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로미티가 어디에요?’
때는 2015년 여름, 이탈리아 현지 투어가이드인 나는 버스 운전기사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여름 휴가는 어디로 가는지 질문이 오고 갔다. 7월과 8월은 여름 성수기로 일이 많을 때라 딱히 휴가를 갈 생각은 없었는데, 기사분은 산을 좋아한다며 매년 여름마다 돌로미티 지역에 다녀온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그 당시 처음 듣는 지명이라 돌로미티가 어디냐고 되물었고, 그런 나에게 웃으며 차근차근 설명 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수많은 여행자들과 다양한 장소를 다녀봤을 기사분이 해마다 찾는 여름 휴양지라하니 과연 어떤 곳일까? 내심 궁금했다.
직접 경험하고 얻은 지식을 최고의 자산이라 생각하는 나이기에, 바쁜 시기였지만 내게 주어진 3박 4일의 여름휴가 기간을 활용해서 이탈리아 알프스 돌로미티 지역을 혼자서 렌터카 여행으로 다녀왔던 것이 나의 첫번째 돌로미티 여행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때 다녀오길 참 잘했던 것 같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약 4년간의 로마 생활을 마무리하고 2018년 베네치아로 이사를 하게 된 후, 돌로미티는 운명처럼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2018년 5월부터는 아시아나 항공에서 직항으로 인천-베네치아 운항이 시작되면서(아쉽게도 코로나 이후에는 해당 노선이 운영되지 않는다) 많은 관광객들이 베네치아를 방문하던 중이었고, 베네치아 in – out 동선으로 동유럽 패키지 팀들도 들어오면서 이탈리아 북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던 시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 맞춰 베네치아에서 출발하는 당일치기 돌로미티 투어 상품을 개발하게 되었다.
이탈리아 알프스 돌로미티
‘알프스’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사람들은 가장 먼저 머릿속에 ‘스위스’를 떠올린다. 광활한 대자연 속에서 여유로운 일상과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 하지만 다른 유럽지역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물가와 유럽연합에 속해 있지 않아 스위스 화폐를 따로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 그리고 주요 관광지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관광객들로 가득 채워진 모습에 여기가 스위스인지 당황스러워 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대체제로 급부상 중인 곳이 이탈리아 돌로미티 지역이다. 물론 스위스는 스위스만의 매력이 있고, 돌로미티는 돌로미티 만의 매력이 있어서 둘 다 가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알프스를 찾는 여행객들에게 스위스만 있는 것이 아닌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글과 사진, 그리고 영상과 투어상품으로 이탈리아 돌로미티 지역을 홍보하고 있다.
로마에서 출발하는 남부 투어는 ‘바다’를 테마로, 피렌체에서 출발하는 토스카나 투어는 중부 내륙지방의 텔레토비 동산 같은 ‘구릉지대’를 테마로, 베네치아에서 출발하는 돌로미티 투어는 ‘돌산’을 배경으로 하는 산악지대의 산과 호수, 그리고 마을 등의 풍경을 둘러보게 된다. 로마-피렌체-베네치아에서 박물관/미술관/성당/유적지 등을 둘러보고, 돌로미티의 대자연 속에서 잠시 쉬어가는 일정도 계획에 포함하는 것을 추천한다.
돌로미티(Dolomiti)=돌로미테(Dolomite) 암석이다량 분포되어 있는 지역
그냥 일반적인 산이 아니라 ‘돌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운암’이라고도 불리운다. 18세기에 이 산맥의 광물을 연구했던 프랑스 학자 돌로미외의 이름을 따다 붙인 ‘돌로미테’ 라는 암석이 다량으로 분포되어 있는 지역이다. 우리가 로마를 여행할 때 콜로세움을 바라보면 돌로 만든 거대한 건축물이 주는 웅장함을 느낄 수 있듯이, 돌로미티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대자연 속의 거대한 돌산이 내뿜는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돌로미티 지역은 면적이 넓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나라 여행객들 사이에서는 편의상 서부/중부/동부로 나누어 부르기도 한다. 서부지역은 베로나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볼차노 마을, 오르티세이 마을, 중부지역은 돌로미티 지역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마르몰라다, 동부지역은 베네치아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코르티나 마을, 도비아코 마을이 주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 속 작은 오스트리아 그리고 티롤
돌로미티 지역에 진입하게 되면, ‘여기가 이탈리아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건물의 생김새, 음식, 기념품, 산장이나 식당에서 종업원분들이 종종 입고 다니는 전통의상. 그 모든 것들이 이탈리아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과거에 이곳은 ‘티롤’이라고 불리던 지역이었으며, 세월이 흘러 오스트리아 영토로 편입되었고, 북티롤(인스브루크), 동티롤(리엔츠), 남티롤(볼차노) 3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1919년부터 북티롤과 동티롤은 오스트리아, 남티롤은 이탈리아 영토로 편입되게 된다. 이탈리아 영토로 편입된 지 1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독일어와 라딘어(ladin), 이탈리아어 3개 언어를 함께 쓰고 있기에 도로 간판 및 주요 안내책자에 독일어-이탈리아어가 함께 표기되고 있다.
