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대학생으로서 지난 3년의 시간 동안 직접 경험하여 얻은 하나의 가치관이 있다. 아는 것이 나의 손끝에서 나타나기 위해선 직접 부딪치고 깎이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임상에 적용해가며 익히는 한편, 나 자신을 어떠한 존재로 변화시키고 성숙시켜야 하는 것이 치과대학생에게 주어지는 교육과정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내가 활동하고 있는 ‘에셀’은 내게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매우 값진 경험을 주고 있다.
‘에셀’은 1971년 이화여자대학교 간호대학 학생들과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학생들이 이대 다락방전도협회에서 모임을 가지면서 시작된 기독교 진료봉사 동아리다. 올해로 해외진료 21주년을 맞이하고 있으며, 지난 20년간 꾸준히 해외진료를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올해의 진료지는 캄보디아의 항구도시인 시아누크빌이었다. 기말고사가 끝나자 ‘에셀’의 재학생들은 학기 중보다 더 분주해졌다. 진료지로 출발하는 날을 카운트다운하며 서로가 역할을 나누어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우리가 타게 될 캄보디아 프놈펜행 비행기는 작았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더욱 꼼꼼히, 최대한 간편하게 짐을 꾸려야 했다. 하지만 진료를 위한 장비를 직접 가져가야 하는 치과진료의 특성상, 무게를 줄일 수 있는 부분은 매우 제한적이었고 이것이 우리가 만났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였다.
하지만 함께 가시는 백형선 교수님(연세치대 교정과)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과 마지막까지 상의하여 짐을 줄여 나갔기 때문에 출발 당일에는 아무 무리 없이 비행기 탑승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진료지에서보다 출발하기 전 일주일 동안이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준비를 시작할 때는 막막하고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기대하는 마음이 커져갔다.
캄보디아의 날씨는 생각했던 것만큼 덥지 않았다. 현지에서 생활하는 선교사들은 평소보다 기온이 낮은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시아누크빌에 머무르는 동안 그런 날씨가 계속되었다. 진료 장소는 우리가 묶었던 숙소에 있는 넓은 홀이 사용되었다. 지금까지 우리 동아리가 진료한 장소 중에 가장 좋은 편에 속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숙소와 함께 있어서 저녁식사 후에도 진료장소 정리나 모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실내였기 때문에 해가 져도 체어의 조명으로 날벌레가 날아들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좋은 진료 여건 덕분에 진료기간 내내 당초 우리가 계획한 시간인 오후 5시 30분을 훌쩍 넘긴 저녁 7시 30분까지 연장진료를 할 수 있었다.
진료는 실제로 강행군이었다. 아침 8시 30분에 예진을 시작하였는데, 진료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많은 지역주민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의 제한된 인력과 자원으로는 하루의 환자를 250명 정도로 한정해야 했다. 250명분의 번호표는 아침 9시 30분경이면 이미 동이나버렸다. 더 이상 받을 수 없어서 돌려보낸 환자도 많았다. 우리의 진료가 그만큼 그들에게 절실한 것이었다.
진료를 하다 보니 심각한 우식으로 발치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내에 치과가 있기는 하지만 심각할 정도로 우식이 진행되어도 치과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고, 치료를 받더라도 높은 수준의 것은 아닌 듯 했다. 그리고 심미적으로 문제가 되는 전치부 우식 환자가 많았는데, 환자가 원하는 치료와 실제로 필요한 치료가 달라서 생기는 어려움이 있었다.
날마다 하루 10시간 가까운 진료를 하였기에 몸은 고단했지만 대원들 모두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진료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진료가 휴식보다 더 달콤했다면 조금 지나친 과장일까? 하루 종일 바쁘게 뛰어다니다보면 피곤에 지치기보다 마음속에 무언가로 벅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료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어떤 무언가가 분명 있다. 진료를 받고 가는 현지인들의 미소를 볼 때, 개원가에 계시는 선배님들을 직접 어시스트하며 그분들의 인생의 지혜와 깊이를 마주할 때, 동료들을 도와 땀 흘려 일할 때 그 곳에서의 시간들이 나를 형성해 가며 또 나를 빚어가는 것을 느꼈다.
치과 지식이 손끝에서 나타나려면 수련의 기간이 필수적인 것처럼 인생의 철학과 지혜가 한 사람을 형성하려면 직접 실천해보고 도전해보는 시간이 필수적이다.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흘린 땀의 가치와 그것이 주는 행복감을 ‘에셀’의 대원으로서 해외 진료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시간과 자원을 들여왔기 때문에 내가 베푸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가장 많은 것을 얻어가는 것은 바로 나였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생이 달라지는 시간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내년에도, 기회가 된다면 그 이후에도 우리 팀 ‘에셀’ 과 함께하고 싶다.
글/김민정(연세대학교 치과대학 본과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