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술자와 환자의 선택권 제한 등으로 대한치과의사협회(회장 김철수·이하 치협)와 대한치의학회(회장 이종호·이하 치의학회)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구순구개열 급여고시 수정이 대한치과교정학회(회장 국윤아·이하 교정학회)의 반대에 부딪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3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관련 고시를 살펴보면, 구순구개열의 치과교정 및 악정형 치료 급여기준에서 실시기관은 ‘치과교정과 전문의가 1인 이상 상근하는 요양기관’으로, 시술자는 ‘치과교정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자’로 한정하고 있다.
시술자를 교정과 전문의로 한정한 해당 고시가 치과의사의 진료권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교정과 전문의가 아닌 다른 치과의사에게 치료받기를 원하는 환자의 선택권까지 침해한다고 판단한 대한소아치과학회(회장 김재곤·이하 소아치과학회)와 한국치과교정연구회(회장 장순희·이하 KORI)는 곧바로 ‘구순구개열 환자 제한적 보험급여 철폐 소송인단(이하 소송인단)’을 꾸려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을 동시에 제기했다.
즉 교정학회가 해당 고시의 수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현재로선 법원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상황. 치과계 합의로 얼마든지 매듭지을 수 있는 사안을, 돈과 시간까지 허비해가며 또 다시 외부 결정에 의존해야 할 경우, 교정학회는 이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소송인단 측의 주장이다. 특히 보건복지부 역시 교정학회만 승인한다면 시술자를 교정과 전문의로 제한한 관련 고시를 수정한다는 입장이어서 이런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치협과 치의학회, 복지부까지 고시수정에 찬성”
소송인단은 지난 16일 치과의사회관에서 소아치과학회 김성오 법제이사, 서울아산병원 소아치과 이현헌 교수, KORI 최종석 명예회장, 김재구 부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소송인단이 이 시점에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한 이유는 최근 구순구개열 급여고시 수정과 관련한 논의가 급물살을 탔기 때문. 현재까지의 상황을 정리하면, 몇 차례에 걸쳐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 담당자와 면담을 진행한 소송인단은 치협이 시술자 제한규정 철폐를 요청해오고, 교정학회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시술자 제한규정을 삭제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구두 약속을 받아냈다.
실제로 치협에서는 치의학회가 지난 4월 정기총회를 열고 시술자 제한규정 삭제를 요청하기로 의결한 사실과, 비슷한 시기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치협 대의원총회에서 논의된 사항을 토대로 시술자 제한규정 삭제를 요청한다는 공식입장을 11월 26일자 공문을 통해 보건복지부에 전달했다.
치협의 공문을 접수한 보건복지부는 교정학회에 관련 입장을 묻는 공문을 발송했고, 교정학회는 임시이사회를 열어 시술자 제한규정 삭제반대를 의결하고 그 입장을 다시 보건복지부에 전달했다. 이에 소송인단은 일련의 논의과정에서 교정학회의 반대로 구순구개열 급여고시가 수정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기자간담회를 자처했다고 밝혔다.
“전문의 자격에 따른 진료권 제한, 있을 수 없는 일”
소송인단은 지금까지 아무런 제약 없이 모든 치과의사가 구순구개열 치료를 해왔는데, 고시 하나로 인해 전문의만, 그것도 교정과 전문의만 시술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는 입장이다. 소아치과학회 김성오 법제이사는 “치과의사의 치료범위는 의료법에 명시돼 있다. 자격만 취득하면 교정, 보철, 악교정수술까지 모든 치료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전문의로 시술자를 국한하고 있는 이번 고시는 상위법인 의료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고시는 치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간단한 구내장치까지 교정과 전문의가 아니면 제작할 수 없다는 아주 무서운 규정이다. 구순구개열 유아의 간격유지장치 제작은 지금까지 줄곧 소아치과에서 담당해 왔는데 이마저도 제한한다면, 타과 전문의는 우리의 진료영역인 15세 이하 환자의 치료를 해서는 안된다고 반발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역설했다.
KORI 최종석 명예회장은 “전문의가 치료하면 급여를 인정해주고 비전문의가 치료하면 급여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비전문의가 치료하면 위법이 된다는 게 이번 고시의 가장 큰 오류”라며 “구순구개열 환자도, 이를 치료하는 치과의사도 별로 없어 극히 일부의 문제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만약 이번 고시가 그대로 시행된다면 모든 전문의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시술자를 전문의로 제한한다던가, 전문의 치료 시 수가를 더 인정해주는 급여방안 도입을 요구하는 시초가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전영선 기자 ys@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