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과 황남대총은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지루하고 따분한 장소이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역사적 유적지에 스토리텔링을 곁들이면 오싹한 느낌을 주는 무덤도 흥미로운 관광지가 될 수 있고 역사를 음미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 ‘무령왕릉 어금니 한 개의 비밀’과 ‘60대 남성과 15세 여성의 비극적인 사랑?’은 <역사 스페셜 7: 종이로 만든 보물창고>(효형출판, 2004)와 <한국사 미스터리>(황금부엉이, 2004) 차례에 나오는 제목이다. 다소 자극적인 제목으로 보이지만 두 이야기의 중심에는 치아가 있다.
공주 무령왕릉과 경주 황남대총의 공통점은 치아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무령왕릉에서는 다른 유골은 없고 오직 치아 한 개만이 수습되었고, 황남대총에서는 인골 조각 20여개와 치아 28개가 발굴되었다. 가장 아쉬운 점은 무령왕릉에서 나온 치아는 공주박물관에서 가면 볼 수 있지만, 황남대총의 치아들은 봉안함에 넣은 후 무덤에 다시 파묻혀서 다음 만남을 기약할 수 없다. 다만 이한수 동서치학견문기(현암사, 1977)에서 황남대총의 치아들을 조사한 사람이 2012년 작고하신 김규택 선생님이라고 언급된 것이 유일한 단서이다.
1971년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치아의 주인공은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 치과 전문의 소견에 의하면 치아는 치관만 있는 하악 좌측 사랑니였고 17세 여성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무령왕릉 발굴 보고서에는 어금니가 30대 여자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무령왕릉 어금니 한 개의 비밀’에서는 일본서기에 나온 백제 성왕의 죽음에 관한 기록을 근거로 하여 또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어금니의 주인공은 무령왕의 둘째 부인, 즉 40대 초반인 성왕의 어머니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치아는 한 개인데 소견은 세 갈래로 나눠진다.
성인도 발육 정지된 사랑니가 관찰되기에 사랑니만으로 연령을 17세로 단정 짓기에는 근거가 부족해 보인다. 무덤 지석에 ‘백제국 왕태비 수종(壽終)’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늙어서 죽었을 때 수종이라는 표현을 쓰기에 역시 30대라는 추정도 어색하다. 오직 한 개의 치아만으로 연령을 감정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지난 45년간의 치의학 발전을 토대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어금니의 비밀을 밝히는데 치의학계가 한번 나섰으면 한다.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치아 28개중 12개는 60세 전후 남성의 것으로, 나머지 16개는 15세 전후 여성의 것으로 밝혀졌다. 황남대총 역시 무령왕릉처럼 왕과 왕비의 무덤인데 주인공이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은 것이 쟁점이다. 17대 내물왕, 19대 눌지왕, 20대 자비왕, 21대 소지왕까지 후보군이 무려 4명이나 된다. 15세 여성의 인골과 치아는 관 밖에서 확인되어 순장의 흔적을 확신할 수 있었기에 순장을 폐지한 22대 지증왕부터는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신라시대가 아니고 현재라면 아청법 위반으로 구속되는 모습이 뉴스에 나올 만한 ‘60대 남성과 15세 여성의 비극적인 사랑?’은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치아 연령 감정을 통해서 나온 이야기다. 삼국사기에 나온 소지왕과 16세 소녀 ‘벽화’와의 사랑이 이곳에서 발굴된 두 명의 인골 연령대가 일치하기에 제법 그럴듯하게 들릴 수도 있다.
무령왕릉과 황남대총 발굴은 미천한 경험과 기술적인 미숙함으로 많은 아쉬움과 의문점만 남긴 채로 종결됐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제 강점기 때 파헤쳐진 경주에 있는 금관총, 서봉총, 금령총을 다시 정식적으로 발굴한다고 한다. 이번 발굴에서는 어떤 스토리가 탄생할지 자못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