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이하 인권위)가 ‘진료과정 성희롱 예방안내서’를 발간했다.
지난 17일 공개된 안내서는 진료과정 중 의료진과 환자 간 발생할 수 있는 성희롱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성희롱의 법적 정의 △진료과정의 성희롱 판단 기준 △구체적인 사례와 성희롱 발생 시 해결방안 및 예방법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안내서에서는 의료진의 성적인 말과 행동으로 인해 의료기관 이용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 성적인 말과 행동을 받아들이지 않아 진료상 불이익을 주는 경우, 성적인 말과 행동을 미끼로 진료상 혜택을 주는 경우 등을 예로 들고, 이 가운데 하나만 해당해도 성희롱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각각의 사안을 예로 들어 주의사항을 명시한 내용 중에는 “신체부위 진료 시에는 진료과정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설명한 후 환자의 인격을 존중하는 표현을 사용하고 신체에 대한 개인적인 평을 덧붙이지 않아야 한다”, “청진 및 촉진이 필요한 경우는 그 부위와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 환자가 예측할 수 있도록 해 불쾌감에 대비해야 한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성적 사생활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것” 등을 예방수칙으로 전달했다.
가장 민감한 산부인과의 경우가 주로 예시로 등장해 관련 의사회의 반감을 사기도 했으며, 이러한 안내서가 오히려 의료진과 환자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사례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치과에서도 진료실 내 성희롱 예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치과의 특성상 환자가 유니트체어에 누운 채로 진료를 받다보니 진료 시 의도치 않게 신체부위를 스칠 수도 있고,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은 환자의 경우 사소한 눈길 하나도 성희롱으로 의심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 담요를 필수로 준비하는 등 예방책도 필요한 시점이다.
“환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성희롱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하고는 있지만, “성적 의도가 없더라도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면 성희롱에 해당될 수 있다”는 전제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억울한 의료인이 나올 수 있는 여지도 충분하다.
한편 인권위는 이에 앞서 지난해 말 ‘진료과정의 성희롱 예방기준안 마련을 위한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지난 4월에는 그 결과발표 및 정책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인권위 실태조사 결과, 의료기관 이용자 중 전체 응답자의 11%가 진료 시 성적 불쾌감이나 성적수치심을 느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의료진들은 진료에 필요한 언동이 성희롱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답해 환자와 의료진 간 뚜렷한 인식차가 있음이 확인됐다고 그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인권위는 “이번에 발간된 성희롱 예방 안내서가 의료진이나 환자 모두에게 성희롱에 대한 판단기준을 명확하게 알리고, 환자와 의료진사이의 인식격차를 줄이는 등 진료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성희롱 예방 교육자료로 적극 활용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이를 위해 의료기관 이용자 및 의료기관에 ‘진료과정 성희롱 예방안내서’를 제공할 예정이며, 인권위 홈페이지(http://humanrights.go.kr : 인권정보·정책 > 공보·발간자료> 일반단행본)에서 다운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인권위는 인권상담센터로 진정이 접수되면 사건을 조사하고 조정하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 성희롱으로 인정되면 시정조치를 권고할 수 있고, 객관적인 자료가 없거나 성희롱이 아닌 것으로 판명될 경우에는 기각 결정을 내린다. 권고 이행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언론 등 공표여부도 결정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의료법 제66조 제1항 제1호(자격의 정지)에 따라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키는 행위를 한 때는 의사자격정지 명령을 할 수 있도록 돼 있고, 의료법시행령 제32조 제1항(의료인의 품위 손상 행위의 범위)에 따라 비도덕적인 진료행위를 한 경우 자격정지 1개월이 가능함을 안내했다.
김영희 기자 news001@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