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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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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인의 사람사는 이야기

낙원동은 57년 전 중학교 다니던 시절 전차 타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자주 거닐던 길이다. 창경원에서 비원을 거쳐 종로로 내려가던 길에 낙원동이 있어 배고플 땐 유명한 떡집에서 인절미를 사먹으며 지나치던 길, 근처에 탑골공원이 있어(그 당시엔 파고다공원이라 했다) 잠시 쉬어가곤 했던 길이다.

그동안 엄청난 산업 발전으로 낙원동은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낙원동은 지난 1914년 동명제정 때 경행방 탑동, 교동 등의 일부와 정선방의 한동과 관인방의 원동 일부를 병합하여 시내 중앙에 낙원지라 할 탑골공원이 위치하고 있으므로 여기서 ‘낙(樂)’자를 따고, 이곳에 있던 원동에서 ‘원(園)’을 따서 합성한 이름이다. 1975년 서울시 조례에 의해 종로2가동이 신설되어 낙원동, 운니동, 익선동, 경운동, 관철동, 인사동 등 종로2가 일대를 관할했다고 한다. 지금은 먹거리와 악기상가가 들어선 낙원동, 전통공예 상점과 화방이 즐비한 인사동이 외국인들이 주로 찾는 관광지가 됐다.

지난 9월 30일부터 10월 9일에 이르는 긴 추석연휴를 맞아, 이곳 낙원동을 안사람과 둘러보기로 했다. 낙원동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탑골공원에 노인들이 주로 모여 모든 문화가 노인 위주로 형성되어왔다. 이웃 인사동이 젊은이들의 활기찬 발걸음이 있는 곳이라면, 낙원동은 노인들의 느린 발걸음이 있는 곳이 됐다.

지난 1일 아침 왕십리에서 지하철 5호선을 타니, 객차 안이 꽤 북적인다. 노인들은 무료승차라 제법 많이 타고 있었다. 내 옆에 앉은 노인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 가슈?” ‘아, 나도 이 노인에게는 말을 걸 만큼 노인으로 보이나 보다’라고 생각하니 한편으로 아직도 젊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허탈했다. 내가 “낙원동 갑니다”라고 말하니 그 노인도 낙원동 간다고 한다.

종로3가역에 이르니 많은 노인이 우르르 내리는 것이 아닌가! 느리고 보폭도 짧아 마치 느림의 도시에 온 것 같았다. 이 분들도 젊었을 때는 고무줄처럼 탄력 있는 몸을 가졌던 사람들이었으리라. 하나같이 중절모나 빵떡모자를 쓰고 자기 나름대로 멋을 내었다고는 하나 세월을 이기지는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속으로 이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자전거로 단련된 몸이라 이 정도나마 걸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은 이들과 같은 70대의 노인인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집사람과 보기로 한 영화관은 낙원상가 4층에 있었다. 옛날에는 허리우드극장이었다. 지금은 실버영화관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는 ‘시니어 재즈밴드’라는 일본영화였다. 매표소에 써 붙인 입장료를 보고 깜짝 놀랐다. 55세 이상은 관람료가 2,000원이라니, 이렇게 받고도 영화관이 유지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사람이 은퇴를 하면 매달 들어오는 수입이 없어 돈 쓰기가 두려워지는 법이다. 시니어극장의 입장료는 이런 이들에게 하나의 행복을 주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여기까지 오는데 지하철도 무료였으니 말이다.

입장시간이 되어 영화관으로 들어가는데 앞선 노인 한 명이 계단에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안내인이 왔다. 그런데 안내인도 80대 노인이었다. 친절하기가 말할 수 없이 공손했다. 절뚝거리는 노인을 잘 모시고 좌석에 앉히는 것을 보고, 정말 예의바른 할머니라고 생각했다. 입장해서 좌석에 앉으니 또 한 번 소동이 일어났다. 날씨가 추우니 에어컨을 끄라는 얘기다. 그러나 대부분 관람객은 이에 반대했다. 다른 영화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에어컨을 끄고나니 영화가 시작됐다. 처음엔 그저 그런 싸구려 영화겠거니 하고 하루 시간 때우자고 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점점 영화에 빠져 들어갔다. 내용인즉 어느 은퇴한 지휘자가 노인들만을 위한 재즈 악단을 만들며 펼쳐지는 이야기다. 아주 간단한 스토리이나 나를 뭉클하게 한 것은, 사랑 앞에선 어떤 어려움도 없다는 사실은 늙은이나 젊은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자 영화관 안은 찜통이 됐다. 사람들이 에어컨을 끄라고 말한 사람에게 투덜거렸다. 시니어 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사람들이 느린 걸음으로 우르르 몰려나갔다.


허기가 져서 인근 음식점을 찾은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우거지해장국이 2,500원이었다. 그리고 그 옆 이발관에는 이발비가 3,500원이라고 써있다. 그러니까 8,000원이면 이발, 식사, 영화 관람이 해결된다. 역시나 여기는 서울이 아닌 ‘시니어왕국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안사람과 나는 2,500원짜리 우거지해장국집으로 들어갔다. 70대 후반의 할머니가 주인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해장국이 앞에 놓여졌다. 한 숟갈 뜨니 맛이 일품이었다. 아내와 3,000원짜리 소주 한 병을 주문하고 주거니 받거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식당 안에는 거의 70대 이상의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어느 꾀죄죄한 노인이 들어오지도 못하고 문간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주인할머니는 그 노인을 식당 밖 테이블로 안내해 국밥 한 그릇을 주었다. 그러고 하는 말, “잘 잡수시고 건강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노인은 가끔 이곳에 와서 공짜로 식사를 얻어먹는 모양이다. 노인의 모습이 측은하였다.


낙원동 노인들의 모습에서 향기로운 노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좋았다. 70~80대까지 소중한 친구가 있다는 것은 성공적인 노년의 모습일 것이다. 탑골공원 담벼락 앞에서는 노인들의 판소리가 요란했다. 늙어 무엇인가 이루려는 마음가짐, 그것이 돈이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진실한 행복은 함께 노력하고, 이루고, 그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겠는가? ‘채근담’에 이런 말이 있다.

日旣暮而  猶烟霞絢爛
歲將晩而  更橙橘芳향
하루가 이미 저물었으나 오히려 노을이 아름답게 빛나며
한 해가 기우려고 하나 귤은 꽃다운 향기를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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