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딘가 아프고 불편하여 우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인이다. 대상과 결과에 상관없이 치료에 최선을 다하며 환자의 치유를 이끌어 내야하는 중대한 의무가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우리의 직업은 상업적인 서비스에 가까운 개념으로 변질되어왔다. 환자는 고객으로 불리며 우리에게 ‘왕’의 입장을 강요하고 있다. 소위 말해, ‘갑’과 ‘을’의 입장이 180。 뒤바뀐 상황이다.
이러한 슬픈 현실의 결과로 급기야 작년에는 치료에 불만을 품고 의료인을 살해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주변 원장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한 두 번씩 겪은 일이지만, 창피하기도 하고 어디에 하소연하기도 어려워 심한 가슴앓이를 하며, 정신적인 충격으로 심지어 이전 개원을 하기도 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특수한 현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당하는 입장의 피해가 너무 크다. 실제로 선진국에서는 진료실 내 난동의 경우 엄격한 법적용으로 현장 구속된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최소한 의료진의 안전을 보장받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필자도 진료실 내 난동을 겪었다. 개원 13년 만에 처음 겪은 일이었다. 진료실에서 진료하고 있었는데,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환자의 보호자가 데스크 직원을 폭행하였다. 그 일을 수습하는 상황에서 필자도 일행에게 폭행을 당하였다.
기다리는 환자보호자의 입장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은 아니나, 필자도 당일 응급실에 가서 4시간이나 병원에 머무르다가 나올 수 있었다. 원칙과 순서가 있고 나는 그다지 급한 환자가 아니라는 걸 필자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를 힘들게 했던 것은 의료인을 바라보는 공권력의 시선이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지구대 소속 경찰도, 조서를 받는 형사도, 기소를 하는 검찰도 절대 우리 편이 아니었다. 급한 상황의 환자보호자 입장을 이해할 수는 없겠느냐는 질문을 공통적으로 받았고, 합의를 종용받았다. 실제 상황에서는 ‘을’의 입장인데 공권력에서는 ‘갑’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듯 했다.
또한, 주변의 원장님들께서도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 동네에서 벌어진 일인데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충고를 들었다.
작년 9월에 분회소식지에 진료실 내 난동에 대해 정리하여 기고한 적이 있다. 글 말미에 느슨하고 안이하게 대처하는 의료진의 태도 때문에 행패와 난동이 일반화되었다고 결론을 맺었다.
정말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주변의 모든 사람이 송사는 피하고 잘못은 덮어주는데 관대한 입장이었다. CCTV를 설치하고 녹음기를 데스크에 항시 구비하며, 사소한 시비가 생길 여지가 있는 사항은 진료기록부에 기록하여 환자의 서명을 받고, 환자가 말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으며, 실제 진료실 내 사건이 일어날 경우 경찰에게 업무방해죄, 주거침입죄, 손괴죄, 상해죄, 모욕죄 등으로 고소하니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고 연행하시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스스로의 안전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 큰 목소리로 나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교묘히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 의료인으로부터 금품을 갈취하는 사람도 생겨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스스로의 안전을 너무 포기하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의료법 12조 2항은 의료기기를 파손한 자에 대하여는 징역 5년 이하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의 엄벌에 처하나 적용이 쉽지 않고, 국회에도 진료실 내 난동이나 의료진의 폭행에 대하여 가중 처벌하는 법안이 몇 년째 의안심의도 받지 못한 채 계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진료실 내 난동은 의료진에 대한 피해와 대기 중이거나 치료 중인 환자에게 2차적인 피해가 가는 심각한 범죄다. 또한 진료실 내 난동을 경험한 의료진 가운데 10명 중에 9명이 이직을 고려할 정도로 정신적인 피해가 심각한 범죄이다.
공권력과 국회의원님들이 이러한 점을 이해해주길 바라며, 의료단체에서도 신속하게 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힘써주길 바란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안전과 진료권 확보를 위하여 스스로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