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맞는 말인데 옳다고 하기에는 어려운 것들이 있다. ‘맞다·틀리다’는 참과 거짓을 나누는 명제로 객관적인 관점이고, ‘옳다·그르다’는 주관적 관점이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는 맞는 것이지만 주관적으로는 옳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 것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인식은 선거에서 보였듯이 개인에 따라 차이가 크다. 반대로 옳다고 하는 말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시어머니 잔소리나 혹은 직장 상사나 선생님, 선배 혹은 부모가 될 수도 있다.
얼마 전 전공의대표가 대학 수련 병원 시스템을 이야기하면서 “의대 교수는 착취사슬 관리자, 병원은 문제 당사자”라고 표현하였다.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대학병원 현 상태를 명쾌하게 한마디로 정의한 깔끔한 표현이었다. 다만 모두가 알고 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던 사실로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표현을 보면서 뭔가 마음이 불편함을 느꼈다. 수련의가 지도교수들을 착취의 관리자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서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도제식 교육이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직업 중 하나가 의료계인데 이런 도제식 교육적 개념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술자는 교과서에 적혀있지 않은 수많은 경험에서 오는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고, 그것은 스승에서 제자로 전수되는 것으로 도제식 교육이다. 예체능계와 전문 기술직이 해당한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반도체 기술자들도 마찬가지고 선박 용접공도 마찬가지다. 한국 반도체 기술자 실력은 세계 최고다. 예를 들어 한국과 똑같은 공장을 외국에 만들어도 기술자 유무에 따라 불량 나오는 정도가 달라진다. 선박용접 기술은 용접한 부분이 균열이 나지 않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기술자들이 장인으로 세계 최고다. 이처럼 한국 의료가 세계에 우수한 레벨에 올라가기까지는 한국적인 도제식 교육이 많은 긍적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물론 과거에도 전공의 대표가 말했듯이 교수들은 착취사슬의 관리자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교수들도 알고 있었기에 제자들에게 자신들이 어렵게 배우고 깨달은 노하우를 전수해 주었을 것이다. 착취사슬 관리자라는 말을 들은 교수들은 당사자들이기 때문에 아마도 필자보다 더 마음이 아팠을 게다. 교수이기 전에 사람이기 때문이다. 전공의 전부의 생각이 아니고 단지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으나 용모에 핸디캡이 있는 사람에게 굳이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결코 기분 좋은 말은 아니다. 물론 그가 그렇게 표현을 해야 할 만한 이유와 상황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필자가 그의 말을 부정하거나 비난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도 아니다. 사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전공의는 수련의로서 일을 하는 의사가 아니다. 전문의가 되기 위해 수련을 받고 배우는 의사이기 때문에 일보다는 공부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것이 맞다. 대학병원들은 전공의가 없어도 충분히 운영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전공의들이 빠졌다고 병원이 마비된다는 것은 기형적 시스템이며, 그가 말한 대로 전공의 노동력을 착취한 것이 맞다. 의대 교수들이 전공의 착취 관리자인 것은 맞지만, 그들 또한 병원 시스템에서 최종 관리자에게 착취당하는 피고용인인 신분도 있다.
사회적 신분은 늘 이중구조를 지니기 때문이다. 후배에게는 선배이지만 선배에게는 후배인 것이 이중신분이다. 전공의대표 말 속에는 이중신분에 대한 의미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수련의 입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부분일 수도 있고, 그가 처해있는 환경이 그런 구조일 수도 있다. 물론 모든 교수가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들은 아니다. 개중에는 인격적으로 나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심지어 성추행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철저한 이기적인 성품으로 전공의를 제자로 대하기보다는 소모품으로 이용해먹는 못된 인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사가 도수분포표를 따르듯이 나쁜 사람 5%에 좋은 사람 5%가 있고 보통 사람 90%가 있을 것이다.
아직도 필자는 의료는 도제식 교육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의 표현에 마음이 아프다. 맞는 말이라도 누군가에게 상처가 된다면 옳지 않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