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전문의제도 시행 8년이 지났다. 소수정예 원칙은 물 건너 간지 오래고, 당장 2014년부터 한시적 전문과목 표방 금지가 해제된다. 기득권을 포기하고 소수원칙이 지켜지기를 간절히 바랐던 이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지난 4월 ‘치과의사전문의제도 판을 다시 짜겠다’고 나섰다. 치협 김세영 회장은 지난 4월 13일 열린 ‘치과의사전문의제도 개선 방안 관련 공청회’ 자리에서 “처음 전문의제도가 시행될 당시 매년 전공의 정원을 3%씩 감축할 것을 전제로 첫 전공의를 선발한 바 있지만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면서 “유명무실한 소수정예 전문의제도의 틀을 원점에서 다시 짜야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소수정예 원칙이 유명무실한 상태로 지속되고 있고, 더욱이 2014년 전문과목 표방이 허용된다면 기득권을 포기했던 치과의사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것이 분명하다. 또한 치과계 내부갈등도 예상된다.
이 같은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치협 전임 집행부가 경과조치까지 시행하면서 도입한 ‘통합치과전문임상의(AGD)’는 정작 이번 전문의제도 개선 논의에서는 논외로 치부되고 있는 상황이다. AGD와 그 내용면에서 유사한 ‘가정치의전문의’ 도입이 고려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AGD에 대한 고민은 전무한 상황이다.
전문의 공청회에 AGD는 없었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3번에 걸쳐 전문의제도 관련 공청회가 열렸다. 제도 시행 8년이 지났지만 일단 큰 틀을 다시 짤 수 있다는 법적 가능성을 확인했고, 복지부 측도 “국민의 구강건강 향상을 위한 안이라면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공청회를 통해 밝혔다.
현재까지 대두되고 있는 전문의제도의 해법은 소수원칙이 무너졌기 때문에 ‘모두 개방’ 쪽으로 가닥을 잡겠다는 것이다. 개방론은 경과조치 시행, 전문과목 신설 혹은 통폐합 등으로 나눠진다. 물론 소수원칙을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전문의제도와 관련해 따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바로 AGD제도다. AGD는 치협이 자체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제도이며, 국가가 보장하는 법적 근거는 마련돼 있지 않다. 하지만 이번 전문의제도 개선과 관련해서는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향후 더 큰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치협은 최근 수차례 열린 공청회에서조차 AGD를 연계한 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치협 이강운 법제이사는 “전문의제도 관련 개선 연구와 논의를 한 곳으로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아직까지 전문의제도 개선에 대한 확실한 대안을 마련한 것도 아니고, AGD 또한 별도로 연구할 필요성은 있지만, 현재로써는 전문의제도 자체의 개선에 더욱 집중해야 할 시기이기 때문에 AGD와 관련해서는 아직까지 다루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AGD는 태생 자체가 전문의제도 시행과 맞물려 있다. 더욱이 치협 전임 집행부에서 AGD 경과조치를 시행하면서 1만1,471명의 치과의사가 AGD 자격취득을 희망하고 나서는 등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가정치의전문의와 AGD의 차이점은?
전문의제도 개선과 관련해 치협은 인턴제를 폐지하고 (가칭)가정치의전문의 과정을 도입하는 안을 제시한 상태다. 기존의 10개 전문과목에 대해서는 심화과정으로 수련 과정을 이원화하자고 제안했다. 새롭게 신설되는 가정치의전문의로 기존의 임의수련 치과의사들을 흡수한다는 방침이다.
통상 경과조치는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 실시해 1차 시험이 치러지기 전에 마무리돼야 한다. 따라서 기존 10개 과목에 대한 전문의 경과조치는 사실상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과목을 신설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경과조치를 발효해 임의수련자나 기존 일반 치과의사들에게 시험 기회를 주겠다는 복안으로 판단된다.
치협의 가정치의전문의안은 기존의 10개 전문과목에 1개 과목을 신설하는 방법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인턴제를 폐지하고 1~2년 수련과정의 ‘가정치의전문의’를 도입하는 것 △10개 전문과목을 전공하고 싶은 이는 가정치의전문의 과정을 마친 후 3~4년 과정의 심화전문의에 신청하는 것 △따라서 전문의를 이원화 한다는 것.
내용적으로 보면 현재 AGD와 비슷한 맥락이다. AGD를 법제화 한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말이다.
AGD수련기관 관계자는 “인턴제를 폐지하고 AGD로 대체하는 방안도 논의될 필요가 있다”며 “2년 과정의 AGD 수련을 마치고, 교정이든 보철이든 자신이 전문과목에 대해서는 더 수련할 수 있도록 하게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전문의 개방론이 부상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 같은 방안을 함께 논의할 필요는 충분히 있다. AGD 경과조치를 신청한 이가 백명도 아닌 천명도 아닌 1만1,500명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AGD 신청자 중 자격취득 포기 속출하나?
