시 찾게 되었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새로운 노래를 듣게 되었다. 지난해, 부산으로 짧은 휴가를 다녀오던 중 만난 노래였는데 단박에 필자의 심금을 울렸다. 대학 졸업 20주년 행사를 앞두고 있던 상황이었다. 가사 한 줄, 한 줄이 귀에 쏙쏙 감겨왔다. 안치환의 ‘오늘이 좋다’였다. 우리 모두 함께 모여 너무 오랜만에 모여 지난 날의 추억을 나눠보자.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누구는 저 세상으로, 또 누구는 먼 나라로 떠나지만 그립던 너의 얼굴 너무 좋구나. 니가 살아 있어 정말 고맙다.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 살다 보니 외롭더라. 니가 있어 웃을 수 있어 좋다. 시집 안 간 내 친구야, 외기러기 내 친구야. 오늘은 내가 너의 벗이 될게. 우리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하나도 넌 변한 게 없구나.
“구 교수, 급하게 부탁해서 미안한데 방콕에 좀 다녀와야겠습니다.” 경희치대 박영국 교수로부터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온 것은 벌써 11년 전의 일이다. 사연을 들어보니 세계치과의사연맹(FDI)이 주관하는 NCD 포럼에서 발표하기로 되어있던 연자가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게 돼 대신 가달라는 내용이었다. 주제는 ‘한국 치과계의 NCD’였다. 거절의 기술을 익히지 못했던 탓에 일단 수락했다. 그런데 NCD가 뭐지? 인터넷부터 검색했더니 비전염성 만성질환(Non-communicable disease)을 줄여서 그렇게 말한다고 나와 있었다. 필자만 모르고 있었나 싶어 주위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모두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출국시간은 다가오고 강의자료는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괜히 한다고 했나 후회도 됐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고민 끝에 한국이 초고령화사회에 대응해 구강건강 증진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는 점을 중심으로 발표를 준비했다. 연간 1회 스케일링 건강보험 적용과 2014년 75세 이상 부분무치악 노인을 대상 으로 시작된 평생 2개의 임플란트 급여화 혜택 등을 소개하기로 했다. 2015년 8월 초 방콕의 날씨는 무척 무더웠다. 발표 순서를
대한여성치과의사회 합창단을 창단한 지 어느덧 일 년이 되었다. 몇몇 지부에서 합창단이 활성화되어 멋지게 공연하는 모습을 보며 부러움에 용기를 내어 시작한 도전이었다. 처음에는 과연 몇 명이나 관심을 가질까 걱정이 앞섰다. 매일 이어지는 고단한 진료와 가정생활, 육아, 끊임없는 임상 공부로 지친 여성치과의사들이 합창단 활동에 선뜻 시간을 더 낼 수 있을지, 또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도 자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무모한 시도일지 모른다는 우려는 순전한 기우에 불과했다. 모집과 동시에 20여 명이 모였고, 일 년이 채 되기도 전에 단원은 50명 가까이로 늘어났다. 단원은 모두 여성치과의사들이다. 우리는 매주 금요일 저녁, 한 주의 피로가 가장 무겁게 내려앉는 시간에 진료를 마치고 서둘러 연습실로 향한다. 준비된 김밥과 샌드위치로 허기를 달랜 뒤 악보를 펼치고 화음을 만들어 간다. 진료실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홀로 모든 책임을 감당해야 했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는 듯,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호흡을 맞추는 순간들에 따뜻한 소통과 위로가 오간다. 연습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서로의 웃음과 격려 속에서 설명하기 힘든 충만함이 있다. 우리도 멋진 공연을 하고 싶다는 소
소아치과 대기실에 어울리지 않는 건장한 군인 한 명이 앉아 있다. 1년 전 군대에 간다며 마지막 검진을 받았던 그의 손에는 PX에서 샀다는 위스키 한 병이 들려있다. 그와의 인연은 12년 전 초등학교 1학년 학생치과주치의 사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치 발치조차 힘들던, 겁 많던 아이가 건장한 군인이 되어 진료실을 찾아와주는 것은 치과의사로서 분명 뿌듯한 일이다. 그와의 인연을 만들어준 ‘주치의’ 제도가 고마울 따름이다. 치과주치의제도는 단순 치료 중심에서 벗어나 지정된 치과의사가 아동 및 소외계층의 구강건강을 정기적·포괄적으로 관리하여 구강건강불평등을 없애는, 예방 중심의 보건의료 제도다. 2007년 건치 구강보건정책연구회를 중심으로 아동·청소년 대상 치과주치의제도가 처음 공식 제안된 이래 2012년 서울특별시가 전국 최초로 초등학교 4학년 및 저소득층 아동을 대상으로 ‘학생·아동 치과주치의’ 사업을 전격 시행하였다. 90% 이상의 높은 만족도를 기록하면서 제도는 부산, 인천, 울산, 경기 등 14개 이상의 광역·기초지자체로 빠르게 확산됐다. 이어 정부는 2021년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해 광주광역시와 세종특별시에서 3년간 1차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초등학교
