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이 끝났다. 이번 올림픽은 평창올림픽 때와는 너무도 달랐다. 언제 시작하는지도 몰랐고 언제 끝났는지도 몰랐다. 모르게 시작해서 모르게 끝났다. 너무 먼 나라에서 개최되었고 시차가 많이 난 탓이라 생각된다.
이번 올림픽이 끝나고 금메달을 따는 장면도 기억이 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장면도 마음에 남았다. 쇼트트랙에서 평창 금메달을 따고 중국에 귀화한 선수가 빙판에서 미끄러지는 장면이다. 한국 금메달리스트가 어떤 사건으로 1년간 출전정지 징계를 받고 다른 나라에 귀화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8년 만에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노메달이 되는 장면이었다. 어린 나이에 참 많은 마음고생을 했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지금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1년 출전정지 징계를 참고 견뎠다면 지금과 다른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다고 하니 개인적으로 매우 억울하고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세상일은 억울할 때도 있고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억울함은 간혹 참고 기다리다 보면 다시 풀릴 때도 있다. 모두 지난 일이지만 억울해도 1년이라면 기다리는 선택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해본다.
살다 보니 세상은 한 20% 정도는 여유가 필요한 듯하다. 옛날 뜻있는 부자들은 추수기에 “8할만 거두고 나머지는 들판에 남겨두라”고 하였다. 가난한 이웃이나 떠돌이들이 굶지 않도록 배려하는 나눔의 미덕이었다. 또 땅에 떨어진 알곡은 줍지 않았다. 짐승이나 벌레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우리 선조는 가을에 감을 딸 때도 날짐승의 먹이로 꼭대기 몇 개는 남겨두었다. ‘까치밥’이다. 자연이 준 것은 8할만 거두는 생각은 인간이 땅의 산물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짐승 혹은 벌레들의 생명을 위해 남겨두어야 한다는 생명 존중이었다.
이런 정신은 우리 선조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성경에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는 말씀이 있다. 이 역시 같은 배려의 정신이다. 살다 보면 세상일이란 것이 최소한 20%는 배려 혹은 여유가 필요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억울함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또 하나 특이점이 있었다. 한 방송사 외에는 어떤 곳에서도 경기를 볼 수 없었다. 예전에는 방송사들이 한 팀으로 협력해서 IOC와 계약을 해왔는데 이번엔 한 방송사가 업계의 룰을 깨고 더 비싼 가격을 주고 독점했기 때문이었다. 예전 부자들이 보여준 더불어 사는 2할 배려는 고사하고 자기 혼자만 더 잘살겠다는 생각으로 보인다.
치과계에서 자행되는 20만원대 임플란트와 다르지 않다. 결국 까치밥이 지닌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 이런 현상은 자주 목격된다. 요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총알배송 업체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오로지 돈으로만 보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까치가 아닌 직원들에게조차 배려나 인간적인 대우는 고사하고 당연히 해줘야 할 것조차도 탈법적으로 하지 않았다. 까치밥은 고사하고 돈이 되니까 나무마저 뽑아서 장에서 팔아버린 꼴이다. 2할의 여유로 배려 혹은 인내가 없으면, 결국엔 어려움으로 되돌아 받는 것이 커다란 의미의 자연법칙이다.
1년간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중국으로 귀화하여 더욱 어려워진 선수는 안타깝다. 업계 룰을 깨고 독점한 방송사는 앞으로 그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20만원대 임플란트를 주도하는 곳들도 역시 머지않아 유사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역시 총알배송으로 유명한 기업도 결국엔 그리될 것이다. 까치밥은 배려를 넘어 더불어 같이 사는 정신이다.
경주 최부잣집의 육훈(六訓) 중에 ‘재산은 만석(萬石) 이상 모으지 마라,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가 있다. 독식하지 말고 남을 배려하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흥행에 실패한 이번 동계올림픽은 씁쓸한 여운마저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