물론, 돌로미티 지역 전체가 남티롤 지역인 것은 아니다. 코르티나 마을은 베네치아가 소속되어 있는 베네토 주로 분류된다. 우리가 돌로미티 지역을 여행한다는 것은 이탈리아 북동부 지역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티롤의 모습도 만날 수 있기에 마치 또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것 같은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음식의 경우, 사과가 유명한 곳이어서 사과쥬스나 디저트 메뉴 중에 사과로 만든 도너츠도 별미다. 이탈리아는 국물요리를 거의 볼 수 없는데 이 곳에서는 헝가리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굴라쉬도 먹을 수 있다. 사슴 고기도 팔기는 하는데 개인적으로 나의 입맛에는 잘 맞진 않았다. 음식의 가격대도 합리적이고 호수나 산을 바라보며 멋진 풍경을 반찬삼아 식사 할 수 있는 곳들이 많다. 기념품은 나무로 만든 뻐꾸기 시계나 에델바이스 꽃으로 장식된 다양한 제품들, 그리고 알코올도수가 40도에 이르는 식후주(그라빠)도 다양한 종류로 판매하고 있다.
다양한 코스로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 가능
서부에서 동부까지 직선 거리로 약 120km에 달하는 면적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돌로미티 지역에는 해발고도 2,000미터 이상의 포인트로 편하게 오르내릴 수 있는 케이블카, 리프트, 강삭철도가 약 200여개 분포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산을 오른다고 하면 이른 아침부터 출발해서 4~8시간 쉼 없이 오르막을 걸어 오르는 ‘등산’을 머리 속에 떠올리지만 돌로미티 지역에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이러한 시설들이 잘 마련되어 있다.
물론, 전문적인 산행을 원할 경우 알타 비아(Alta Via) 트레킹 코스들에 도전하면 된다. 그리고 꼭 산을 오르지 않아도 된다. 호수 주변을 산책하거나 나룻배나 페달배를 타도 되고, 1인용 놀이기구인 펀봅(Funbob)을 타도 된다.
케이블카나 리프트를 이용하고 싶다면, 본인의 일정에 맞춰서 필요할 때마다 매표소에서 구입해도 되고, 돌로미티 슈퍼써머, 슈퍼스키라는 이름으로 1일권, 7일권, 시즌권 등을 구입해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도 있다. 올라가는 지점과 내려가는 지점을 다르게 계획할 수도 있으며, 본인의 체력에 맞게 코스를 선택하면 된다. 높은 해발고도 덕분에 한여름에는 마치 에어컨을 틀어 놓은 듯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도 하여 여름철 최고의 피서지이자 휴양지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해발고도가 높으면 저산소증으로 인한 고산병 증세를 걱정하기도 하는데, 돌로미티 지역의 트레킹 코스들은 주로 1,000~2,500m 사이에 형성이 되어 있어서 특별히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물론 해발고도 3천미터 넘는 봉우리들도 있지만 트레킹 코스에는 포함이 되어 있지 않거나 마르몰라다처럼 케이블카로 올라갈 수 있게끔 시설이 잘 준비되어 있다.
1956년, 그리고 2026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다가오는 2026년 제25회 동계올림픽은 이탈리아 밀라노-코르티나 마을에서 공동개최될 예정이다. 이탈리아에서는 3번째로 열리는 동계올림픽이며(1956년 코르티나, 2006년 토리노,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1956년 이후 한번 더 개최하게 되는 코르티나 마을의 경우, 동계올림픽 역사상 2번 개최한 4번째 장소로 기록되게 된다(스위스 장크트모리츠,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미국 레이크 플래시드,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 – 줄여서 ‘코르티나’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자연 속에서 스키, 보드, 눈썰매, 개썰매, 야외온천, 실내온천 등 겨울철에도 즐길거리가 다양하며 특히, 볼차노, 오르티세이 마을 등 돌로미티 지역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은 이탈리아 내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5월과 11월은 돌로미티 지역의 상가와 케이블카도 잠시 쉬어가는 계절이고, 장소에 따라 일부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여름시즌(6월부터 10월), 겨울시즌(12월부터 4월)이 성수기다.
대중교통 여행도 OK! 차량렌트 여행도 OK!
아무리 멋진 풍경이라도 내가 갈 수 없다면 꽝이다. 돌로미티 지역은 대중교통으로도 충분히 여행이 가능한 곳이다.
돌로미티 서부지역의 경우 로마-피렌체-볼차노까지 환승없이 이어지는 고속기차가 운영중이며(로마에서는 5시간10분, 피렌체에서는 약 3시간20분 소요, 하루에 6~7대 배차) 밀라노와 베네치아에서 출발하는 경우 베로나에서 1회 환승 후 볼차노로 이동하거나 독일-오스트리아 철도청에서 운영(1일 1회 또는 2회)하는 기차를 타면 환승없이 볼차노까지 이동할 수 있다. 돌로미티 동부지역의 경우 베네치아에서 출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현지에서 운영중인 투어상품을 이용하거나 차를 렌트해서 당일치기 여행으로도 다녀올 수 있다.
돌로미티 서부 또는 동부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오고가는 물리적인 이동시간과 케이블카 운영시간이 있기 때문에 대중교통 여행 시 최소 ‘1박’ 이상을 추천한다. 여건만 된다면 총 4~6박 정도 투자해서 서부에 2~3박, 동부에 2~3박 배정 후 주요 포인트들을 한번씩 둘러 보고 오는 것을 권장한다. 유튜브 이탈리아 여행연구소(with 이태리부부) 채널에 돌로미티 여행에 관한 영상을 50여개 정도 업로드해 두었으니 돌로미티 여행 계획 시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알프스 보러 언제까지 스위스만 갈 것인가?
이제 이탈리아 돌로미티로 가자~!”
가까운 시일 내에 베네치아-인천 직항 노선이 다시 재개되길 바라며, 이제 우리나라 여행자분들에게도 제법 알려지고 있는 돌로미티,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돌로미티 일정도 포함하길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