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 시대를 대변하는 것을 한 단어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힐링’이라 할 수 있다.
힐링이란, 영어로 ‘healing’이며 사전적 의미는 ‘몸과 마음의 치유’이다. 특히 의학에서 질병이 치유되며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힐링의 전제 조건으로는 상처를 받거나 질환에 이환돼있어야 한다. 결국 이 시대에는 힐링이 절실할 만큼 상처받고 지치고 아픈 이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의학에서 힐링되어 가는 과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원상태로 회복되는(reversible) 과정과 원상태로 되돌아가지 않는(irreversible) 과정이다. 즉, 감기나 복통 등은 치유되면 원상태로 회복되지만 깊은 상처나 암절제수술 등은 원상태로 되돌아가지 않으며 그에 따른 상흔(Scar)을 남긴다.
그리고 마음은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두 가지의 힐링 과정이 있다. 심하지 않은 마음의 상처는 금방 잊혀지지만 깊은 마음의 상처는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하는 상흔(Scar)을 남긴다. 더불어 상처가 조금의 자극에도 심하게 고통스럽듯이 마음의 상처도 약간의 자극에도 깊은 아픔을 느낀다. 몸과 마음이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몸은 지속적인 자극에 적응하지만 마음은 지속적인 자극에 익숙해지기보다는 더욱더 고통이 배가 된다.
이 시대를 사는 이들은 연령층과 무관하게 모두가 힘들고 아프다. 갓난아기는 엄마의 보살핌이 그리운데 2살이면 유아원으로 보내진다. 그 후엔 유치원에서 미리 한글을 배우고 초등학생들은 과도한 학원에 놀 시간조차 없다. 청소년은 자아를 찾고 정서 함양을 할 시간도 없이 입시에 몰린다. 대학생은 취업준비에 시달리고 20~30대는 취업과 진급에, 40대는 조기 명퇴에, 50~60대는 노후 생활자금에 걱정이다. 70대 이후 경제적인 문제로 미래를 고민한다. 결국 어느 세대하나 편한 세대가 없다. 모든 세대가 내일과 미래에 대하여 불안해하고 걱정을 한다. 여기에 가족 간 대화의 단절과 각자의 바쁨 같은 의도되지 않은 무관심으로 인해 모두가 외롭다. 그러기에 이 시대를 대변하는 또 다른 단어는 힐링의 반대말로 현실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 그리고 외로움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힐링을 도와줄 수 있을까?
몸의 힐링은 자극과 원인을 제거하고 쉬면서 치료에 필요한 약과 적절한 온도 등의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마음의 힐링 역시 쉬면서 자극과 원인을 제거하고 치유에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우선 무소유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리한 욕심을 놓는 것이다. 성직자도 아닌 일반인은 무리한 욕심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욕심을 줄이는 것에는 크기를 줄이는 것도 있지만 속도를 줄이는 방법도 있다. 그래서 어느 스님은 멈추면 보이는 것들이란 글을 내신 것이다.
또 하나는 ‘긍정’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플 것이 아니라 덕분에 농사를 지어 얻어먹을 것이 있을 거라 즐거워하는 긍정의 마인드 말이다. 그러면 현대인들이 가장 고통 받는 상대적 빈곤감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다. 다음은 가까운 이에 대한 조그만 관심의 한마디이다. ‘사랑해’든 ‘힘들지’든 무어라 건네는 한마디로 인하여 서로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혼자라는 외로움을 줄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먼저 받으면 많은 것을 줄 준비가 돼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는 이가 없다고 한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로받고 싶을 만큼 상처받고 힘들고 지쳐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건네는 ‘힘들지’의 한마디가 힐링이란 말에 생명력을 불어 넣을 수 있다.
힐링이 절실한 시대에 마음의 조그만 변화가 세상을 바꾸는 나비의 날개 짓이 된다. 노래 한 소절, 그림 한 조각, 살풀이 한마디의 감동이 상처 받은 마음의 힐링의 에너지원이다. 이것이 예술의 의미이다. 더불어 active type의 사랑에너지가 있고 passive type의 순수한 자연에너지가 있다. 그래서 사랑받으면 생기가 나고 들꽃을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힐링’은 생명 보존의 자연적 현상이다. 따라서 마음을 자연에 맡길 때 가장 빠르게 치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