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외곽 작은 치과지만 29년째 한자리에서 유니트 체어 두 대로 운영하는 필자의 일터에는 엄연히 원훈(院訓)과 미션이 있다. 십여 년 전 인테리어를 할 때 접수대 벽이 무언가 밋밋해 평소 마음에 두었던 ‘인간적· 포괄적· 실용적 진료’ 란 원훈을 붙였었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스스로 경종도 울릴 겸 직원들에게 응급 시 심폐소생술 훈련을 연습시켰다. 유니트 체어에서 하면 꿀렁꿀렁해서 안되니 실제 환자를 누가 어디를 잡고 바닥으로 내리는 연습, 소생술 하는 동안 무슨 약물을 준비하고, 누가 119로 전화하나를 구체적으로 실습했다. 이참에 미션도 만들었다. “우리는 최선, 양심적인 구강병 진료를 통하여 인류의 생명과 먹는 행복에 기여 한다” 원훈과 미션을 드러내거나 자랑함이 아니다. 그저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명기해 놓았을 따름이다. 대부분의 치과의사들이 표방하지 않았을 뿐이지 비슷한 심성의 소유자라 생각한다. 사실 이리 해놓아도 이런저런 이유로 최선, 양심적인 진료를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오가며 볼 때마다 반성과 각성의 기회는 된다.
치협의 캠페인중 5가지 슬로건(꼭 필요한 진료만 하기, 치의가 직접 상담, 위임진료 안하기, 검증된 재료만 사용, 간단한 진료도 최선을 다하기)은 전적으로 양심에 기조를 두고 있다. 평범하나 관행적이 되기 쉬운 개원의의 정곡을 콕 찔렀다. 무언가 기시감(旣視感)이 있으나 과거 클린회원증보다 구체적이고 거국적인 의욕을 띤다. 병원만 가려면 인터넷부터 뒤지는 세대에게는 인기일 것이다. 벌써 모치과 그룹에선 이 캠페인을 차용한다는 소식이 들리고 아예 “우리동네 좋은치과‘를 치과명으로 개명한곳도 보았다.
그러나 슬로건의 전 맥락에 흐르는 ’양심‘이란 아젠다를 어이 유지할 것인가? 치협이 일일이 진료행태를 CCTV로 복기할 것도 아니고 협회 직원의 점검도 불가하고 동료의사가 할 수도 없다. 오로지 치의의 자율성에 기초한다. 캠페인에 등록했다고 오랜 타성이 하루아침에 바꿔질까? 고백컨대 본인도 과거에 간호조무사가 방사선 촬영을 대신했다고 환수 철퇴를 맞고서야 습관을 바꾸었다. 누구는 좋은 치과 안되고 싶겠나. 결국 이 캠페인은 치과의원의 운영·경영문제와 맞닿아 있다. 올라운드 스타 플레이어로 활약해야만 하는 원장들은 이 당연한 다섯 가지 명제들을 실천하기가 버겁다. 훈련된 직원들을 적절히 수족처럼 운용해야 잘 돌아가는데, 이렇게 했다가는 양심에 찔리고 박리다매로 보험환자라도 많이 보아야 하는 현실을 외면해야 한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고 싶지만 포도주와 향유와 돈을 계속 보충하는 일이 젊은 개원의들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적게 벌고 적게 써야하는 내핍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실천이 만만하지 않다.
우리동네 좋은 치과가 있다면 우리동네 나쁜 치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준이 모호하다. 꼭 필요한 진료가 무엇인지 각 과별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의기법 논란이 있지만 위임진료의 폭도 현실에 맞게 수정과 양보가 필요할 것이다. 인제의대의 강신익 교수는 이를 ‘행동윤리지침’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캠페인에 등록만 한다고 면죄부를 받고 거듭날 수도 없는 일이다. 타율적 제재도 불가하고 이분법적으로 분열되는 것은 더군다나 바람직하지도 않다. 반면 미등록 회원이 감소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런 많은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회원들을 등록시켜 포용해야 하고 보수교육에 윤리교육을 정례화해야 할 것이다. 등록만 하고 약속 불이행시의 대비책도 마련해 두어야 한다. 동시에 국민에 대한 지속적 공익광고가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진료 시 환자의 시선이 무언의 압박으로 작용하여 슬로건에 준하는 진료대세가 서서히 작동될 것이다. 우리로선 힘들고 불편할지라도 종국에는 그런 진료가 국가의 면허를 받은 의료인의 본분이자 기본 덕성이고 사회적 책무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