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해보니 관리실에서 올라오고 대기실에 사람들이 모여 있고 난리가 아니다. 우리 병원 대기실의 바로 밑층에 있는 3층 소아치과에 물이 새면서 관리실에서 조사를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층에서 물기를 발견하지 못해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필자가 3층으로 내려가 보니 천장에서 비가 오듯이 물이 내린다. 결국 우리 병원의 메인 밸브를 잠그고서야 물 새는 것이 멈추었다. 분명히 우리 병원의 어딘가가 샌 것이 분명하기에 인테리어 사장님을 불러서 점검을 해보니 정수기가 원인이었다. 벽에 매설된 정수기의 물 빠지는 호스가 노화되고 삭아서 부서진 것이다.
일단 원인은 잡았지만 황당한 것은 갑자기 물벼락을 맞은 소아치과 원장님일 것이다. 물이 떨어진 곳의 체어가 작동이 멈추고 벽지는 들뜨고, 결국 3일이 지나서 수리가 완료되었지만 들뜬 벽은 다시 도배가 필요한 상태이다. 보상 문제를 정수기 회사에 연락하니 친절하게 누수 보상팀에게 연결을 해주고 기다리면 보상팀에서 연락이 갈 것이라는 말을 듣고는 기다렸다.
그런데 2~3시간이 지나자 2년 전에 처음 정수기를 설치한 기사가 나타나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회사는 모든 책임을 설치기사에게 지운다고 한다. 정수기 한 개 설치해서 2만원을 받는데 치과용 의자가 망가졌다고 사색이 되어서 이야기한다. 생각해 보면 그의 잘못은 정수기를 설치하며 예전에 매설된 라인을 사용한 죄인 것뿐이다. 결국 필자가 유니트체어 회사에 알아보니 15만원 정도의 메인 기판을 갈면 해결될 것이란 말을 듣고, 병원 경비로 지불하기로 하고 사건을 일단락 지었다.
그리고 이 일을 생각해 보았다. 사건은 10년이 된 노화된 호스 하나가 당연히 터진 것인데, 아래층 소아치과 원장님이 가장 큰 피해자이고 그 다음은 필자이고 설치한 기사 또한 책임은 있으나 피하자의 한 사람이다. 더불어 누수 사실을 빨리 필자에게 보고하지 않아서 야단을 맞은 실장도 피해자이다. 살면서 이와 같이 가해자가 없이 피해자만 있는 경우가 가장 황당한 것이다.
사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원장인 필자의 주의부족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유니트체어에는 작은 고무호스가 많이 매설되어 있고, 우리 병원처럼 10년 이상 된 체어에서는 언제든지 노후로 인한 누수가 1년에 한번은 발생하므로 항상 진료실의 수도의 메인 밸브는 잠그고 퇴근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테리어가 10년이 넘으면 대기실의 수도도 메인 밸브를 잠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필자의 잘못이다.
병원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능한 일은 거의 경험했다고 생각을 하였건만 아직도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발생한다. 그나마 밤사이에 발생하지 않고 출근해서 발생한 것이 다행한 일이다. 또 물먹은 체어를 지혜롭게 켜지 않아서 손상을 최소한으로 할 수 있어서 다행한 일이다. 더불어 물벼락을 맡은 원장님께서 이해해주시니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실장이 연락을 빨리 주었다면 수도 메인 밸브를 빨리 잠글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항상 연락을 잘하던 이가 역시 일이 꼬이려니 판단 미스를 한 것이다.
이번 사건을 정리해보면 여기에는 모든 사건에서와 마찬가지로 필연적 상황과 우연적 상황이 있다. 누수의 발생은 이미 10년 전에 고무호수를 설치할 때 예견된 필연적 상황이다. 그리고 그것이 밤에 터지느냐 낮에 터지느냐는 우연적 상황이다. 다행히도 우연적 상황이 어려움을 적게 하였다.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은 이와 같이 필연성과 우연성을 동시에 지니며, 각각의 비중의 정도에 따라서 사건의 경중과 수혜자와 피해자가 발생하기도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바뀌기도 한다. 진시황이 사구에서 죽지 않고 함양에서 죽었다면 중국의 역사는 바뀌었고, 맥아더가 천왕을 전범처리 했다면 지금의 극우 일본은 없었을 것이다. 역사, 인생, 삶이란 것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생각해 본다. 더불어 한 번 더 아래층 소아치과 원장님께 미안한 마음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