전자책과 오디오북이 범람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도 한 달에 한 번은 서점에 들러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씩 사들고 나오곤 한다. 얼마 전, 언제 맡아도 기분 좋은 종이 냄새 가득한 서점 한켠에서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책이 있었다. 법의학의 대가인 서울대 의대 유성호 교수의 저서 <시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였다. 책장을 넘기며 치과의사로서 마주하는 나의 일상 역시 법의학자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저자는 법의학자를 ‘죽은 자가 남긴 마지막 흔적을 읽어내어 삶의 진실을 추적하는 사람’이라 정의하며, 각 장기의 상태를 통해 고인의 삶을 유추하고, 남은 이들이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법의학자가 훼손되어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신 앞에서 그가 누구였으며 어떻게 살다 갔는지를 치열하게 추적한다면, 치과의사는 매일 진료실에서 치아와 임상 기록을 보며 한 사람이 걸어온 삶의 흔적을 고민하고 그 상처를 보듬고자 노력한다. 비록 살아있는 인간을 대한다는 점은 다르지만, 치과의사 역시 환자의 구강이라는 수많은 내용을 담은 ‘텍스트’를 읽어내는 관찰자이자 기록자인 것이다. 유니트체어의 라이트를 켜고 환자의 입안을 들
2004년 무통분만 사태는 우리나라 건강보험 역사에서 단순한 수가 갈등이 아니었다. 건강보험이 어디까지 의료를 통제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사회보험의 원칙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사건이었다. 100분의 100 제도는 환자는 진료비 전액을 부담했지만, 보험자는 비용을 한 푼도 부담하지 않으면서 가격만 통제하는 구조였다. 당시 정부는 결국 ‘100분의 100 전액본인부담제도’를 폐지했다. 이유는 보험자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서 의료만 통제하는 제도는 지속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모순은 무통분만에서 폭발했다. 당시 책정된 수가는 마취과 전문의를 초빙하는 비용조차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의료기관은 실제 비용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심사평가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의료기관은 적자를 감수하거나 진료를 중단해야 했고, 전국적인 무통분만 거부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의료계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을 외면한 가격통제가 의료공급을 무너뜨린 정책 실패였고, 우리에게 보험은 부담과 통제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남기게 되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과연 다른 길을 가고 있는가? 선별급여를 거쳐 2026년 시행된 관리급여는 환자가
어디서 나온 기준인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환자나 술자가 치과보철물을 10년 넘게 편안히 쓰고 있으면 잘 된 것이라고 만족스러워한다. 무릇 10년이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여러 의미를 담아내나 보다. 아무튼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된 어느 날이었다. 당시 일흔 중반이 넘으셨던 지인의 모친이 임플란트는 무서워 절대 하기싫다 하시어 수개월에 걸친 상하악 가철성보철치료를 마무리할 때 쯤이었다. “김 원장! 이거 나 죽을 때까지 또 손 안 봐도 되게 잘 해준 거지?”라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했다. 그간 조금 친해진 사이라, 눈을 가늘게 뜨며 “어머니, 몇 년쯤 더 사실건데요?”라고 물었더니 필자의 안경에 침방울이 튀도록 웃어젖히시고 나선, “딱 10년만 더 살고 갈거야..”라며 일어나시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 반도체를 생산하는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지급한, 그리고 지급할 상여금에 대해 각종 온·오프라인 미디어에서 많은 사람의 다양한 생각이 공유되었다. 수억원이 넘는 상여금이 ‘부족해서 부당하다’는 측과 ‘과다해서 부당’하다는 측의 이견과 갈등 중에, 상여금이 없는 기업과 심지어 급여가 체불된 기업이나 문을 닫는 기업의 사주와 사원들에겐 이 소란은 어떤 느낌으로 다
백범 김구 선생이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애송했던 서산대사(이양연)의 한시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제34대 치협 회장단 선거가 끝난 직후, 직무정지 가처분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회무의 시계가 멈춰버린 치과계의 씁쓸한 현실 앞에서 이 경구를 다시금 무겁게 되새기게 된다. 치과계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지금 저 눈 덮인 들판 위에 과연 어떤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지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선거란 치과계에 산적한 현안을 해결할 새 일꾼을 뽑는 축제의 장이자, 3만 회원의 준엄한 민의를 확인하는 최고 권위의 민주적 과정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소송전으로 이어져 치협을 혼란의 늪에 빠뜨렸던 과거의 부끄러운 모습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현되고 있다. 시계를 잠시 지난 2020년, 제31대 협회장 선거 당시로 되돌려보자. 당시 한 후보 측은 선거 과정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선거 결과에 승복하고 법적 소송은 가지 않겠다”고 회원들 앞에서 공언한
