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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야기

5억 판사와 아이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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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이야기 - 186

살다보면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경험한다. 치과에서는 환자가 물만 마셨는데 교정용 장치가 떨어지고, 세상에서는 하루 노역이 5억원인 황제 노역이 2010년 법원에서 발생했다. 제주도의 거꾸로 올라가는 도로와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까지 포함하면 너무나도 많으니 자연현상은 제외하고 사람과 연관된 일만 생각해도 많다.

 

사람이 연관된 납득되지 않는 일들은 어떤 사건이 누군가를 거치면서, 무슨 사연인가에 의하여, 사건의 본질이 왜곡되면서 발생한다. 그런 경우, 사건의 본질을 왜곡시킨 사람을 악인으로 규정하지만 종종 선과 악을 구별하기에 매우 애매한 경우가 발생한다.

 

1960년대에 아이히만이 체포되어 이스라엘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에 히틀러가 내린 유대인 학살의 명령을 각종 ‘탁월한’ 방식으로 이행한 최대 전범이었다. 이 때 유대인으로 수용소에서 탈출하여 미국에 망명한 유명한 여성 현대철학자인 한나 아랜트는 세계 최고의 악인을 보기 위하여 모든 일을 뒤로하고 이스라엘 법정으로 갔다.

 

그리고 그녀는 거기에서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실을 목격하고는 ‘예루살렘에서의 아이히만’이란 책을 집필하였다. 그녀는 그 책에서 아이히만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기술하였으며 그 책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아주 가정적이고 길 가는 개에게도 돌을 던지지 않을 그런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단지 자신이 일에만 충실한 것이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다만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는 사유의 불능이 있었다고 설명하였다.

 

그녀는 ‘악의 평범성’이라고 기술하였다. 더불어 평범한 악은 현대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이것은 사유의 불능 즉 ‘무사유’에서 시작된다고 하였다. 사유는 계산이나 인지 능력과는 다른 정신능력으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묻는 능력과 직결된다. 그녀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묻지 못하던 아이히만의 모습이 오늘날 열심히 자신의 주어진 일을 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도 닮아 있고 악은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책은 아이히만을 악마로 생각하는 유대인들에게 반발을 넘어 분노를 유발시키기도 하였으나 직접적인 전쟁 피해자였던 그녀의 충격은 더 컸을 것이다.

 

몇 년 전 일이다. 오전 내내 납득할 수 없는 부당한 주장을 하고 돌아간 환자가 있었다. 그런데 스탭이 점심시간에 우연히 병원 옆 쇼핑센터에서 그녀를 발견하고 돌아와서 필자에게 건넸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쇼핑타운에서 쫛쫛쫛환자를 멀리서 보았는데 너무나 천사같이 남자친구와 쇼핑하고 있었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지요?”라고 묻던 스탭의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해주지 못하고 단지 개인의 성향으로만 답변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이라면 아마도 한나 아랜트의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치과의사들이 외래에서 만나는 어려운 사건들에 마음 아파하는 내면에는 상대방의 이런 ‘악의 평범성’이 있다. 단지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로 인하여 상대방의 상처를 생각하지 않을 뿐이고 다만 자신들이 옳은 것이다. 일당 5억원을 판결한 판사는 자신의 판결에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건의 본질을 모두가 모른다고 하였다.

 

그의 모습은 착하고 선량한 공무원의 모습이었다. 매스컴에 노출된 그런 그의 모습에서 필자는 한나 아랜트가 보았던 아이히만의 모습을 보았다. 전 국민이 분노하여 대법원과 검찰이 편법을 동원하면서까지 허둥지둥 수습하려고 어려워하던 그 순간에도 판사는 모두가 사건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발생한 일이라고 발표하였다.

 

2010년에 일당 5억원의 노역도 ‘악의 평범함’을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아마도 그는 아이히만처럼 자상한 가장에 좋은 아빠였을 것이다. 요즘 보통 공사현장에 막일하는 사람의 일당이 10만원인데 소개소가 10%인 만원을 떼고 9만원을 받는다. 막노동 일당 9만원과 황제노역 일당 5억원이라는 흔들리는 가치기준의 그런 세상을 살고 있다. 5억원 판사와 황제노역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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