‘통합치과전문임상의’라는 국문명칭 사용이 사실상 금지된 AGD는 애초 전문의제도 시행으로 인해 전공의 선발을 할 수 없거나 선발하더라도 매우 적은 수를 배정 받는 수련기관을 배려하기 위한 제도였다.
무엇보다 소수정예 원칙으로 인해 전공의 정원이 줄어든 것을 감안해 수련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에게도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출발했다. 예나 지금이나 통합치과를 운영하고 있는 일부 AGD수련기관의 경우 교육자나 피교육자 모두 만족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가정치의전문의와 AGD는 특정 전문과목만을 전공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치과의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모든 과목을 두루 섭렵한다는 측면에서 일맥상통한다. 게다가 수련기간까지 2년으로 맞춰진다면, 양 제도는 내용 면에서 거의 차별성을 찾을 수가 없다.
지난 2009년 당시 치협 집행부는 AGD를 “개원의를 위한 선물”로 표현한 바 있다. 전문의제도로 인해 소외받은 기존 치과의사들에게는 마치 가뭄의 단비 같은 ‘경과조치’였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AGD 경과조치 시행으로 총 1만명이 넘는 치과의사가 자격취득을 신청을 했고, 경과조치 시행 3년째를 맞고 있는 올해 필수교육은 마무리된다.
치협에 따르면 지난 8월까지 AGD 자격을 취득한 이는 총 3,600여명이며 여기에는 경과조치 신청자뿐만 아니라 2년의 AGD수련을 마친 이들도 포함된다.
치협 관계자에 따르면 9월에는 약 300명 이상이 추가로 교육을 이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수를 감안하더라도 올해 12월까지 교육을 이수하는 자는 약 5,000여명 정도로 예상된다. 경과조치 신청을 하고도 교육을 제대로 이수하지 않는 이가 절반에 가까울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 가정치의전문의제도가 신설돼 경과조치까지 시행된다면, AGD는 그야말로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할 것이 확실하다.
이미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AGD 자격취득을 한 이들은 전문의 경과조치가 발효되면 또 다시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결국 모든 노력을 이중으로 들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AGD 자격을 취득한 모 개원의는 “전문의 과목신설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가정치의전문의 등 경과조치를 시행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되기 전에 치협이 시행한 AGD제도를 함께 고려해서 제도를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정치의전문의 수련과정과 AGD 수련과정은 내용적으로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쉽게 예상된다. 무엇보다 2년의 시간을 투자해 AGD수련을 받은 이들에게 경과조치 시행은 또 다른 문제다.
전문의제도 시행 전 임의수련을 받은 이들 또한 각자 전문 과목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치의전문의라는 타이틀을 과연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전문의 개방론에 AGD 행방은 묘연
AGD는 보완해야 할 대상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과조치 시행 3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 복지부로부터 국문명칭 불가 방침만을 받았고, 개선책에 대해서는 특별한 논의가 없다.
전문의제도 개선에서 AGD가 논외로 치부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점점 더 꼬여가는 실타래와 같은 존재가 됐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치과계 내부 합의를 어떻게 이끌 것인가는 전문의제도 개선의 ‘본 게임’이다. 기존에 임의수련을 받은 이들과 전·현직 교수, 전문의시행 이후 전문의자격을 취득한 치과의사전문의, 현재 수련을 받고 있는 전공의 및 치과대학생 그리고 기존의 임의수련을 받지 않은 일반 치과의사. 이것만 해도 합의의 실마리를 어디부터 어떻게 잡아나가야 할지 암울하다. 여기에 AGD 자격취득자 문제까지 더해진다면 전문의제도 개선 논의가 과연 한 발짝이라도 전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치협 김철환 이사는 “임의수련을 받지 않은 이들에게 전문의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의료법과 관련해서 매우 복잡한 문제에 당면할 수 있다”며 “더욱이 AGD와 관련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으며, AGD를 바로 국가자격제도화 하는 문제는 더욱 큰 숙제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소수원칙이 무너진 전문의제도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외된 일반 개원의들에게 AGD는 반가운 선물이었을지 모르지만, 전문의 개방론이 부상하고 있는 현재 AGD는 ‘계륵’으로 전락했다.
국문명칭 사용 여부와 관련해서도 명확한 해답이 나와 있지 않고, 더욱이 제도권으로 편입하기 위한 노력과 연구 또한 적극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3년의 경과조치 필수교육이 마무리되는 AGD제도에 대한 총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신종학 기자/sjh@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