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미국에서 가장 자랑하는 프랜시스 S 피츠제럴드가 쓴 소설 ‘위대한 개츠비(1925년)’가 출간된 지 100년 되는 해다. 미국은 GAN(Great American Novel)으로 모비딕과 위대한 개츠비를 꼽는다. 황금만능주위가 만들어내는 사회에서의 도덕적·윤리적인 문제점을 잘 나타내며 명작 반열에 올랐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보이는 모습들은 100년 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엄청난 풍요 속에서 도덕적·윤리적으로 타락하던 미국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 우리 사회는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을 지나 이제 선진국 문턱에 이르면서 100년 전 미국의 위대한 개츠비가 살던 풍요의 시대에 들어섰고, 더불어 타락의 황금만능주의(배금주의 money worship)에도 매몰됐다.
지난주 수원 아파트에서 50대 엄마와 20대 딸이 동반 자살한 사건에 이어 용인에서 사업에 실패한 50대 가장이 부모와 아내 그리고 성인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을 시도한 사건이 있었다. 지난달 9일에는 수원에서 40대 가장이 아내와 어린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했다. 지난 2월 17일 충북 보은에서도 40대 여성이 미성년 자녀 2명 등과 함께 자살 시도를 했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이 있었다. 최근 들어 일가족이 동반자살하거나 미성년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사건이 급격히 증가했다.
이런 일가족 자살 사건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공통점이 보인다. 파산 등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 여건에 놓이면 자살을 선택하기 전에 자신이 사라진 사회에 남겨진 어린 자녀나 노부모가 구질구질하게 살아갈 것이 안타까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구질구질한 삶을 살 것이란 생각에서다.
그런데 과연 한 사람, 한 어린아이의 삶이 반드시 부자인 부모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이는 ‘가난은 불행’이란 사고방식에서 시작된 것이고 천민자본주의적 사고이며, 배금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두 가지 잘못된 명제에 집단 매몰되어있다. ‘가난은 불행이고, 부자여야 행복하다’는 사고가 불변의 진리로 신앙처럼 됐다.
집이 있어야 행복하다는 생각으로 세를 사는 아이들과는 같이 놀면 안 된다고 엄마들이 가르친다. 결혼은 비싼 집에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해야 한다고 생각해 강남 아파트 주민들끼리 맞선을 본다. 남보다 잘 살아야 행복하기 때문에 친구들을 이기기 위해서 먼저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7세·4세에 학원을 보낸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동의 기반에는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생각하는 황금만능주의가 깔려있다. 친구도 우정보다는 부자 친구여야 하고, 배우자도 사랑보다는 경제적 풍족이 먼저라 생각한다.
이미 100년 전 미국에서 있었던 사회문제가 이제 우리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미국은 소설 ‘위대한 개츠비’라는 소설과 더불어 사회가 반성하고 스스로 정화하는 길을 걸으며 지금의 강한 나라가 되었지만, 우리는 전혀 문제점을 인식도 하지 못하고 더욱더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200년 전에 이미 자본주의 사회가 황금만능주의로 진화되어가는 과정을 설명하며 그 폐해와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황금만능주의는 돈이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며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는 돈을 통해 타인이나 상황에 영향을 주는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넘어 돈 자체를 중시하고 숭배하는 배금주의로 진화된다.
배금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인간적 행복과 사람 간의 사회적 연결고리를 약화시키는 데 있다. 친구 간의 우정, 진정한 사랑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사는 데 공통적으로 존중되어야 하는 인간의 존엄, 자유, 평등, 인권, 민주주의 등과 같은 보편적 가치가 무너진다. 배금주의로 인간의 보편적 가치가 무너진 사회는 인간적 존엄성을 찾기 어려워진다.
최근에 발생하는 일가족 자살사건의 내면에서 이런 그림자가 보인다. 집단적 배금주의가 만들어낸 슬픈 모습이다. 빨리 우리 사회가 ‘위대한 개츠비’의 시대를 자각하고 자성해야 한다.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중하다)의 우리 근본사상으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