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졸업 후 중학교, 대학 동기들이 모두 결혼할 때가 되니 한동안은 정말 바빴다. 멀리 지방에서 결혼식이 있어도 뭐가 그리 좋았는지 가서 축하해 주고 친구들 얼굴 보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필자도 결혼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이제는 결혼식보다 조문 가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서울시치과의사회 제39대 후생이사의 업무 중 하나가 본회 회원이 돌아가시면 조문하는 일이다. 비록 얼굴도 모르는 선배님들이 대부분이지만 같은 치과의사로서, 후배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7월 27일은 조금 바빴다. 저녁에 보조인력특위 회의도 있었고 조문할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조문은 조금 특별했다. 바로 필자의 소속구인 성동구에 계셨던 이규철 원장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지난 2월 구회 정기총회에 건강한 모습으로 나오셔서 후배들과 인사하고 총회 끝날 때까지 꼿꼿하게 자리를 지켜주셨던 원장님이셨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허겁지겁 달려가 장례식장에 도착한 시각은 밤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가족들을 못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정리하고 들어가시려던 찰나에 만나 뵐 수 있었다. 장례식장에 가면 보통 영정사진은 근엄한 모습의 사진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규철 원장님은 환하게 웃는 모습이셨다. 덩달아 필자도 긴장이 조금 풀리는 순간이었다(역시 이규철 원장님 ^^).
원장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조위금을 전해드리면서 가족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자니 올해 봄이 지나면서부터 원장님께서는 갑자기 몸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하셨단다. 하나가 무너지니 모든 게 걷잡을 수 없이 허물어지면서 가셨다며, 당신이 가실 때가 된 걸 아셨는지 그동안 진료하셨던 환자 한분 한분 마지막 정리를 하고 폐업하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하고 그동안 진료하던 치과를 정리하는 그 기분이 어떠셨을지….
필자도 이제 나이를 제법 먹은지라 ‘나의 마지막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럴 때면 갑자기 머리가 마구 복잡해지면서 ‘에잇, 이번 달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이라며 다시 미루게 되는 해결되지 않는 숙제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주변 선배들이 어떻게 진료하면서 지내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분들이 지나가는 길을 결국 필자도 따라가게 되지 않을까, 혹은 또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이규철 원장님은 그런 후배들에게 말없이 본보기가 되어주시는 분이었다.
구회 정기총회나 확대이사회에 꼭 참석해서 잘 모르는 후배들과도 인사를 나누시고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조언해 주시고 웃으시며 조용히 인사하고 나가시는 그런 분이었다. ‘아~ 나도 저렇게 늙어갈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이규철 원장님을 뵐 때면 드는 생각이었다.
먼저 가신 선배님들을 조문하다 보면 다양한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요양원에서 돌아가신 선배님, 병원에서 투병 중에 돌아가신 선배님, 아침에 운동하다가 갑자기 돌아가신 선배님 등 슬픔을 충분히 덜어낼 시간을 가진 유족들이 있는가 하면 갑작스러운 가장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힘들어하는 유족들도 있었고, 배우자는 안 계시고 자제분들만 장례식장을 지켰던 선배님도 계셨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조문을 하게 될지, 처음 뵙는 선배님들께 마지막 인사를 어떻게 드리는 게 좋을지 아직 잘 모르겠다. 장례식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항상 긴장된다. 유족들에게 어떤 말로 위로를 해드려야 할까? 너무 힘들어하면 그냥 조위금만 드리고 나와야 하나? 배우자가 안 계시고 자제분들만 있으면 어떻게 하지? 등 별별 생각이 든다. 돌아가신 선배님께서 어떤 삶을 사셨는지 그냥 이야기가 듣고 싶을 때도 많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기 힘들었을 치과의사의 삶 말이다.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우리끼리는 그래도 힘든 이야기를 조금 해도 되지 않을까?
끝으로 회원 조위금 모금에 한결같이 도움을 주고 계신 서울시치과의사회 회원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회원 여러분의 작은 도움이 유족들에게는 큰 힘이 되고 있다. 다시 한번 지면을 빌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