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과 은, 백금 등 귀금속 시장의 상승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주식시장 역시 나쁘지 않은 흐름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귀금속의 성과가 이를 상회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일반적으로 위험자산이 안전자산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다는 통념이 있지만, 최근 귀금속 시장은 이러한 공식이 항상 성립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 이후 하나의 금리 사이클이 진행되는 동안 주요 자산군의 흐름을 비교해보면 이러한 특징은 더욱 분명해진다. 글로벌 주식시장과 한국 증시는 모두 상승했지만, 금과 은 역시 그에 못지않은 성과를 기록했다. 특히 은은 최근 들어 금보다 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시장의 관심을 받고 있다. 백금 등 다른 귀금속 시장의 성과 역시 탁월했다. 이는 단순한 단기 테마라기보다, 거시 경제 환경 변화에 따른 자산 선호도의 이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금리 사이클과 인플레이션 환경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 이후 대규모 유동성 공급과 재정 지출이 이어지면서 인플레이션이 급격히 상승했고, 이를 억제하기 위한 금리 인상 국면이 지나갔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금리 인하 압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 현재 경제 환경의 특징이다. 여기에 경기 둔화 가능성까지 더해지면서 시장은 점차 불확실성이 높은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 상황은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나타나는 국면을 의미한다. 과거 1970년대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당시에는 주식과 채권의 성과가 장기간 부진했던 반면 금과 은, 원자재 등 실물 자산은 상대적으로 강한 흐름을 보였다. 부채를 기반으로 한 금융자산보다 실물 자산이 선호되었던 시기였다.
물론 현재의 경제 환경이 1970년대와 완전히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산업 구조와 금융 시스템은 크게 달라졌고, 정책 대응 방식 역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적된 부채,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인플레이션, 금리 인하 압력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전통적인 안전자산의 역할이 변화할 수 있으며, 특히 국채와 같은 자산이 과거만큼 위험자산에 대한 헤지(hedge) 역할을 제공하지 못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금과 은의 강세는 단순한 가격 상승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금은 화폐 가치에 대한 신뢰가 약해질 때 최후의 보루(safe haven) 역할을 해왔고, 은은 통화적 성격과 산업적 수요를 동시에 지닌 자산이다. 인플레이션 압력과 경기 둔화 가능성이 공존하는 국면에서는 이러한 특성이 더욱 부각될 수 있다.
상기 차트는 2023년 8월 금리 고점 이후 주요 자산군의 달러 환산 기준 수익률을 비교한 것이다. 금리 사이클상 금리 인상 국면이 종료되고 인하 국면으로 진입한 이후, 금과 은, 미국 주식, 한국 주식이 각각 어떤 흐름을 보였는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 구간은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이 동시에 상승할 수 있는 특수한 시기이지만, 자산별 성과에는 분명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은의 수익률이다. 금리 고점 이후 은은 다른 자산을 압도하는 상승률을 기록하며 가장 강한 성과를 보였다. 금 역시 안정적인 우상향 흐름을 유지하며, 위험자산을 대표하는 미국 주식 지수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반면 나스닥100과 S&P500은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과 은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성과에 그쳤다.
한국 주식시장 역시 원화 기준으로는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지만, 달러로 환산해 비교해보면 성과가 크게 낮아진다. 이는 같은 상승장이라 하더라도 환율 환경에 따라 체감 수익률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금리 고점(A) 이후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한 상황에서는 달러 자산과 실물 자산의 상대적인 강점이 더욱 부각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금리 고점(A) 이후 국면에서는 단순히 위험자산에 집중하기보다, 어떤 자산이 리스크 대비 상대적으로 더 강한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위험자산의 상승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부담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환경에서는 금과 은 같은 실물 자산이 더 높은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다. 이는 금리 인하 사이클에서 안전자산의 역할이 단순한 헤지 수단을 넘어, 포트폴리오 수익률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산 배분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자산의 단기적인 상승과 하락에 대한 방향성이나 마켓 타이밍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기준금리 국면과 국제 금융 환경 변화에 따라 어떤 자산이 상대적으로 유리한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금리 인상기에는 달러 현금과 위험자산 중에서도 실적이 뒷받침되는 주식의 비중을 높이는 전략이 유효했지만, 금리 고점을 지나 인하 국면으로 접어들면 안전자산의 역할이 다시 중요해진다. 이 과정에서 금은 위험자산을 헤지하는 수단을 넘어, 포트폴리오 전체의 변동성을 완화하는 핵심 자산으로 기능할 수 있다.
현재 시장은 위험자산의 마지막 상승과 안전자산의 선제적 강세가 동시에 나타나는 구간에 위치해 있다. 이 시기에는 모든 자산이 함께 오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산 간 성과 차이는 점차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경기 둔화(recession)가 현실화될 경우 그 격차는 더욱 확대될 수 있다.
자산 배분 투자의 성공 열쇠는 인플레이션과 경기 사이클, 금리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데 있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기일수록 금과 은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를 차분히 이해하고, 큰 사이클 속에서 각 자산의 역할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