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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치과생활

국내 제약업계 이끈 ‘유한양행’ 100년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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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이가영 기자
사진제공_유한양행

 

1926년, 일제강점기 혼란 속에서 대한민국이 경제적·사회적으로 고통받던 시기, 유한양행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창립자 유일한 박사의 비전 아래 설립됐다. 당시 조선은 기본적인 의료 시스템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대부분의 의약품을 외국에서 수입해야만 했다. 이렇듯 암담한 현실에서도 유일한 박사는 독립된 의약품 제조 기반을 마련하고, 국민 건강 수호에 기여하기 위해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오는 2026년,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있는 유한양행은 오랜 시간 동안 대한민국 제약산업을 이끌고, 국민의 삶을 높이는 데 기여해왔다. 오늘날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무대에서도 눈부신 활약 중인 유한양행, 그 100년의 여정을 하나씩 되짚어 본다.

 

시대를 앞선 참경영인 유일한 박사

유한양행 창립자 유일한 박사는 아홉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경영학과 교육을 공부하며 서구식 선진 경영 철학을 접했고, 1916년 미시건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 ‘제1회 한인자유대회’가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됐는데, 이 대회에서 당시 대학 졸업반이던 유일한 박사는 재미 한인대표로 ‘한국 국민의 목적과 열망을 성명하는 결의문’ 작성의 기초위원회 위원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미국서 식품회사를 설립해 큰 성공을 거뒀지만, 1925년 귀국했을 때 국권을 침탈당한 채 빈곤과 질병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동포들의 현실을 보고 이를 타개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당시 유 박사는 민족의 어려운 현실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업을 설립하겠다는 의지를 품었고, ‘건강한 국민만이 장차 교육도 받을 수 있고, 나라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제약업을 택했다. 그리고 마침내 1926년, 유한양행을 설립하게 된다.

 

유일한 박사는 ‘우수 의약품 공급’을 목표로 미국의 선진의약품을 수입·판매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는 미국 애보트 社와 합작으로 중국 대련에 약품 창고를 세우고 만주지역으로 사업영역을 넓혀가는 한편, 안티푸라민을 자체 개발해 판매하는 등 제약기업으로 본격적인 성장을 이뤘다.

 

창립 10주년을 맞이한 1936년에는 ‘주식회사 유한양행’을 발족, 개인 기업을 법인으로 전환함으로써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닌 사회와 직원의 것’이라는 경영철학을 구체화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1942년, 유일한 박사는 미육군전략처 한국담당 고문으로 활동하며 재미 독립운동가들과 힘을 합해 로스엔젤레스에 ‘한인국방경위대’를 편성했다. 1945년에는 12개국 대표 160명이 개최한 태평양문제연구회 총회에 참여, 국제사회에 대한민국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기도 했다.

 

유일한 박사에게 기업활동은 그 자체가 교육사업이자 공익사업이었다. 귀국 후부터 시작된 장학·공익사업은 회사가 안정기에 접어들며 본격화됐다. 1952년 고려공과기술학교를 설립하고, 1960년대에는 유한중학교, 유한공업고등학교를 설립해 기술인재 양성에 힘썼다. 나아가 항구적인 교육장학사업과 사회원조사업을 위해 유한양행 주식 등 자신의 재산을 출연, 1970년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신탁기금(현 유한재단 및 유한학원)을 발족했다. 1971년, 76세를 일기로 영면에 든 유 박사는 자신의 소유주식 전부를 이 기금에 기증했다. 이는 자신의 모든 소유를 자식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고 사회발전에 쓰도록 한, 이른바 ‘전 재산 사회 환원’이라는 미증유의 사건으로 기록되며 사회에 큰 귀감이 됐다.

 

 

유한양행 도전과 성장

창립 초기 유한양행은 자본과 기술 모두 열악한 상황에서 다소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당시 의약품 생산 기술은 대부분 해외에서 독점하고 있었고, 조선 내에서 관련 기술을 확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유한양행은 국제 기술을 도입하고, 국내 생산 기반을 다지기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1930년대 유한양행은 항생제와 비타민제를 포함한 필수 의약품 생산에 성공하며 국민적 신뢰를 얻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기업의 성장을 넘어,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조선 제약산업의 자립을 가능하게 한 발판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더불어 수많은 ‘최초’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40년대에는 국내 최초로 항생제를 도입하며 감염병 치료의 새로운 길을 열었고, 이후 소염제, 해열제 등 국민 건강에 필수적인 의약품의 대량생산에 성공했다.

 

1950~60년대는 대한민국이 전쟁의 상흔 속에서 경제적 재건을 이뤄가던 시기였다. 당시 열악한 의료 환경 속에서 기초 의약품은 국민이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이었는데, 이 시기 유한양행은 대중적 의약품을 보급하며 국민 건강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70년대에는 자체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국 최초의 신약을 개발하며 기술적 독립을 이뤄냈다. 대한민국 제약업계가 외국 의존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연구개발 능력을 갖추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특히 항암제, 항바이러스제와 같은 고부가가치 의약품을 개발, 글로벌 제약사들과의 기술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대한민국 제약업계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2000년대 이후 유한양행은 글로벌 제약사에 신약 기술을 수출하며 연구개발(R&D) 능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고,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에서 기업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 가능 성장

유한양행은 창립 초기부터 기업의 이익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원칙을 고수해왔다. 단순한 자선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장학 사업 △의료 캠페인 △복지 지원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졌다. 특히 유한양행의 장학 사업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학생들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하며,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는 데 기여했다.유일한 박사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사회 환원 활동은 오늘날까지도 유한양행의 중요한 경영 철학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매년 수익의 일정 비율을 사회에 환원하며, 기업과 국민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통해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친환경 패키징 개발을 통해 탄소 배출 등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고, 의료 취약계층에 의약품 지원과 무료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장학 사업과 인재 양성 교육 및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실천 중이며,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위한 봉사활동과 사회공헌활동 역시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ESG 위원회를 설립하는 등 투명한 경영을 실현하고 있다. 정기적인 교육과 감사를 통해 윤리적인 기업 문화를 정착시킴으로써 이해관계자들에게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났고, 환경, 사회, 지배구조 전반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100년의 유산 위에 미래를 설계하다”

유한양행은 2026년 창립 100주년을 맞아 그간의 성과를 돌아보며,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유일한 박사가 강조한 ‘인류 건강과 행복을 위한 헌신’ 정신은 여전히 유한양행의 중심에 있다. 앞으로도 유한양행은 국내를 넘어 글로벌 제약 시장에서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계획이다.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한민국 제약산업의 기틀을 다지고, 국민과 함께 성장해온 유한양행의 발자취는 대한민국 산업 발전의 역사로 남았다. 앞으로의 유한양행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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