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강원도 동해안으로 가는 길은 백두대간(태백산맥)을 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북쪽에서부터 그 고갯길을 얘기하자면 진부령(530m), 미시령(826m), 한계령(920m), 구룡령(1013m), 운두령(1089m), 백복령(780m), 조침령(770m), 만항재(1330m) 등이다. 옛날, 이 고개들은 서민들의 애환을 담고 많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인제, 홍천, 정선 사람들은 산채, 약초 등을 동해안에서 판 뒤, 생선과 소금을 사오곤 하였다. 그러나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도둑들과 산짐승의 위험성으로 험준한 태백산맥을 넘는데 생명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절실히 필요한 영양분인 소금과 생선은 이들에게 생활필수품이었다.
그들에게는 원수 같은 태백산맥이 항상 가로막혀 있었던 것이다. 요즘 같은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여기서 전설이 생겨 전해지고 있다.
토요일이었던 2013년 10월 26일, 휴진하고 나와 아내는 동호인들과 같이 자전거로 이 험준한 조침령을 도전한다.
구름도 쉬어가고, 새들도 하룻밤 자지 않고는 넘을 수 없는, 험하고 새 찬바람이 산을 휩쓰는 험한 산길, 지금은 미시령, 한계령에 밀려 소외된 조침령!
지금 그곳을 가고 있는 내 마음은 전율과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잠을 설치고 있었다. 강원도 인제, 원통은 40년 전 나의 군대 시절, 그곳으로 배치되면 동료 군의관들이 이제 가면 언제 오나 하며 원통해하던 강원도 오지 중 오지! 그 조침령으로 나는 간다.
새벽 3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크로스컨트리 라이딩 복장을 갖추고 일찍 잠이 들었다. 항상 6시에 기상했던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옷을 입고 자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정각에 나를 실으러 밴은 집 앞에 서 있었다. 자전거와 헬멧, 배낭 등을 챙기고 뛰어 나갔다. 동료들도 차에 타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밴에 몸을 싣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뚫고 강원도로 향한다. 단풍의 절정인 진동계곡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차를 타자마자 그만 잠에 빠지고 말았다. 아름다운 단풍을 그리며..., 눈을 뜨니 차는 춘천고속도로 동홍천 IC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서울이 섭씨 6도! 달리는 차 창 밖으로 손을 내미니 손이 끊어질 듯 아리다. 여기는 지금 0도에 가깝다. 지금 진동계곡은 아마 영하일 것이다.
새벽 5시 인제에 도착하니 모든 것이 밤의 정적 속에 묻혀있었다. 우리의 출발점 현리까지 20여 km는 더 남았다.
인제 부근의 내린천은 밤에 묻혀 물소리만 들리는데 외로운 가로등만이 우리의 갈 길을 비추고, 꼬불거리는 강변 언덕길은 현리에 가있는 내 마음을 애타게 하는데 6시가 채 못 되어 현리에 도착하니, 아침 식사할 곳이 없다.
너무 일러 문을 연 식당이 없다. 몇 바퀴 돌아, 한군데 문 연 집이 있어 보니, 양양으로 뚫리는 고속도로 공사 노무자들이 애용하는 이른바 함바집이다. 이제 살았구나...
