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개목걸이 법’으로 불리는 의료인에 대한 명찰패용 의무화법이 지난달부터 시행됐다. 물론 보건복지부는 적용대상이 되는 의료기관이 준비해야 할 시간을 고려해 고시 확정 후 한달 동안의 유예기간을 둔다는 입장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의료계의 반발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법안의 취지는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의료인은 반드시 명찰을 착용케 함으로써 환자가 의료인의 신분을 쉽게 확인해 의료인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전면 폐지’를 주장하며 결사 항쟁의 외침까지 나온다. 이 법안 입법에 앞장섰던 대한성형외과의사회는 ‘공공의 적’이 된 형국이다. 의료인과 의대생뿐 아니라 간호조무사, 의료기사는 이름과 면허종류 명칭이 들어간 명찰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명찰을 달지 않았다가 적발되면 의료기관장은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그러나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상식을 법으로 강제했다는 점에서 의료인의 자율성을 무시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형벌은 최후의 수단이자 최소한에 그쳐야 하는데 최근 의료법 개정 사항들의 면면을 보면 법으로 모든 것을 규제하고, 해결하려는 입법 만능주의의 경향이 짙다.
“초등학생 취급하느냐”, “자유민주공화국에서 있을 수 없는 행태”라는 일부 의사단체의 거센 반발이 십분 이해가 가고도 남음이다.
하지만 왜 이런 치욕스런 법안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바둑으로 이야기 하자면 냉철한 복기(復棋)가 이뤄져야 하지 않나 싶다. 환자의 믿음을 져 버린 의료인들의 비도덕적인 행위가 끊이질 않고 일어난 게 발단이다. 일면식도 없는 의료인이 동의도 받지 않고 시술 했고, 자격이 없는 자가 의료 행위를 행함에 그에 따른 부작용은 환자의 몫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의료계약이 무용지물이 된 상황에 대한 분노가 들끓었고,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입법자는 불법행위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법을 만들었다. 법제화가 이뤄지는 동안 의료계는 자발적 근절 노력에 나서주길 바라는 여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일부 의료인의 일탈행위라며 선 긋기에 바빴다. 자정노력에 나서겠다고 약속했지만 불법 의료행위를 막기 위한 방안이나 가이드라인을 선제적으로 내놓지 않았다. 범의료계가 하나같이 ‘국민의 신뢰 회복’을 외쳤지만 행동으로 이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2014년 시행된 환자권리와 책임고지 의무화인 일명 ‘액자법’과, 2016년 12월 시행된 의료기관 개설자 진료거부 금지법(의료인 진료거부금지의무에서 더욱 포괄적이고 강화된 법안), 금년 4월과 6월에 시행될 ‘명찰 착용 의무화법’, ‘설명의무법’ 등 구체적으로 제시된 방법에 대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나열하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비판은 있으나 대안은 없었다. 환자안전과 관계된 일에는 침묵하고, 강화되는 규제에 불이익을 받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은 또 다른 불신을 낳을 뿐이다. “명찰 착용이 뭐 그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오히려 반대하는 게 비상식적이다”라는 질타가 환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의료인들이 환자 반대편에 서 있다는 인상이 짙어지면 불리하다. 환자와 보호자는 다수이며 약자고 의료인은 소수다. 국민 생명권을 보장해야 하는 입장에서 정부는 환자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여론을 외면하기 어렵다. 법안을 발의하는 의원들 역시 입장이 비슷하다. 그런 측면에서 의료계는 무조건 반대가 아니라 이제는 대안을 제시할 때이다. 환자와 같은 편에서 유리한 입법을 이끌어내야 한다. 전문가로서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줘야 신뢰가 쌓인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또 다른 ‘악법’을 낳는 악순환의 시작일 뿐이다. 의료계가 거부감이 크겠지만 현실의 흐름을 이해하면서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의료계를 옥죄기만 할 무분별한 법적 조항이나 규제는 불필요한 희생양이 생길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으니 신중을 기해야 마땅하다. 환자와 의료인간 신뢰 관계는 제도나 규제를 통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