작금(昨今) 대한치과의사협회는 또다시 회장 직무대행 체제로 이어가고 있다. 직선제 도입 이후 소송이 끊이지 않은 치협이지만, 회장단이 공식 취임도 하기 전에 당선인 신분으로 직무가 정지된 건 초유의 사태다. 치협은 또 한 번 혼란에 휩싸여 있고, 한 달여가 지난 지금도 회원과 치과계를 대표하는 회무는 파행이 불가피해 보인다. 임기 시작 하루 전인 지난 4월 30일 회장 당선인과 부회장 당선인 3인의 직무가 정지됐고, 치협 34대 집행부는 직무가 정지된 선출직 회장단을 제외한 임원 중심으로 임시이사회를 개최하는 등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앞서 지난 4월 25일 신임 집행부 임원 33인의 명단을 대의원총회에 제출해 승인받았다. 그러나 정작 회원의 직접 투표로 선출된 회장단은 회무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으며, 회원을 대표해 대관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치협 ‘회장’과 ‘회장 직무대행’의 대외적 위상 차이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당장 산적해 있는 치과계 현안이 너무나 시급한데 속이 타들어 가는 회원에게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무엇보다 일련의 사태에 대해 사과 자체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2026년 5월 대한민국은 ‘사과(謝過)’라
최근 치과계는 불법의료광고를 통해 초저수가 덤핑 진료비를 내세워 환자를 대량 모집해 공장형으로 운영하는 불법덤핑치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러한 경영 방식은 결국은 치과의 수용 능력을 초과하는 진료량을 무리하게 소화하는 상황이 돼 진료의 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법적으로 반드시 치과의사가 행해야 하는 마취, 치아삭제, 영구충전, 구내 교합조정 등을 불법적으로 위임하는 비윤리적인 진료 행태까지 나타나며 이러한 부실진료에 따른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또한 이러한 일부 불법의료기관의 덤핑광고가 온라인과 SNS광고를 통해 무분별하게 확산되면서, 성실하게 진료하는 대다수 치과의사들이 역으로 오해받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의료인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만큼,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윤리성과 전문성은 그 어느 직역보다 엄격할 수밖에 없다. 치과계 내부의 위법 행위를 스스로 바로잡지 못한다면 결국 외부의 강한 규제와 사회적 통제를 초래하게 된다. 필자는 제33대 대한치과의사협회 법제이사로 재임하는 동안 ‘의료법 위반 치과 신고센터’ 설립에 참여해 불법 의료광고, 사무장치과, 불법 위임진료 등에 대한 신고를 회원과 국민으로부터 직접 접
치과계에 직선제가 도입된 지도 어느덧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전체 회원의 뜻을 모으겠다는 취지는 좋으나 대한치과의사협회 제30대 첫 직선제부터 최근 치러진 제34대 선거에 이르기까지, 안타깝게도 매 선거마다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과 가처분, 당선 무효 소송 등 법적 분쟁이 반복되고 있다. 매번 다른 인물이 후보로 나와도 비슷한 패턴의 갈등이 이어진다는 것은, 이것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무언가 시스템적인 문제 내지는 구조적 한계임을 시사한다. 최근 타결된 삼성전자 노사 협상 사례를 참고해보자. 기술적인 관점에서 접근을 해본다면, 이런 협상에서 대표는 일종의 주어진 역할을 해야하는 ‘연극성’의 요소가 있다. 현대차나 삼성전자 정도 되는 사이즈의 노사 교섭은 파업 직전의 극단적 대치 상황까지 가다가 마지막 날 새벽에야 극적 타결되는 경향을 보인다. 초기에 아무리 합리적인 조건이 제시되더라도 노측 대표든, 사측 대표든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는 구조적인 모순이 있다. 사측은 주주를 이해시켜야 하고, 노측은 조합원을 납득시켜야 한다. ‘너무 다 퍼준거 아닌가?’ ‘싸워보지도 않고 너무 쉽게 수긍한거 아닌가?’ 라는 질문은 협상 대표들을 위태롭게 만든다.
최근 배달 플랫폼과 온라인 주문이 일상화되면서 소비자의 맞춤형 요구는 점점 세밀해지고 있다. “튀김옷을 1cm로 맞춰 주세요, 아니면 안 먹겠습니다”라는 식의 주문은 단순한 취향을 넘어, 특정 치수나 품질을 조건으로 삼고, 이를 충족하지 않으면 거부하거나 별점 테러를 하겠다는 식의 요구는 요청이 아니라 조건부 수락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유사한 사례는 다양하다. “김밥의 단무지는 정확히 3개만 넣어 달라”, “짜장면의 면은 80g으로 맞추고 소스는 따로 담아달라”, “커피는 62도에서 제공하라”, “피자는 정확히 8등분이 아닌 7등분으로 잘라달라”와 같은 주문이 대표적이다. 일부는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상당한 추가 노동이나 품질 저하를 수반하고, 일부는 아예 현실적으로 구현이 어렵다. 특히 음식은 공정과 표준화가 중요한데, 이러한 요구는 시스템 자체를 흔들 수 있다. 이러한 요구가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구분이 필요하다. 알레르기, 종교적 이유, 건강상의 제한 등은 합리적 배려를 요청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특정 재료를 빼달라는 요청은 충분히 수용 가능하다. 그러나 조리 공정 자체를 변경하거나, 측정 단위를 강제하는 요구는 과도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단순한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