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서나 각종 진료관련 서류를 발부하면서 상병명을 기입해야 하는데, 상병명은 임상에서 사용하는 진단명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상병명은 행정 또는 법적 서류에 의해 비의료인들을 위한 분류코드를 표준질병사인 분류체계로 약속해 분류하고 통계를 내기 위한 것이다. 실비나 실손보험을 받기 위해서는 턱관절질환에 대해 K07.6을 기입해야 함에도 K09나 K10 분류에 ‘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고 해당 코드로 기입해 달라는 요청이 있다는 문의를 자주 받는다. 그런 요구는 하지도 말아야 하고, 그 요구로 업코딩이나 코딩을 자의적으로 한다면 그건 불법적인 일에 가담하는 결과가 된다.
진단병과 상병명의 분류가 다르긴 해도 질병코딩 원칙에 따라 코딩하는 것이 원칙이다. 질병사인분류를 검색버튼으로 진단명을 검색해 그 단어가 있다고 해서 코드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학적으로 분류체계에 적합한 코드가 있다면 우선적으로 그 코드를 부여하는 것이 원칙이다. 실손보험을 받기 위해 다른 코드를 부여하는 것은 일종의 범죄 또는 불법행위에 가깝다. 코드선택이 치과의사의 고유권한이라고 주장한다 해도 분류체계의 분류원칙과 코딩원칙을 무시하는 것까지 권한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때 안면/두개골 특정골절이 민간보험의 보상 범위에 들어간 적이 있다. 문제는 S02 분류에 치아파절이 S02.5로 포함이 되어있는 줄 모르고 보험상품이 개발된 것이다. 영어로 하면 fracture이고, 부위에 따라서 골절/파절이 우리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치의학적으로 치아골절이라는 단어는 없는데도 치아골절이라고 기입하지 않아서 지급을 거절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경우라도 치아는 파절이 맞지 보험사가 요구하는 치아골절이라고 진단서를 발부할 수는 없다. 한번은 보험사와 언쟁을 하다가 차라리 fracture라고 상병명을 적어준 적도 있다.
비슷한 예로 골절을 개방성/폐쇄성의 세부분류를 시작했을 때 치아도 해당된다고, 심평원에서 불완전코드로 분류해 코딩이 안 된 적이 있다.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는 통계청에서 통계법에 의해서 관리하는데, 통계청 유권해석까지 받아서 심평원 불완전코드를 수정한 적도 있다. 치아는 개방성/폐쇄성 파절이라고 분류할 수도 없고, 우리는 그렇게 분류하지도 않는다.
척추에 고령의 환자가 낙상으로 압박골절(compression fracture)이 진단되면 S코드가 부여될 것이냐, M코드가 부여될 것이냐에 대해서는 의사와 보호자 사이에 의견이 갈라지게 진다. 일단 넘어지거나 충격을 받은 것이 분명하니 S코드라고 주장하게 되고,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경우 상해를 입기 전 기저질환 유무에 따라 코드가 달라지게 된다. 만약 환자가 골다공증을 가지고 있다가 뼈가 약해져서 사고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골절이 발생하면 병적골절(pathologic fracture)이 되고, M코드를 부여하는 것이 원칙이다. 물론 골다공증이 없었다면 S코드이므로 검사를 하지 않는다면 골다공증이 있는지 모르는 상태라서 상해코드가 나갈 수도 있다.
비슷한 예가 치아우식증으로 치관이 약해지거나 치질이 많이 비어있는 상태에서 주위가 깨진 것도 상해인지, 질병인지 치과의사가 판단해야 할 것이다. 깨졌으니 무조건 상해코드로 부여해야 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질병코딩은 원칙이 있고, 그 원칙은 근거가 있어야 일관성과 표준분류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분류체계에 대해 꼼수를 자꾸 찾게 되는 것은 표준분류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진단명이 상병명과 일치하지 않으므로 우선적으로 부여할 수 있는 코드가 없다면 그때부터는 그래도 원칙에 부합되는 코드를 찾아야 하는 것이지, 어떤 특정목적을 가지고 코드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특히 보상과 관련된 서류 등은 신중하게 코드를 부여해야 하며, 환자의 주장이나 보험설계사의 말만 믿고서 코드를 부여했다가는 나도 모르게 불법적인 일에 가담한 결과가 되므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