우리는 노무자들이 몰려있는 함바집으로 들어갔다. 항상 그렇듯, 기사식당이나, 함바집은 음식이 풍성하고 맛있다. 고등어조림, 계란찜, 어묵, 김치에 산나물까지, 푸짐한 차림이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식사를 끝내고, 커피 한잔 마시는데 함바집 주인이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조침령 간다고 하니 필례약수 쪽 단풍이 절정이라 한다. 우리는 기존 코스에 필례코스를 추가하고, 차에서 자전거를 꺼내 라이딩에 들어간다. 하추리 계곡을 따라 오르는 필례약수 길은 각도가 10% 정도가 되는 고개의 연속이다. 멀리 설악의 산군, 3형제봉(1225m)과 가리산(1518m), 주걱봉(1401m)이 보이고 귀둔리 갈림길을 지나, 처음 나타난 고개를 넘자 마치 무릉도원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느낀다. 숨어있던 산들의 붉게 물든 단풍! 또 하나의 고개를 넘자 산에 마치 흰 빗살을 드리운 듯 자작나무 군락이 반기고, 또 고개를 넘자, 붉은 단풍의 물결이 눈앞에 나타난다. 단풍 3홍! 산도, 물도, 친구의 얼굴도 모두가 붉게 변하고 있었다. 필례약수의 단풍은 절정이었다. 베 짜는 여자의 모습이라는 필녀(匹女)에서 유래된 필례약수는 탄산과 철분이 많아 위장병과 숙취 해소에 좋다 한다.
한계령의 오색약수에 견줄만한 약수다. 물맛이 비릿하고 좋다. 단숨에 한 국자를 입에 틀어넣었다.
필례약수에서 한계령에 이르는 가파른 고개! 은비령을 넘어 한계령에 올라, 동해와 설악의 산맥을 보니 호연지기가 솟아오른다. 점프(차로 이동한다는 의미)! 다시 현리로 와 본 코스, 조침령에 도전한다. 35㎞의 진동계곡!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낙엽이 떨어져 양탄자가 된 길을 사각거리며 달리는 자전거들,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진동계곡의 별천지를 달린다. 산은 불타오르고 길가의 단풍은 자태를 뽐내며 우리를 반기는데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갑자기 광풍이 분다. 너무나 드센 바람에 자전거가 나가지 않는다. 그 바람 속에 하얀 손 흔들며 나타나는 평원의 무성한 억새! 장관이다. 억새평원 바람부리 쇠나드리다. 만추의 가을을 수놓는 억새는 오후의 햇살에 반짝거리며 눈부시게 빛나는 얼굴로 흔들리고 있었다.
쇠나드리! 인제사람들이 소에 산채, 약초를 싣고 조침령을 넘어 동해로 가던 길목, 그래서 쇠나드리다.
진동리의 동북쪽은 백두대간이, 서쪽은 가칠봉(1165m)이 버티고 있는 오지의 분지마을이다.
예전에 6.25사변도 일어난 줄 모르고 살았던 마을이다. 쇠나드리를 지나자 저 멀리 조침령 터널이 보인다. 우리는 1㎞가 넘는 길이의 터널을 한숨에 관통해, 본격적인 조침령 산악 라이딩에 들어간다. 처음은 자갈길 비포장도로 경사가 15%는 되는 것 같다. 죽을힘을 다해 오르는데 한고비 돌아 나타나는 길은 25%가 넘어, 자전거가 뒤로 자빠질 정도다. 끌바(자전거를 끌며 오르기)를 하며 길이 좋으면 다시 라이딩!
등산객 노부부가 “어휴! 이런 길을 자전거로?”라고 말한다. 측은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고통은, 정상정복의 쾌감에 비례한다. 헉헉거리며 돌고 돌기를 2.5㎞, 정상부근은 10% 이하로 가파르다. 하늘이 보이고, 모든 것이 적막이다. 저 멀리 넓은 공터가 보이는 곳, 하얀 비석이 있었다. 땀은 온몸을 적시고, 탈진하다시피 된 나를 그 하얀 조침령 비석이 반긴다. 올라온 길을 보니 구절양장(九折羊腸)이다. 석양에 비친 조침령! 외롭고 고독한 조침령에 나무 사이로 비치는 석양은 너무 신비했다. 멀리 보이는 불타는 산 그 가운데 조침령이 있었다.
갑자기 한 마리 새 날아들어 삐리리 노래한다. 새야 잘 자렴. 내일 동해로 넘어가야지, 중얼거린다.
그 험한 조침령은 우리에게 마음을 내어 주었다. 내일, 곰배령을 꿈꾸며 아쉬운 작별! 들머리의 장승도 잘 가라고 인사를 하는 조침령에 박명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